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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병원 의사가 '삼성 직업병' 산재 신청 심사 논란

고 윤슬기 씨 산재 불승인…반올림 "공정성 심각하게 훼손"

'삼성전자 직업병'의 산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29일 "근로복지공단이 고(故) 윤슬기 씨의 산재 심의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를 참여시켰으나, 판정위원 명단을 비공개해 유가족이 (판정위원) 기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사건에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 참여?"

유가족 대리인으로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출석한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2일 고(故) 윤슬기 씨의 산재 신청에 대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첫 심의회의를 열었다.

이 심의회의에서 한 판정위원은 "삼성전자 사건을 다루는데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 판정위원회 위원장은 "근로복지공단의 유권해석상 그러한 사유가 위원의 제척, 기피, 회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회의를 계속했다.

강북삼성병원 소속 의사가 참여한 사실을 유가족 측이 뒤늦게 인지한 상태에서 이날 판정회의의 결과는 3 대 3으로 가부동수가 나왔고, 윤 씨의 산재 신청은 재심의에 회부됐다.

반올림은 "강북삼성병원은 삼성전자와 같은 계열사이자, 삼성전자 LCD 공장과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병원"이라며 "지난 9일 해당 판정위원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 반올림은 지난해 7월 20일 고 윤슬기 씨의 49재를 맞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근로복지공단, 위원 명단 공개 거부

이종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판정위원의 소속과 이름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아, 산재 당사자의 법률상 권리인 '(판정위원) 기피 신청권'을 박탈했다"며 "유가족이 기피 신청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산재 판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산재법은 '당사자는 위원에게 심리·재결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원 명단조차 당사자에게 공개되지 않아 해당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지난 9일 판정위원에서 강북삼성병원 의사가 빠진 채 재심의가 열렸지만, 결과는 또다시 3 대 3 가부동수가 나왔다. 이에 운영규정에 따라 재심에서 판정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하면서 4 대 3으로 불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7일 유가족에게 발송한 불승인 통지서를 통해 "고인이 작업 과정에서 사용한 물질의 노출력과 노출량을 고려해야 하고, 원인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추정만으로는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종란 노무사는 "초심 판정 때 정당한 기피권을 행사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이 당사자에게 정당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심의위원 본인도 사건 배정 결정 못해"

윤 씨의 산재 판정에 강북삼성병원 의사가 참여한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심의위원은 이미 2월에 배치됐으며, 어떤 사건을 심의하는지는 심의가 열리기 5일 전까지는 심의위원 본인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산재 판정의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위원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추천한 위원 동수로 구성한다"며 "게다가 재심 당시 강북삼성병원 의사는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재를 심의할 때 청구인의 대리인, 역학조사 위원, 청구인의 주치의인 경우에는 공단이 미리 제척하지만, 삼성병원 의사라고 해서 제척할 근거는 없다"며 "홈페이지에 판정위원 100명의 직업과 이름은 공개하지만, 개별 사건을 담당하는 위원의 신원은 원칙상 비공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재생불량성빈혈' 산재 승인 전례 있다

고(故) 윤슬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전자 천안공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검정색 유리 재질의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했다.

고인은 "바로 앞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고온으로 처리해 LCD 패널에 발라서 넘기면 독한 냄새가 진동했고, 패널을 자를 때는 미세한 검정 유리 가루가 날렸다"고 증언했다. 반올림은 "고인이 열분해 산물로 나오는 벤젠과 방사선 검사로 인한 방사선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국소 배기 장치나 개인 보호구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윤 씨는 2000년 1월 희귀병인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고 12년간 수혈에 의지해 투병한 끝에 지난해 6월 숨졌다(향년 31세). 반올림이 집계한 56번째 삼성전자 사망 노동자다. (☞ 관련 기사 : "삼성에서 하혈하다 죽어간 딸, 이건희 자식이었다면…")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1999년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2008년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은 고(故) 김지숙 씨에 대해 지난해 4월 산재를 인정한 바 있다.

한편, 반올림과 윤 씨의 유가족은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 판정에 삼성병원 의사 참여, 판정위원 비공개, 산재 불승인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북삼성병원이 삼성전자 LCD 공장과 반도체 공장 소속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병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직원들의 집이 가까우면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도 하지만, 강북삼성병원을 특수건강검진 실시 병원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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