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참가자 자격은 '대기업 집단의 독점 규제' 기준과 '공정 거래에 따른 상호출자 제한 기업 집단' 기준에 속하지 아니한 것으로 제한하였다. 1차 입찰 때와는 달리 공공기관 및 공공기관 계열사와 지방 공기업들을 배제하여 민간업체들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1차 때와 같이 두 개 구역(DF6, DF7)으로 나눠 발주했고, 매장 면적의 50% 이상을 국산품으로 배치해야 하는 조건은 유지했지만 다른 세부 조건들은 달라졌다.
우선 운영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렸고, 입찰 기간도 1주일에서 한 달로 확대했다. 임대 보증금도 보증서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또 1차 입찰 때는 별도 입찰을 위해 빼놓았던 품목인 주류와 담배를 판매 품목에 포함했다. DF6 구역 중 75㎡(약 23평) 공간과 DF7 구역 중 286㎡(약 87평) 공간에 한해 술과 담배 판매가 허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입찰 면적이 1차 입찰 시 2173㎡에서 2차 재입찰 시에는 2723㎡(약 824평)로 늘었고, 구역별 최저 입찰가도 238억 원과 283억 원에서 각각 379억여 원(DF6 구역)과 409억여 원(DF7 구역)으로 올랐다. 입찰 참가 신청 마감은 2월 25일이며 새 사업자 선정을 위한 가격 입찰일은 2월 26일이다.
▲ 인천공항 관광공사 면세점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제품 전문 매장 ⓒ한국관광공사노조 제공 |
1. 대기업 면세점보다 불공평한 조건 - 국산품 50% 이상 배치 의무
인천공항에서 면세점 운영에 참가하게 될 새 사업자는 수입품보다 수익률이 낮은 국산품을 매장 내에 50% 이상 배치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는 상당히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라, 롯데 등 대기업 면세점들의 이익만을 보호해 주는 처사이다. 왜냐하면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와 신라 등 두 개의 대기업 면세점들에 국산품 50% 배치 의무 조항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산품 50% 이상 배치' 조건은 마치 국산품 판매를 장려하고 면세점에서 국산품을 보호하는 듯한 모양새를 내고 있지만, 새 사업자가 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이러한 의무 조항이 없는 신라와 롯데와 맞서 매우 힘겨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상업시설 운영사업자 모집공고】 10. 국산품 판매 면적 확보 낙찰자는 면세점의 판매 물품을 구성함에 있어 매장 면적의 50% 이상을 국산품 매장으로 설치하고 국산품을 진열, 판매하여야 합니다. |
인천공항 내 전체 면세 매장 면적 중 새 사업자가 운영하게 되는 면적 비율은 약 16%에 불과하다. 반면 기존 사업자들인 신라와 롯데가 운영하고 있는 면적 비율은 약 84%에 달한다. 그런데도 신라와 롯데 등 대기업 면세점들에는 국산품 50% 배치를 의무 조항으로 두지 않고 새 사업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중소기업에만 국산품 50% 이상 배치 의무를 부여한 것은 두고두고 불공정과 불공평 시비를 낳을 것이다. 거인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격이며, 대기업 면세점들에는 수익 극대화를 묵인해주고 중소기업에만 애국을 강요하는 셈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기업 면세점들(신라, 롯데)과 2년 연장 계약이 시작되는 2013년 3월 1일부터 국산품 50% 이상 배치 의무를 중소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신라나 롯데에도 부과해야 마땅하다. 이래야 인천공항에서 홀대받고 있는 국산품들의 매출이 실질적으로 늘어날 수 있고, 불공정과 불공평 시비도 사라질 것이다.
2. 임대 보증금의 보증서 대체? 대기업 면세점에 더 큰 혜택 줄 것
현재 인천공항 내 면세점 운영업체는 영업 개시 전에 연간 임대료(VAT 포함)의 6개월 치 임대 보증금을 현금으로 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재입찰 공고에서는 새 사업자에 대해 연간 임대료의 3개월분에 대하여 임대 보증금을 보증보험 증권으로도 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새로운 사업자로 들어오는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를 떠나 인천공항 면세점의 매출 중 90%를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 면세점들인 신라와 롯데에 앞으로 더 큰 혜택을 부여하는 길을 열어 놓을 수도 있다.
