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장 토론은 일부 방송사에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그 시도 자체가 상당히 경박한 것입니다. 선진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토론은 이와 같은 경박한 토론이 아닙니다. 선진국들이 중대한 이슈를 다룰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토론은 장기간 여러 차례의 토론을 통해 서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충분히 제시하게 하고, 또 많은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진의와 근거를 확인하게 하는 토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가 시민단체들에 제안한 것을 보면 지난 2일에 경전철 기본 계획 용역 보고서를 공개하고 6일에 끝장 토론을 하자는 식이었습니다. 자신들은 1년 반 동안 용역 보고서를 만들었으니 시민단체들은 그걸 3일 동안 읽고 나와서 끝장 토론을 하자는 겁니다. 시민단체 전문가들을 슈퍼맨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좋으나 이와 같은 끝장 토론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 앞으로 박 시장이 지속적으로 '끝장 토론'에 대해 언급하고 시민단체들이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국민들은 시민단체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까요?
⇨ 최근 시민단체들이 용역 보고서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울시에 토론 시기 연기를 요청했고, 서울시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가 큰 논란거리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서울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끝장 토론'에 대해 언급하며 언론 플레이를 한다면 양측의 불신은 더 깊어지겠지요.
3. 양측이 선진국형 토론을 여러 차례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 한 달 안에 끝날 수도 있고 여러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사업이 긴급을 요구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토론 기간은 그렇게 중요한 쟁점은 아니라고 봅니다.
4. 어떤 토론이든 양측이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데요. 서울시 측이 그런 약속을 할까요?
⇨ 그것은 박 시장에 달려 있겠지요. 일단 최초 토론이 성사되려면 양측이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 약속이 없다면 최근 노동당(과거의 진보신당) 서울시당이 우려했던 대로 시민사회단체들이 박 시장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5. 양측이 토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합니까?
⇨ 토론 결과 이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박원순 시장이 먼저 해야 할 겁니다. 또 시민단체들도 토론 결과 일부 노선의 사업 타당성이 확인된다면 그 노선에 한해 사업 추진에 동의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겁니다.
6. 어쨌든 서울시는 지난 2일 '도시 철도 기본 계획 변경안'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이하 용역 보고서로 약칭)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어떤 평이 가능할까요?
⇨ '과학적' 연구 태도와는 많이 동떨어진 보고서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사회과학 방법론 교과서들에 따르면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는 과학적 연구가 아닙니다. 또 이 과학자들이 말하는 '객관성'이란 A라는 사람이 작성한 연구 보고서를 보고, B라는 사람이 그와 똑같은 연구 과정을 거쳤을 때 같은 결과가 나와야 확보되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이번 용역 보고서는 '객관성'을 확보했을까요? 이 보고서는 객관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비유하자면 '수학 문제 풀이 과정에 대해 점수를 주는 수학 시험에서 풀이 과정 대부분을 생략한 답안지'와 같았습니다. 국민들을 설득해서 점수를 얻으려는 의사가 없는 보고서 같았습니다.
7. 이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 경전철 사업의 편익은 지나치게 많이 부풀려져 있었고 비용은 지나치게 많이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8. 비용 중에서 가장 많이 은폐된 비용은 무엇입니까?
⇨ 은폐된 비용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예비비'였습니다. 이번 용역 보고서가 비용 산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도로·철도 예비 타당성 조사 표준 지침(제5판)[이하 표준 지침으로 약칭]'인데요. 이에 따르면 예비비는 공사비, 부대비, 용지 보상비를 합산한 금액의 10%를 책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용역 보고서는 예비비 책정 과정에서 이 지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비비를 대규모로 축소한 것입니다. 용역 보고서가 다른 많은 비용 산출 과정에서 이 지침을 따르면서도 예비비 책정 과정에서는 이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겁니다. 참고로 서울시가 2008년에 발표한 도시 철도 기본 계획 관련 용역 보고서(이하 2008년 용역 보고서로 약칭)는 이 지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9. 예비 타당성 조사 표준 지침을 따를 경우와 따르지 않을 경우 노선별로 어느 정도의 예비비 차이가 납니까?
