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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인치 네일스, 5년 만의 복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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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인치 네일스, 5년 만의 복귀작

[화제의 음반] 나인 인치 네일스 [헤저테이션 마크스]

90년대 후반, 새천년의 초기 대중음악을 이끌어나갈 가장 중요한 인물로 모든 매체가 주목한 인물이었던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NIN), 곧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장기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악몽 같은 가사가 소음과 괴성으로 뒤덮인 명반 [더 다운워드 스파이럴](The Downward Spiral) 이후 기획했던 야심찬 프로젝트가 비평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여전히 완성도 높은 개별 싱글을 발표하고, 압도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으나 트렌트 레즈너는 어느새 대중음악 혁신의 선구자 자리를 라디오헤드(Radiohead)와 각국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게, 그리고 창의성으로 무장한 흑인음악 전사들에게 빼앗겼다.

2008년 내놓은 [더 슬립](The Slip)은 여러모로 트렌트 레즈너의 부활을 기대하게 한 후반기 대표 앨범이었다. 힘찬 박동과 공격적인 기운이 되살아난 이 앨범은 드디어 트렌트 레즈너가 인더스트리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로큰롤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후 그는 돌연 NIN의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하우 투 디스트로이 에인절스(How to Destroy Angels)를 결성해 침울한 전자음악의 세계에서 부유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 [헤저테이션 마크스]. ⓒ유니버설뮤직
기다림의 5년이 지나, 그가 다시금 NIN의 이름으로 복귀했다.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중년의 남성이 내놓은 복귀작의 이름은 [헤저테이션 마크스](Hesitation Marks), 곧 '주저흔(자살 시도자의 몸에 난 상처)'이다. 그 사이 그는 독립음악 작업에서 다시금 메이저 레이블과의 협업으로 복귀했다. 더 당황스러운 지점은 사운드다. 이미 앨범을 들어본 이라면 눈치 챘겠지만, [헤저테이션 마크스]를 지배하는 단어는 '미니멀리즘'과 '전자음'이다.

비명은 줄어들고 빈틈이 커졌다. [더 다운워드 스파이럴]에서 흩날리던 메마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으며, 눅눅한 기운이 앙상하게 자리 잡은 뼈대 사이에 흩뿌려져 있다. 이미 국내 공연이나 선공개된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카피 오브 에이>(Copy of A), <케임 백 헌티드>(Came Back Haunted) 정도를 제외하면 강한 비트감을 느낄 부분도 딱히 없다.

미니멀함은 앨범 전체(사실 한 곡은 극히 예외다)를 뒤덮은 침울한 기운을 극대화하는 효과로 작동한다. (트렌트 레즈너가 애독자임을 밝히기도 한) <피치포크>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대신 살짝 지분거리기만 하는 앨범"이라고 재미있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더 프래질](The Fragile)을 떠오르게 하는 코러스가 돋보이는 <케임 백 헌티드>는 오히려 가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밝은 펑크 사운드 <에브리싱>(Everything)과 함께 가장 예외적인 곡이다.

<디서포인티드>(Disappointed)는 듣는 즉시 라디오헤드 후반기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힙합 비트에 더 가까운 음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경향은 더 침울해지는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더 짙어진다.

여러모로 기존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펑크(punk)와의 대담한 결별로 평가할만한 앨범이다. 인간의 손이 담긴 연주가 극히 홀대됐다는 점은 중요한 근거다. 라이브 드럼이 쓰인 곡은 <아이 우드 포 유>(I Would for You) 단 한 곡밖에 없으며, 이 곡에서조차 드럼이 설 자리를 찾기란 어렵다. 기타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몇 곡에서 트렌트 레즈너 특유의 울부짖음의 흔적이 남아있으나, 이 점만 제외한다면 미니멀한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앨범이라고 평해도 부족함이 없다.

[헤저테이션 마크스]는 평단을 다시금 깜짝 놀라게 한 카니예 웨스트의 최근작 [이저스](Yeezus)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된 시카고 하우스, 즉 초기 하우스의 기운을 적극 수용했다. '정신병적인 미국 록'의 기운은 <러닝>(Running)에서 정신병적인 '미국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으로 대체됐고, <인 투>(In Two)에서 더 극적으로 발전했다. <인 투>-<와일 아임 스틸 히어>(While I'm Still Here)-<블랙 노이즈>(Black Noise)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어떤 의미에서 NIN의 어떤 작품보다 더 '인더스트리얼 뮤직'에 가깝다.

하우 투 디스트로이 에인절스 활동을 통해 침울한 전자음의 세계를 유영했던 트렌트 레즈너의 지난 시간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본 앨범에 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매기고, "트렌트 레즈너가 90년대 후반 이후 맞이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극찬한 <스핀>은 최근 대중음악의 트렌드와 실험성을 모두 앞서 이끄는 엔진인 흑인음악 신의 최신 경향을 트렌트 레즈너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비평을 남겼다(스핀은 힙합, 특히 카니예 웨스트와 트렌트 레즈너의 최근 작품을 재미있게 비교했다).

잊혀져가는 이름이 되는 줄 알았던 트렌트 레즈너의 위상이 다시금 대중음악 신 전면으로 부상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저 근육질의 목소리가 다음 작품에서 완전히 미니멀한 세계와 뒤섞일지, 아니면 또 다른 변신을 꾀할지 흥미 있게 지켜볼 일이다. NIN의 올해 투어 이름인 '텐션 2013'의 이름 그대로 [헤저테이션 마크스]의 처음부터 끝을 새로운 길과 과거의 유령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감이 지배한다(<에브리싱>만 제외하고). 이미 한국 팬들은 '올해의 공연'이라 칭해도 좋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거장의 귀환 현장을 지켜봤다(못 본 분은 아래 추가한 올해 후지 록 페스티벌 라이브 영상을 감상하시길. 첫 곡은 <카피 오브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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