【상업시설 운영사업자 모집공고】 12. 기타사항 라. 낙찰자는 계약 체결 전까지 기본 계약 마지막 기(제5기) 연간 임대료(VAT 상당금액 포함)의 3개월분을 우리 공사에 현금 또는 국가계약법령 제50조 제7항의 보증서 등으로 납부하여야 합니다. |
현재 대기업 면세점들(신라, 롯데)이 인천공항에서 점유한 84% 면적에 대하여 계약 기간이 끝나는 2년 뒤 국제 입찰을 할 때,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번 재입찰과 같은 조건의 입찰 공고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공고한 입찰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보증금을 보증보험 증권으로 받고, 앞으로 공고할 국제 입찰에 대해서는 보증금을 현금으로 받는다면 국제적으로 불공정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년 뒤 신라와 롯데가 운영 중인 면세점 공간에 대해 입찰 공고를 낼 때에도 임대 보증금은 보증보험 증권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현재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 중인 신라와 롯데 등이 새 사업자와 비교할 때의 불공정을 문제 삼아 임대 보증금으로 냈던 현찰을 빠르면 연장 계약 기간이 시작되는 올해 3월부터 보증보험 증권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과연 이번 입찰 조건이 중소기업을 위한 것인지,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모양새이지만 앞으로 대기업 면세점들을 봐주기 위한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입찰 시 임대 보증금 납부의 보증보험 증권 대체는 대기업 특혜를 위한 길 터주기로도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대기업들에 대하여 연간 약 3030억 원의 보증금(2009년 7월 22일 <경향신문> 기사 '인천공항 일부 면세점 임대보증금 반환 요구' 참고 <필자>)을 받지 않게 되고, 그 덕분에 대기업 면세점들은 앞으로 막대한 자금 회전의 혜택을 볼 수도 있다. 면세점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 면세점들에 대한 추가 혜택을 방지하고 중소기업을 배려하고자 한다면, 임대 보증금의 보증서 대체가 중소기업에 한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3. 퇴로를 막는 위약금 제도 - 217억 원의 위약금
이번 입찰은 1차 입찰 때와는 달리 계약 기간이 5년으로 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것 같지만, 계약기간 5년은 중소·중견기업에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과도하게 책정된 위약 벌금 때문이다. 영업 도중 적자가 생겨 퇴점하려고 해도 연간 최소 보장액인 789억 원의 3개월분(VAT 포함)인 약 217억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영업이 안돼서 또는 기업 사정으로 나가려는 중소·중견 기업에 217억 원 이상이라는 위약금은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다. 이는 철수하고 싶어도 철수할 수 없는 일종의 노예 계약이다. 중소기업들로서는 재기할 수 있는 여건조차 봉쇄되는 것이다.
【상업시설 임대차 계약조건 中 위약벌금 관련】 제36조(위약벌) ①계약 상대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마지막(제 기) 월 최소 보장액의 3개월분 및 부가가치세에 상당하는 금액을 위약벌금으로 공항공사에 납부하여야 한다. 1. 제32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여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영업 미개시, 영업권리 양도/전대/담보, 다른 품목 취급, 임대료 연체 등) 2. 제33조 제2항에 의해 계약 상대자의 요청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정상적인 영업 불가능 등) |
이번 재입찰이 중소기업들이 면세점 사업을 시작할 길을 터주는 모양새를 취하려면, 이들이 실패할 때 재기할 수 있는 퇴로를 막는 위약금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 위약금 액수 또한 공항공사가 정한 '최소 보장액'이라는 제도를 기초로 공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금액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에 대한 위약금을 최소화하는 권한 또한 임대권자인 공항공사의 재량이다. 진정으로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려고 한다면 위약금 없이 자유로이 퇴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4. 감당하기 어려운 최소 보장액 책정 : 57평 늘려주고 300억 수익 내라?
이번 입찰에서 두 개 사업권 중 하나인 DF6 매장 면적 1338.4㎡(약 405평)에 대한 1년간 최소 보장액은 379억여 원이고, 또 다른 하나인 DF7 매장 면적 1385.3㎡(약 419평)에 대한 1년간 최소 보장액은 409억여 원이다. 두 사업권 공간을 합치면 총 매장 면적은 2723.7㎡(약 824평)이며 최소 보장액 합산액은 1년간 789억여 원이다. 최소 보장액 제도란 임대권자가 정한 최소 보장액 이상을 써낸 업체 중에서 최고가를 써낸 적절한 자격을 갖춘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제도이다(면세점 사업자는 매출에 상관없이 공항공사에 의무적으로 매년 최소 보장액을 내야 한다. <편집자>). 이번 입찰에서 두 개 사업권 낙찰 합산 금액이 약 800억 원~9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 관광공사 현재 매장 및 1차와 2차 입찰 시 매장 평수 등 비교표 ⓒ한국관광공사노조 |
관광공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매장 면적에서 불과 188.3㎡(약 57평) 늘어난 매장 면적을 물려받는 대가로, 새 사업자가 내야 할 최소 보장액은 관광공사가 내는 5년 평균 최소 보장액보다 약 3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 사업자로 선정되는 중소기업이 늘어난 약 57평에서 연간 300억 원 이상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주류, 담배 매장을 각각 1개씩 추가하였어도 롯데면세점의 주류·담배 매장 11개와 경쟁을 하면서 연간 3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혹여 새 사업자가 2-3년 뒤 과도한 최소 보장액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거나, 기존 대기업 면세점에 흡수될 때 '가혹한 최소 보장액'은 다시금 논란이 될 것이다.
