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피노체트 정권이나 일제 시기 이후 들어선 남한 정부와 같은 군사 독재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 정책,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 결정에 있어서 군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왜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북한과 협상할 것을 촉구하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굽실거리기 전까지는 상대하지 않기로 하는 등 "전략적 인내"라는 실패한 정책을 미국 정부가 왜 그렇게 고집해 왔는지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김정은의 도발적인 3차 핵실험에 미국이 B-52 전략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에 대한 핵 폭격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등 왜 그렇게 충격적이고 위험천만한 대응을 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토레스 목사가 미국 정부의 성향에 대해 조사하던 1980년대에 대외비인 미국 정보국 지출을 제외하고 당시 미국의 군사비는 2211억 달러, 오늘날 기준으로는 약 5000억 달러가 넘는 액수에 달했다. 오늘날 참전 용사 수당과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 비용을 제외하고도 미국의 국방 지출은 711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재량 지출의 60%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육 분야에 6%, 교통 분야에 1%를 사용되는 것과 비교된다. 미국 군사비의 총 규모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중 가장 많은 군사비를 쓰는 14개국의 총액과 맞먹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적대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의 군사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4배 많다. 향후 10년간 집행될 군사비는 2013년 기준으로 5조7700억 달러로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미국은 왜 군사력 증강에, 그것도 자국을 파경에 이르게 할 정도로 군사비를 지출하는 것인가? 조지프 나이의 저서 <주도할 의무>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내에 널리 퍼져 있는 "명백한 사명"이라는 신념은 이 질문에 대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구조적 답변은 장성 출신이자 2차 세계대전 영웅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서 한 마지막 대중 연설에서 던진 경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군산복합체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갖게 될 부적절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부적절한 권력이 재앙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현존하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군산복합체 세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위험에 빠뜨리게 놔두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경계심과 지식을 가진 시민들만이 평화적 방법과 목표를 갖고 거대 국방 산업과 군 조직을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만 국가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할 것입니다."
사실 연설문 원본에는 "군-산업-의회 복합체"로 쓰여 있었지만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로 구성될 의회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아이젠하워는 의회를 언급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미국 시민은 군·산·의회 복합체의 영향력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지도, 알지도 못했으며 통제할 힘을 충분히 가진 적이 없다. 대신 국방부 지출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1960년대 30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탈냉전 시대인 오늘날 711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실제 전쟁에 사용되는 돈을 제외하고 미국 국방성의 기본 예산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계산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1000여 개에 달하는 해외 주둔 기지에 최소한 1700억 달러, 핵전쟁 대비에 600억 달러, 141만9000명에 달하는 전투병 유지에 1360억 달러, 신무기와 무기 시스템 구축에 1140억 달러, 연구 개발에 610억 달러, 그리고 기타 신규 건설, 군 가족 주거 비용 등에 매년 예산이 집행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국방부가 실제로 얼마를 지출하는지 알지 못한다. '블랙박스'와 같은 비밀 예산을 포함해 최대 1조 달러라고 추정할 뿐이다. 국방부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지출 내역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핑계를 댄다. 이에 한 의원이 필사적으로 군사비 회계감사를 요구하는 법안을 냈으나 불행하게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 방위적 우세"(full spectrum dominance)를 점하기 위해 현대식 핵탄두와 무인 비행기부터 사이버전과 '전 세계 즉시 타격'(Prompt Global Strike) 시스템 등 필요한 무기들을 모두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제왕적 강박에 더해 두 개의 다른 역학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바로 군사적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와 의회 선거구 대부분에 신무기 체계의 생산 하청을 주는 군산업체의 교활한 전략이다.
군사적 케인스주의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대공황 시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 지출이 경제성장 회복에 필요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미국 경제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대공황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2차 세계대전에 지출된 대규모의 군사비 지출이었다(그리고 이것이 군·산·의회 복합 세력의 기초가 됐다). 미국 GDP의 4% 정도에 불과하지만 군사비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원동력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의회가 나서서 불필요한 군부대를 유지하고 국방부가 원하지도 않는 무기 체계 생산에 자금을 대도록 록히드 마틴(Lockheed-Martin), 보잉(Boeing), 레이턴(Raytheon)과 같은 초대형 군수업체들이 정치체제를 부패시키는 방식이다. 많은 의원이 전쟁과 무기 체계 의결에 반대할 경우 "안보에 안이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의원 자신들의 선거구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 심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약 국방부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 재량 지출 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인 60%에 이르는 국방부 연간 예산은 "지역 내 일자리를 가져다주기"에 여념인 이들에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정적 수단이기도 하다.
