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철을 포함한 도시 철도 정비는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마디가 시민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임기 중 대규모 토목 공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박 시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했다. 교통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전철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공공 의료 확충을 위해 534억 원을 들여 진주의료원을 신축했던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경전철 사업은 불필요한 토건일까, 필요한 복지일까? 시민사회는 미묘하게 갈렸다.
"4대강 사업도 '건강한 적자'가 되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경전철이 불필요한 토건이라는 입장이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은 "경전철은 일반 지하철인 중전철과 달라서 현재까지 성공 사례가 하나도 없다"며 "서울시가 공개한 용역 보고서를 봐도 재무적 타당성(투입 대비 수익)이 1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투입 대비 비용을 못 건져내는 사업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자라도 시민에게 필요한 사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른바 '건강한 적자' 논리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그렇게 따지면 4대강 사업도 홍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측면에서 건강한 적자가 되느냐"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모든 사업에는 기회비용을 따져야 한다"며 "복지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전철 사업을 굳이 먼저 시행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권오인 팀장도 경전철 사업이 시급하지 않다는 데 생각을 같이한다. 그는 "경전철 추진 구간인 10개 노선에 모두 기존 버스가 다니고 있다"며 "서울시 재무 구조를 봤을 때, 8조 원이나 투입해서 한꺼번에 10개 노선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있는 만큼, 경전철 사업은 시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 24일 '서울시 도시 철도 종합 발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김하영) |
"출퇴근길 2·4호선은 지옥…그냥 둘 건가?"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경전철 그 자체를 불필요한 토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라고 반박한다. 경전철 사업이 '필요한 토목'이 될 수도 있는데, 싸잡아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서울시에 교통 소외 계층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지하철 중간 중간에 경전철을 만들어서 교통 사각지대를 메워주면, 네트워크는 연결될수록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낸다"고 말했다. 그는 "철도는 친환경적인 만큼, 가능하면 도시 교통 시스템을 철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교통 혼잡도가 다른 대도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의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지하철 2호선이나 4호선을 탑승하면 지옥인 것은 맞다"며 "출퇴근 시간대의 2·4호선의 교통 혼잡도를 해결하기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버스 노선을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지금도 버스 노선은 포화 상태인데다, 버스를 타도 길이 막힌다"고 지적했다.
적자임에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기는 지하철도 마찬가지라는 반박도 나왔다. 박 연구위원은 "경전철보다 건설비가 더 드는 지하철도 적자"라며 "지하철 2호선이 사당역에서 승객을 꽉꽉 채워도 적자인 이유는 (요금이 싸기 때문에 생기는) 건강한 적자라서 그렇다. 파리 날려서 적자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자 사업은 '세금 먹는 하마' 맞다"
문제는 서울시가 민자 사업을, 그것도 대규모로 추진한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세금 먹는 하마'가 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민간 사업자가 이윤 없이 뛰어들 리 없는 탓이다. 시간이 흐른 뒤 생길 부담은 차기 시장이나 시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헌호 소장은 "적자가 생기면 민자 사업자는 요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며 "설사 요금 인상이 되지 않더라도 서울시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민간 지분을 사줘야 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국민 부담으로 간다"고 주장했다. 박흥수 연구위원도 "민자 사업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재정이 완화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울시의 공공 교통 시스템이 민간의 이윤 추구에 맡겨진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사례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반박한다. 일단 대주주가 민자 회사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할 수 없도록, 이자율이 변하면 협약서에 명문화하기로 했다. 또한 민자 사업자가 '먹튀'할 때를 대비해 '해지 시 지급금' 지불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됐던 '최소 운영 수입 보장 제도(MRG)'는 폐지하고, 실제 수요에 근거해 민자 회사에 요금 차액을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MRG를 폐지하는 대신 실제 수요 기준의 기본 요금 차액을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10개년 도시 철도 기본 계획에 대한 종합 발전 방안(경전철 용역 보고서) |
▲ 민간 제안 경전철 요금 수준 비교. ⓒ서울시 10개년 도시 철도 기본 계획에 대한 종합 발전 방안 |
서울시가 지난 2일 공개한 경전철 용역 보고서를 보면 더 구체적인 그림이 나온다. 민자 사업자들은 적게는 1210원(동북선)부터 많게는 1490원(면목선)까지 기본요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예측 수요가 아닌 실제 수요를 근거로 현행 지하철 기본요금인 1050원의 차액을 민자 사업자에게 보전해주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민자 사업자의 수익률을 6%대 이하로 떨어뜨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흥수 위원은 "다른 지자체들은 민자 사업자에게 경전철 수익률로 8%대를 보전했으니, 과거보다 더 낮은 수익률을 보전하는 것이 맞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그 6% 수익률을 왜 서울시가 민간에게 줘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재정 사업이었다면 들지 않았을 추가 비용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자 사업자에게) 최소한의 수익률을 확보하기 위한 금액은 보전해줘야 한다"면서도 "대신 (민자 경전철 사업은) 차등 요금제로 출발했지만, 앞으로는 지하철 요금과 같게 책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전철 요금이 지하철 기본요금보다 높아질 일은 없으므로 안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지금 기본요금으로는 물가상승률만큼 2년마다 100원씩 올려도 재정 사업이든 민자 사업이든 똑같이 적자가 날 것"이라며 "어느 한계치에 다다르면 대중교통 기본요금이 전체적으로 다 올라갈 수는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경전철 민자 사업 효과'로 몇 년 뒤 전체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 지하철 9호선 민자 사업은 특혜 논란을 낳았다. ⓒ뉴시스 |
박원순 시장은 왜 '민자의 늪'에 빠져들었나?
박원순 시장은 왜 '민자의 늪'에 빠져들었을까. 박흥수 연구위원은 "10개 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하려면 막대한 자금(총 8조5533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민자를 들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광범위한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전철 사업이 '선거용'이라는 의혹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권오인 팀장은 "굳이 민자를 끌어들여 10개 사업을 일시에 하려는 것은 정치적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들이려는 재정 4조2000억 원으로 민자 사업 대신 2,3개 노선을 100% 재정 사업 방식으로 추진했다면 안전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전철 사업이 '불필요한 토건'이라고 보는 시민사회단체들도 재정 사업으로 몇 개 노선 정도 시범 사업을 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했던 경전철 7개 노선에서 서너 개를 날렸다면 박원순 시장도 명분이 생긴다"며 "박 시장이 '옥석을 가렸다, 장기적으로 도로 교통 중심 체계를 철도 위주로 개편하자'고 발표했으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안이나 9월 초에 토론회, 공청회, 주민 설명회 등을 거쳐 의견 수렴 절차를 밟을 것"이라면서도 "민자 사업이 처음 서울시의 방향이었고, 이미 계획이 수립돼 있는데 임의대로 조정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는 '초스피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오는 9월에 국토부의 경전철 사업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사업 승인을 받아도 딜레마는 여전히 남는다. '과도한 수익'을 제한하자니 민자 사업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반대로 규제를 풀고 세금 지원을 늘리자니 '특혜 논란'이 일어난다. 확실한 것은 민자 사업자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고, 한번 진행된 민자 사업은 더 큰 비용을 치르기 전까지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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