5년간 최소 임대료도 3947억 원 이상
새 사업자가 내야 할 임대료도 만만치 않다. 이번 입찰에서 두 개 사업권인 DF6과 DF7의 5년간 최소 임대료 제시 금액은 각각 1898억여 원, 2049억여 원 이상이다. 두 개 사업권의 5년간 최소 임대료 제시 금액은 3947억여 원이다. 낙찰을 받으려면 새 사업자는 최소 보장액 이상을 제시하여야 한다. 물론 장사를 잘해서 임대료를 내고도 이익이 남으면 문제가 없지만 장사를 못해도 5년간 최소 3947억 원 이상으로 제시된 임대료를 내야 한다. 관광공사의 5년간 최소 임대료는 약 24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주류, 담배, 향수, 화장품 등 면세시장 내 매출 상위 4가지 품목들을 팔지 못함에 따라 책정된 금액이었다. 이번에 주류와 담배 판매가 일부 공간(DF6 구역에서는 약 23평, DF7 구역에서는 약 87평)에서 허가되긴 하지만, 새 사업자는 최소 임대료로 관광공사가 내던 액수보다 약 1500억 원을 더 내야 한다.
▲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최소 보장액 ⓒ한국관광공사노조 |
관광공사의 5년간(2008~2012) 경상 이익이 약 100억 원 내외인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새 사업자는 추가 이익 1400억 원 이상을 내야 손실을 면할 수 있는 구조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기본적으로 최소 보장액(임대료)은 업체 측에서 제시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번 입찰에서 보듯이 인천공항공사는 기본으로 최소 보장액을 제시하고 업체는 이 금액 이상을 불러야 낙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당하기에 가혹한 금액인 것은 사실이다.
5. 공익성 갖춘 공공기관 면세점 퇴출 위해 법과 제도 초월
지금까지 인천공항 내 면세점 입찰은 공항 개항 시에는 국제 입찰에 기준을 두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공공기관, 지방 공기업 등을 입찰에서 배제한 것은 법에도 또 입찰 관례에도 없는 일방적인 제한이다. 이는 앞으로 국제 입찰 기준과도 배치될 것이다. 이번 입찰이 우선으로 관광공사를 퇴출하려는 목적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국내 면세 시장에서 공익적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면세점들에 대한 향후 처리 과정도 우려된다. 제주JDC면세점(제주공항), JTO지정면세점(제주 시내), 전남개발공사면세점(무안공항) 등 공익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공 면세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설형특허를 내줄 명분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 입찰이 예정된 김포공항 면세점, 김해공항 면세점, 제주공항 면세점도 대기업에 대하여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지도 두고 보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공기업 선진화라는 주술에 사로잡힌 MB 정부는 관광공사 면세점을 퇴출하려는 목적으로 법과 제도를 초월한 입찰 조건을 무리하게 내걸었다. 그리고 이번 입찰 조건은 앞으로 타 면세점들을 입찰할 때도 기존 기준과 두고두고 상충할 것이다.
MB 정부의 마지막 땡처리 공기업 민영화, 면세점
앞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는 관광공사 면세점 존치 요구에 대해 보완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공기업들의 협의체인 '공기업 정책 연대'가 관광공사 면세점 존치 여부에 대한 정책 질의서를 보내자, 박근혜 캠프는 대선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17일 "관광공사의 운영 및 철수 시 문제점을 검토하여 판단, 문제점 보완 후 존치 수용"이라고 답변했다.
이를 의식한 듯 MB 정부는 속전속결로 입찰 절차를 밀어붙여 대통령 취임식 날인 오는 2월 25일에 참가 신청서를 마감하고, 새 정부 출범 다음날인 2월 26일에 가격 입찰을 하여 민간업체를 선정하겠다고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여 면세점 문제에 관심이 있어도 이미 입찰을 끝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번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는 실질적으로 MB 정부의 마지막 공기업 민영화다. MB 정부가 인수위원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면세점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박 당선인이 선거 승리 뒤 말을 바꾼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관광공사 면세점 민영화는 전 정부의 '마지막 공기업 민영화'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새 정부 출범 하루 만에 이루어지는 '제1호 공기업 민영화'이기도 하다. MB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이나 그 불명예는 새 정부가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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