⇨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도시 철도 전체 노선의 공사비는 6조9615억 원, 부대비는 6910억 원, 용지 보상비는 3130억 원으로 3대 비용 총합은 7조9655억 원입니다. 따라서 표준 지침을 따를 경우 이 사업의 예비비 총액은 3대 비용의 10%인 7966억 원입니다. 그러나 용역 보고서는 이 사업의 예비비로 2878억 원만 책정했습니다. 5088억 원을 축소한 것입니다.
10. 노선마다 예비비 축소 규모가 다를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노선마다 많이 다릅니다. 동북선(왕십리~상계역)의 경우 지침대로라면 예비비를 1443억 원 책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역 보고서는 단지 44억 원만 책정했습니다. 신림선(여의도~서울대 앞)의 경우에도 지침대로라면 811억 원을 책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역 보고서는 29억 원만 책정했습니다. 두 노선 예비비는 지침에 따른 정상 예비비의 3~4%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다른 7개 노선의 예비비는 정상 예비비의 47~48%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위례선(복정역~마천역)에서는 지침 그대로 3대 비용의 10%를 예비비로 책정했습니다.
11. 두 곳의 예비비는 정상 예비비의 3~4% 수준, 일곱 곳은 47~48% 수준, 한 곳은 100%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주먹구구식 아닙니까?
⇨ 다른 분야도 유사했지만 특히 예비비가 주먹구구식으로 책정되었습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7월 24일 '서울시 도시 철도 종합 발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12. 그 다음으로 비용을 많이 축소한 비목은 어떤 것입니까?
⇨ 차량 구입비를 둘러싸고도 앞으로 많은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노선에 구입하고자 하는 차량은 AGT 고무차륜 차량인데요. 모두 387량을 구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차량의 매입 단가인데요.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가 2007년, 2009년, 2011년 3회 연속 발표한 교통시설투자평가지침에 따르면 이 차량 가격은 23억 원입니다. 2005년에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Advanced AGT System의 적용성 분석 및 조사연구"라는 보고서를 근거로 한 것인데요. 문제는 서울시가 이번 용역 보고서에서 이 차량 가격을 14억5000만 원으로 책정해 놓은 겁니다. 근거가 무엇일까. 용역 보고서를 만든 사람들은 그 근거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13. 2005년에 건설교통부가 보고서에서 AGT 고무차륜 차량 가격을 23억 원으로 제시해 놓았다면 10년이 지난 내후년에는 물가상승률 2%(연평균)만 고려해도 28억5000만 원인데요. 용역 보고서는 그 가격을 14억 500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서울시의 해명이 필요한 대목 같습니다. 만약 용역 보고서를 만든 사람들이 AGT 고무차륜 차량 1대 가격을 10억~13억 원씩 적게 책정했다면 전체 10개 노선 사업비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되니까?
⇨ 용역 보고서에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AGT 고무차륜 387개 차량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용역 보고서를 만든 사람들이 AGT 고무차륜 차량 1대 가격을 10억~13억 원씩 적게 책정했다면 전체 사업비를 3870억~5030억 원 축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4. 서울시에 따르면 10개 노선 사업비는 모두 8조5500억 원입니다. 그런데 용역 보고서에서 예비비와 차량 구입비가 1조 원 가까이 적게 반영되었군요.
⇨ KDI와 국토부가 발표한 표준 지침과 이번 보고서의 격차를 고려하면 그렇습니다.
