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국의 12·19 대선은 동북아 권력 이동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국제정치성'을 품고 있다. 1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와 김정은 체제의 등장으로 시작된 정치권력 변화는 대만의 마잉주 총통의 재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통령으로의 귀환, 미국의 버락 오마바의 재선, 중국의 시진핑 체제의 등장을 거쳐 일본 자민당의 압승과 아베 신조의 총리 복귀로 막바지에 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의 대선이다.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7개국에서 1년 사이에 정치권력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러한 시간적 조우는 우연의 일치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동북아의 지형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마그마가 꿈틀거리고 있다.
격동의 동북아, 한복판에 선 대한민국
우선 북한은 세계에서 9번째로 핵무장을 하고 10번째로 우주 클럽에 가입한 군사강국이자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라는 '이중 정체성'을 안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은 세계 최연소 핵보유국 지도자이기도 하다.
유일 초강대국으로 불리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약한 상태에 있다. 반면 중국은 150년간의 '치욕의 역사'를 딛고 재부상에 성공하고 있다. 초조해진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미국의 세기'를 연장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를 봉쇄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큰 변수가 아니지만, 미국과 양대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가 말해주듯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특히 푸틴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그 길 가운데 하나를 동방정책에서 찾고 있다.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20년간의 장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거치면서 정치의 실종 및 우경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재탄생으로 나타났고 아베의 일본은 전후 가장 극우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은 이 한복판에 서 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파탄을 맞이한 남북관계, 한미동맹 '올인'과 한중관계 '홀대'의 교차, 러시아와의 지경학적 관계 구축 기회 유실, 그리고 한일관계의 널뛰기는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한국의 입지를 크게 축소시켰다.
기실 MB 정부는 역사상 가장 좋은 대외적 환경을 안고 출범했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와 북한의 호응에 힘입은 6자회담의 진전,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던 오바마 행정부 및 유연한 대외정책을 표방한 일본 민주당 정권의 등장,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구축된 한중관계의 질적 발전, 가스파이프와 철도 연결에 의욕적이었던 러시아의 입장, 중국-대만 관계 발전에 따른 양안 문제의 안정화 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그러나 MB 정부는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은 또 다시 동북아 지정학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딜레마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리더십은?
12·19 대선은 이처럼 '잃어버린 5년'을 딛고 코리아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지경학적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역사적 길목에서 실시된다. 대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이 국익과 한반도 주민의 복지를 증대시키면서 동북아에서 공공재를 창출할 수 있는 유력한 접근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지경학적 기회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5년간 더욱 날카로워진 한반도의 철조망을 거둬내고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웅비할 수 있는 지혜와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적대적 분단과 지정학적 딜레마라는 오랏줄을 풀어내고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된다.
그 출발점은 내년으로 60주년을 맞이하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데에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넘어 20년간 한반도를 짓눌려온 핵문제 해결의 중대한 모멘텀을 만들어내고 지정학적 오랏줄을 지경학적 네트워크로 전환시키며 세계 냉전을 완전히 종식시키는다는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또 다시 역사적 기회의 유실을 수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이 대동소이하다고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박근혜 후보는 '시대교체'를 내세워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대선 막바지까지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선거용으로 악용하는 모습에서 어떠한 차별성도 발견할 수 없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퍼주기 탓으로 돌리는 모습에서 새누리당의 색깔론은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 수준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세력이, 남북관계의 '발전'보다는 '악화'를 통해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이 정권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 공동체의 이익을 조화롭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아울러 세 차례의 TV 토론을 보면서 박근혜 후보가 과연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력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짙은 회의감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안보, 평화와 복지,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 가능성은 발견할 수 있다. 겸손함을 품은 자신감, 소통을 통한 공감 능력, 정책과 비전의 조화 속에서 격동의 동북아 시대를 해쳐나갈 실력과 매력을 겸비한 지도자의 탄생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문 후보의 잠재력과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국민적 열의가 만난다면, 대한민국의 재도약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신명나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거듭 강조하고 또 호소하고 싶다.
평화와 번영과 복지를 원하거든 투표하라!
▲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선관위 직원들이 이번 대선에 사용될 투표 용지와 기표용구 모형을 들고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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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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