이에 딱 맞는 사례가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무기 시스템인 F-35이다. 미국 국방성이 기술적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음에도 2443대가량 구매하려고 하는 이 최신 전투기의 한 대당 가격은 200만 달러짜리 조종사 헬멧을 포함하여 1기당 약 900억 달러에 달한다. '예산 자동 조정'(시퀘스터)에 따라 예산이 8% 삭감되더라도 국방부는 8350억 달러를 주고 F-35를 구입할 예정이며 이 외에 F-35 시스템 운영과 유지에 추가로 6350억 달러를 지불할 예정이다.
▲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개발 중인 F-35 '라이트닝 Ⅱ' 전투기 ⓒ로이터=뉴시스 |
왜일까? 이유는 의회 선거구의 대부분인 미국 50개 주 중 45개 주에서 F-35 부속품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F-35는 곧 일자리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즉 돈이 곧 권력이거나 최소한 그 권력에 기여하는 세상에서 국방부는 정부 속 또 하나의 정부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국방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핵 선제공격 원칙 폐지 시도를 두 번이나 무산시키고 오바마 대통령 임기 첫해 동안 장성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 아프가니스탄 파병 인원을 두 배로 늘릴 수밖에 없게 만든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물론, 러시아와 핵 군축 협정인 신(新)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비준하는 조건으로 미국 핵무기와 핵무기 운송 체계 현대화 비용에 1850억 달러를 책정하게 한다든지, 또는 시리아 내전에 미군의 개입을 압박하는 이들을 포함해 공화당 상원의원 중에 군사주의자도 존재한다.
미국이 지금의 군사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정말로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회귀'할 재원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25년 전 이미 경제의 세계화와 이로 인한 미국 산업의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부시-체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수조 달러를 쏟아 붓고 대량의 부자 감세 정책을 펴면서 초래한 엄청난 재정 적자는 '총에 지출을 할 것인가, 버터에 지출할 것인가'라는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를 불러왔다.
흔히 미국이 향후 몇 십 년 동안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한 번의 예산안 대타협이 남았다고 한다.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즉 대타협으로 지난 몇 년간 의회의 감시를 피한 결과 올해 예산이 자동 삭감되는 '시퀘스터'가 발효돼 국방부 예산이 전반적으로 8%, 기초 생활 관련 비용과 비군사 부분 지출에서 9%가량 감소하게 됐다. 사회 서비스를 유지하는 대신 상위 2% 부자 증세를 통한 예산 적자 감소 방안을 공약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회 보장 정책, 빈민층과 중산층을 위한 주요 사회 서비스들은 축소되는 반면 대부분의 국방부 예산은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풍선이 계속 팽창하다 터져버리는 것처럼 초기 제국들이 생명력을 잃고 역사 속으로 퇴장할 때까지 자신들의 야망과 재원을 무리하게 확장해 온 과정을 묘사했다. 케네디는 이 저서를 통해 미국 지식인층에 경고를 보낸다. 미국이 한동안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그 제왕적 과욕은 이미 정점을 지난 듯 보인다. 미국의 군사력은 궁극적으로 경제력, 교육적 성과, 사회의 응집력에 의존한다. 하지만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성장으로 전 세계 GDP와 숙련 노동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몫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매사추세츠주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재원을 군·산·의회 복합체가 부당하게 취해 전쟁에 낭비하는 것보다 사람에 투자하고 침체된 내수를 반전시키는 데 투자해야 할 때라는 중요한 신호를 보냈다. 주민들은 당시 3대1 의 비율로 사회 보장 서비스 유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군비 감축, 부자 증세를 촉구하는 '모든 이를 위한 예산안'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매사추세츠가 진보적 성향의 지역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군·산·의회 복합체에 대한 대중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번역: 함승연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조지프 거슨 박사는 친우봉사회 동북아시아지역(the Northeast Region the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프로그램 소장이다. 그의 최근 저서로 <제국과 폭탄: 미국은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하여 세상을 지배하는가>(Empire and the Bomb: How the US Uses Nuclear Weapons to Dominate the World)가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탈군사화캠페인(Peace and Demilitarization in Asia and the Pacific) 실무그룹 의장으로 매사추세츠의 '모든 이를 위한 예산 투표(Budget for All Referendum)' 캠페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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