15. 비용과 관련하여 다른 문제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2008년과 2013년 용역 보고서 모두 서울연구원에서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둘을 비교해 보면 수많은 공사별 적용 단가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 공사비의 경우 2008년에는 km당 2억943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는 17억472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양자 간 격차가 무려 6배입니다. 또 지하 차량 기지의 경우 2008년에는 1량당 2억681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는 17억846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양자 간 격차는 무려 6.7배입니다. 양쪽 중 어느 쪽이 적절한 쪽일까요? 대다수 시민들은 이 두 보고서에 대해 모두 강한 불신감을 드러낼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두 보고서를 모두 폐기하고 서울연구원이 아닌 제3의 기관에 새로운 연구 용역을 의뢰해서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수많은 공사 부분에서도 2008년과 2013년 용역 보고서의 공사비 단가 사이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16. 비목별 비용 집계 과정에서 2008년과 2013년 용역 보고서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인데요. 어떤 부분의 비용들이 주로 부풀려졌나요?
⇨ 그 내용에 대해서는 서울시의 민자 사업 유인책과 연관을 지어 나중에 칼럼을 통해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17. 경전철 사업 타당성 논란과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것들이 주요 쟁점이 될 것 같습니까?
⇨ 앞으로 용역 보고서 검증 과정에서 많은 쟁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그중 몇 개를 추려 보면 우선 먼저 경전철 사업 편익 부풀리기가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이 될 겁니다. 이번 용역 보고서를 보면 서울시가 편익 계산 과정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편익 계산 과정은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그 많은 변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에 반영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만약 서울시가 이것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면 4대강 사업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들은 자체적으로 편익을 계산하고 B/C분석(비용-편익 분석)을 하게 될 겁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도 나중에 상세히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18. 또 다른 쟁점은 무엇입니까?
⇨ 민간 투자 사업 방식도 많은 논란이 될 겁니다. 서울시는 2009년 4월 10일 민간 투자자들과 우이~신설 경전철 실시 협약을 체결하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서울시 경전철 사업의 시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사업에 대한 평가도 주요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사업을 보면 협약 수익률이 불변가격으로 6.1%였습니다. 서울시가 민간 투자자들에게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수익률 6.1%를 보장한 겁니다. 실질금리가 0% 내외인 현재 상황에서 이 수익률은 매우 파격적인 것인데요. 이렇게 실질수익률이 높아야 민간 투자자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민자 사업 특성상 30년 뒤에 소유권이 지자체로 이전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서울시는 이 수익률을 낮추고 대신 다른 유인책을 찾는다고 하는데, 그 유인책이라는 것이 뻔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이들에게 혈세를 퍼붓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대다수 민자 사업에서 논란이 많은 협약수익률을 낮추고 다른 방식으로 혈세를 퍼붓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 최근 정부와 지자체들이 민자 사업자들에 대한 협약수익률을 낮추고 다른 방식으로 혈세를 퍼붓는다고 했는데요. 그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 그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사비 보조를 하는 겁니다. 공사비를 부풀리면 민자 사업자들은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직접 지자체가 공사비의 일부를 제공할 수도 있고,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을 헐값으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민자 사업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민자 사업 운영 회사를 상대로 고금리 사업을 하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2000년대 중후반 정부는 논란이 많은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 Minimum Revenue Guarantee)를 폐지하고, 대신 민자 사업 투자자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방식의 고리대금업을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20. 민자 사업 투자자들이 이와 같은 방식의 고리대금업을 하면 누가 피해를 봅니까?
⇨ 국민들이 MRG가 존재할 때와 유사한 방식으로 피해를 봅니다. 아니 그 피해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민자 사업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민자 사업 운영 회사를 상대로 고금리 사업을 하게 허용하면, 민자 사업 운영 회사에는 엄청난 적자가 쌓이게 되고, 적자가 쌓이면 이들은 정부나 지자체에 요금 인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결과는 우리가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요금 인상 요구 사례에서 똑똑히 목격한 그대로입니다. 이 경우 지자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요금 인상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과 매입 협상을 해서 소유권 이전 시기를 앞당기는 겁니다.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시민들의 고혈은 빠져나가는 겁니다. MRG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민자 사업의 폐해가 줄어든 것은 절대 아닙니다. 민자 사업자들은 더 교활하게 국민들의 고혈을 노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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