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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중도파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12>

중도파에 대한 잘못된 오해

몇 년 사이에 중도니 중도파니 하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중도실용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자 이에 질세라 민주당에서도 중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여론 조사를 해 보면 자신을 중도라고 규정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경우에 따라 다르나 30여∼40여%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호소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도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이 중도의 뜻을 왜곡하여 국민들의 눈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자신들의 겉모양을 포장하려는 것이나 이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지금까지 집권 3년 이상 동안 보여준 것은 중도는커녕 보수를 넘어 극우적인 성향이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방향에서 특권적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또 극단적인 냉전적 방향을 통해 남북의 갈등 양상을 증폭시켰다.

서울 남가좌동의 가재울 뉴타운 사업. 지금의 뉴타운 사업은 토지나 건물소유주에게는 재산 축척의 기회가 되나, 세입자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반서민 정책의 하나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민주당도 말로만 중도, 중도 할 뿐이지 별로 다르지 않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그랬지만 대선에서 패배하고 3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보수적인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서민 대중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하나 내놓은 것이 없다.

하긴 몇 년 전에는 심지어 박근혜 씨까지도 자신이 중도적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 자신이 치우치지 않게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정치 이념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의 쓰임새다. 이렇게 중도나 중도파라는 말은 요즈음 정략적으로 사용되든가 잘못 쓰이면서 남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도파에 대한 다른 오해도 있다. 그것을 좌파와 우파 사이에 낀 어중간한 입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념적으로나 실천에서 미적지근하고 별 볼 일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치세력으로서 중도파가 가지는 이념과, 개인들이 가질 수 있는 양극단 사이의 중간적인 견해를 혼동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정치 세력으로서 중도파가 가지는 이념은 우파와 좌파의 이념 이상으로 철저하고 급진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

해방 당시의 중도파 세력

이것을 잘 알기 위해 60여 년 전 일제에서 해방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한반도에는 세 개의 큰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하나는 북의 김일성집단이다. 항일 빨치산 운동에 기반을 둔 김일성 집단은 점령군인 소련의 비호 하에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남쪽에서는 두 세력이 경쟁했다. 하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만든 세력이다. 아무 지지세력 없이 미국에서 단신으로 귀국한 이승만은 미 점령군의 비호 하에 친일 세력과 손잡고 한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친미 세력을 형성했다.

다른 하나는 상해임시정부의 맥을 잇는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한독당 세력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세력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 위에 통일된 한국 정부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자기 세력을 부식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견제를 받았다.

이 세 세력의 태도는 두 가지 면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하나는 사회경제 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김일성 집단은 기본적으로 소련을 모델로 한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했다. 이는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 사회, 경제 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승만 세력의 중심은 지주와 자본가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미 점령당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한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중경으로 옮긴 상해 임시정부는 1941년 11월에 건국강령을 내세웠는데 이는 삼균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이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주장하는 이념으로 마르크스주의와는 관련이 없으나 평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거의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해방 후의 한독당 이념은 기본적으로 그 위에 서 있다.

다른 하나의 노선차이는 민족문제와 관련한 것이다. 이승만은 1946년 6월의 정읍 발언을 시작으로 단정 노선을 취했다. 남한에 단독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김구는 이승만과 반탁운동에서는 힘을 합쳤으나 이 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그래서 1948년에 들어와 남한 단정 수립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자 그것을 막기 위해 4월에 평양에서 열린 북과의 남북 협상에 김규식과 함께 참여했다. 그러나 북에게 정치적 이용을 당했을 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남북 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한독당 세력은 1948년 5월 30일에 치러진 남한 총선거를 거부했다. 단정 수립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남한은 한민당 세력의 독차지가 되었고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 중심의 단정이 수립되었다. 북에서는 김일성 세력이 역시 그해 9월 9일에 단정을 수립했다.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어가는 김구 일행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남과 북에서 각각 외세에 의존한 분단 세력이 정권을 차지함으로써 그 후 자주적인 입장에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자본주의 하에서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던 중도적 민족주의 세력은 현실적으로 패배했다.

그 결과 한민족은 6.25전쟁이라고 하는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되었으며 그 후에도 남북 사이에는 극단적인 적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또 남북 모두에는 독재와 함께 경직된 형태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당시의 중도파가 이렇게 실패한 것은 그 이념이 미적지근하고 어중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우고 나름의 사회·정치체제를 수립하려는, 셋 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가장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이념이었다. 단지 강대국의 원심력이 워낙 강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을 뿐이다.

중도파는 국민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면 오늘날 남한의 상황에서 중도파는 어떤 이념적 내용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파는 여전히 외세 의존적으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성조기를 흔들고 친미 구호를 외친다. 또 냉전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남한의 좌파는 상대적으로 민족적인 지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파보다는 훨씬 낫다. 그럼에도 조직 노동의 협소한 계급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우파와 별로 다를 바 없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물론이고 노동 계급 전체의 이익까지도 도외시한다.

