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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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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독주 말고 다른 이들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박근혜 대통령이 4일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한, 취임 후 첫 대국민 담화에 대한 반응이 싸늘하다. 취임 일주일이 지나고도 새 정부를 운영할 내각도 구성하지 못한데 "화가 난" 박근혜 대통령이 그 책임을 정부조직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에 돌리고, 이를 통해 국민의 호응을 바탕으로 한 여론의 압력을 야당에 가하는 수단으로 대국민 담화를 선택했다는 게 언론의 일반적 분석이다.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기에 눌려 제대로 여당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청와대의 2중대로 추락했음을 드러냈다는 야당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 초청 받은 전 국회의장 두 분이 이미 예고한 충고를 박근혜 대통령이 무시한 데서 온 자업자득이다.

관훈클럽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달 27일 임채정 전 국회의장(2006~2008년)을 초청해 '박근혜 정부에 바라는 사항'을, 같은 달 28일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2008~2010년)으로부터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드리는 몇 가지 고언'을 들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두 수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의 민주 발전과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대통령과 국회의 역할에 관해 진심 어린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두 국회의장은 각각 야당과 여당을 대표하는 원로 정치인이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에 관해서만은 의견이 일치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국회가 대통령과 평등한 관계에서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청와대는 여당을 통해 국회를 제2중대로 전락시키는 비정상적인 권력 관계가 작동함에 따라 우리 민주주의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었다.

3권 분립이 정립되지 않은 현실이 한국 민주주의 파행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원로 정치인은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여야가 협의해서 정치 갈등을 해결하는 민주주의를 실천해 주기 바란다"는 희망과 교훈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 국민 통합과 대화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대화나 대통합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살벌한 표정이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의 핵심 쟁점인 방송 진흥 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에 관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표정은 살벌하고 결의를 강조하기 위해 주먹을 흔들었다. '누가 감히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유신 체제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담화를 발표하는 동안 스스로 박(정희) 대통령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요즘 '박 대통령' 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르거나 부녀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 역시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순간적이나마 불필요한 판단의 혼돈을 주지 않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무의식중에 자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냥 '박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보다 두 박 대통령의 이름을 나눠 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야당 압박? 박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두 분 국회의장의 고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하면, 임채정 전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임 전 의장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내면적 준비나 인사 풀은 어느 정도나 준비된 것인지 솔직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제시한 국정 비전, 국정 목표 등에서도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박한 지적일지 모르지만, 국정 비전으로 내세운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지금의 상황과 동떨어진, 그냥 멋진 조어 같다"고 지적했다.

김형오 전 의장의 고언 가운데는 같은 새누리당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드리는, 말하기 힘든 쓴소리도 들어 있었다. "국회는 책임져야 할 권한도, 관행도 정립돼 있지 않다.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은 독립적이거나 수평적이지도 않다. 청와대에서 밀어붙이면 국회의원은 행동대원 역할마저 서슴지 않는다. 정쟁·투쟁과 선명성 경쟁을 차기 공천권 확보와 지역에서의 당선을 보장하는 확실한 보험카드라고 믿는 여야 의원들이 어디 한두 사람이겠는가?"라는 지적은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으로 차마 하기 어려운, 충정 어린 고언이라는 생각이다.

왜 여당인 새누리당이 여야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보다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고백'을 들었다는 생각이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여야 대결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먼저 여권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48%의 국민을 최대한 포용해야 한다. (…) 그런데 선거에서 이긴지 석 달째로 접어들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정부 조직이 늦어져서 모든 것이 지지부진하다고? 그 늦추어진 책임 또한 승자 쪽에 있다"고 단언했다.

두 전임 국회의장의 바람과 고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되기 닷새 전에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원로 정치 선배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노기 띤 살벌한 대국민 담화로 국민의 싸늘한 반응을 사는 정치적 실책은 범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그가 자신의 역사적 임무와 한국의 정치 상황,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자주 의문을 갖는다.

종교계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우려 섞인 충고를 하고 있다. 가톨릭의 <평화신문>은 지난 3일자 사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란다'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48% 유권자들을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하고 "정책 시행에 앞서 인간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에 부합하는지를 먼저 따져보길 부탁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대선 전에 후보들 정책 공약을 살펴본 결과, 박 대통령의 그것은 생명, 언론 자유, 사회 복지, 환경, 에너지 등 전반적 분야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거듭 강조하지만 인권, 생명, 환경은 경제성장과 부의 증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언론 자유를 강조한 것을 보면 방송 정책을 언론 자유보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려는 박근혜 정부의 방향에 가톨릭도 비판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에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벌써부터 많이 보인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앞세워 민주주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정책을 절대선으로 고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보다 경험이 더 많고 학식도 더 풍부한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제왕적인 대통령의 오만을 버려야 한다. 국민들의 반대 의견도 참작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오늘 소크라테스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다면 먼저 "너 자신을 알라"(그노시 세아우톤)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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