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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직업병 사망자 추모 방해한 검은 양복들…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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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직업병 사망자 추모 방해한 검은 양복들…누구?

故 이윤정 추모 1주기…"산재 인정해야" vs "시끄럽다"

뇌종양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은 차분히 추모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여기저기서 말 없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바로 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 10여 명이 섰다. "무분별한 집회 시위,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 뇌종양에 걸려 숨진 고(故) 이윤정(32) 씨의 추모 1주기 기자회견이 7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렸다. 같은 시각, 기자회견장 바로 뒤에서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성 10여 명이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 7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이윤정 씨 추모 1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바로 뒤에서는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기자회견 직전에는 삼성전자 경비 직원 10여 명이 본관 앞에 쇠문을 치고 채증을 하면서 유가족과 한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기자회견은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이 숨진 지 1년이 됐지만,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으면서 산재가 아니라는 삼성이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임을 증명하라며 2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의 벽이 견고하고 모질다"고 밝혔다.

고인의 남편 정희수 씨는 아내에게 보내는 추모 편지를 통해 "이번에도 엄마 없는 슬픈 어린이날을 보냈다"며 "딸아이가 '난 왜 엄마가 없느냐'고 물으며 병원에 있던 엄마 모습마저 그린다. 아내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 이윤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간 고온테스트 업무를 맡았다. 이 씨는 고온에 탄 반도체 칩에서 발생한 미세 분진을 흡입했고,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퇴사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2010년 5월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2010년 7월 산재를 신청했지만 2011년 2월 불승인 처분됐다. 이에 불복해 2011년 4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같은 해 8월 첫 번째 변론에 참석하고 증상이 악화돼 이듬해 어린이날 이틀 뒤(2012년 5월 7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숨진 뒤에도 1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 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는 새로운 사고가 아니"라며 "기흥공장 노후 라인에서는 10년 전에도 화학물질 누출이 수도 없이 일어났으며, 당시 노동자들은 천 마스크를 쓰고 (누출된 화학물질을) 걸레로 닦았다"고 주장했다.

황 씨는 "(삼성전자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다가) 희귀병에 걸린 제2의 이윤정 씨가 100명이 넘었는데도, 이건희 회장은 (희귀병이) 삼성전자와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이제 그만 죽였으면 한다. 삼성전자는 병에 걸리도록 한 화학물질 목록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도사가 끝난 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 씨의 영정 사진 앞에 헌화했다. 기자회견장에는 황상기 씨,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숨진 고(故) 윤슬기 씨의 어머니 신부전 씨,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 등이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기자회견에 앞서 삼성전자 본관 앞에 쇠문이 쳐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한편,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올해 3월부터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에 나섰지만, 지난달 4일 별다른 성과 없이 대화는 중단됐다. 김시녀 씨는 "삼성전자 실무진들이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많이 왔다고 불쾌해 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교섭 대상자 교체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대화의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언론에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시 만나자고 (반올림 측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회신은 못 받았다. 실무진 교체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노후 라인에서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을 걸레로 닦았다는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불산과 같은 위험한 화학물질이 누출돼서 걸레로 닦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위험한 독극물은 걸레로 처리하지 못한다. 걸레로 처리하는 화학물질들은 위험성이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집시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삼성전자 직원이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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