그러나 보통 좌파로 불리는 세력 가운데는 호남에 주된 근거를 둔 우파정당인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도 포함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좌파 세력과 일정 부분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와 우파의 갈등에는 이렇게 이념적 차이뿐 아니라 고질적인 지역 감정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규정된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한 치 양보 없는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좌파는 우파를 수구꼴통이라고 경멸한다.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고 냉전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우파는 좌파를 '좌빨(좌익빨갱이)'이라고 비난한다. 북에 퍼주기를 하고 민족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대화나 타협은 없고 무슨 일에도 죽고살기식의 투쟁만 존재한다. 이렇게 죽어라고 싸우지만 그렇다고 어느 세력도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능력은 없다.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중도파를 중산층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파가 부유층의 특권적인 이익을 옹호하고 좌파가 하층 노동 계급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파는 그 가운데 있는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본적으로는 그럴듯하나 그것을 한국의 현실에 꼭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면 먼저 중도파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는 한국의 중산층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을까. 현재 중산층은 상층 계급이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소득 불평등 때문에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이에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양극화와 함께 전통적으로 중산층에 포함시키는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다.

그래서 중산층을 중간소득의 50∼150%으로 규정할 때 한국의 중산층 비율은 2003년의 60.4%에서 2009년에는 55.5%로 줄어들었다. 몇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약 5% 정도가 하층으로 떨어졌는데 현재의 구조에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비율이 커지게 되어 있다.

또 중산층의 소득 수준도 떨어졌다. 그 사이에 전체 가구의 평균 소득이 2846만 원에서 3055만 원으로 7.4% 증가했으나 중산층 가구는 2581만 원에서 2664만 원으로 3.2%만 증가했다. 이 점에서 현재 중산층은 심각한 불만을 가진 사회 계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농어민, 실업자와 반실업자, 청년실업자, 노년층 등 우파와 좌파의 기득권에 밀려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대군이 넘쳐난다. 이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다.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 2010년의 경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 가운데 취업자는 절반 정도이고, 정규직 취업자는 20%대에 불과하다. 한국대학신문

따라서 한국의 중도파는 중산층의 이익뿐 아니라 이들의 생존까지도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구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중도파는 소수의 상층 계급과, 특권적인 소수의 조직 노동계급을 제외한 국민 절대 다수의 이익을 지켜주는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우파와 좌파가 특수적 이익을 지키는 이기적인 존재라면 중도파는 국민의 보편적인 이익을 확보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지닌 정치적 존재라 할 것이다.

중도파 세력의 형성은 어렵지 않다

현재 세계는 큰 소용돌이 속에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질서가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옥죄어온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 질서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불러온 신자유주의의 틀을 걷어내고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기존 정치세력들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이들의 무능력은 이미 모두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우파도 좌파도 아닌 새로운 대안 세력인 중도파 세력이 등장해야 할 필연성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하는 중도파 세력은 중간에 낀 어중간한 세력이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에는 40%가 넘는 사람이 스스로를 중도파로 분류하고 기존 정치 세력들의 행태에 대해 못마땅해 하지만 아직 정치 세력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잠재력이 충분하므로 조직화만 할 수 있다면 이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민 대중의 불만이 폭발 직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와 이념만 잘 준비되면 현상의 돌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 조직화된 중도파 정치 세력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할까? 그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 사회와 경제의 기형적인 구조를 뜯어고쳐서 정상적인 사회로 만들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진정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심각한 불신과 갈등을 치유하는 일이다. 좌, 우파 사이뿐 아니라 지역 사이, 정당 사이, 각 이익 집단들 사이에 소모적인 갈등이 너무나 심하다. 따라서 중도파 세력은 그 한가운데 서서 극단적인 대립을 완화시키고 국민의 뜻을 하나로 묶어 이제 한국이 앞만 보고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통일된 자주 국가를 수립하는 일이다. 동아시아의 국제적 파고가 높아가는 상황에서 남북 사이의 지속적인 대립과 경쟁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일을 우리 민족의 새로운 도약 계기로 삼아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떳떳하게 맞설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새로 형성되는 중도파는 그 이념에서 해방 당시의 중도파 세력과 어느 정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전통의 상당 부분을 이을 수 있으며 이것은 중도파 세력에게 상당히 큰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도파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오히려 새로 조직될 중도파 세력에게는 축복이다. 이들이 아무런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무사공평한 마음으로 한국사 회를 판단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개혁하고 지향하는 목표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반대 세력으로부터의 엄청난 공격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도, 특권적 노동자들도 결코 자신들의 달콤한 과일을 그냥 내놓지는 않는다. 이들 세력과의 강력한 투쟁이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거부하고 중도를 내세웠던 안철수 씨가 돌풍을 일으킨 데서 보았듯이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국민들에게 희망만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새로운 정치세력의 형성이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 형성되는 중도파 세력은 이런 사명을 인식하고 목표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그것을 달성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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