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광명성 3호-2호기'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지난 4월 소형 인공위성인 광명성 3호 발사에 이미 실패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일 3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있어, 또 한 차례 한반도 정세가 크게 출렁일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이번 발사 계획 발표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중국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등장한 직후이자 일본 총선(16일) 및 한국 대선(19일)을 앞둔 시점에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의 새로운 리더십 등장이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 및 한미일의 강경 대응이라는 과거의 패턴과 맞물릴 경우 한반도의 미래는 또 다시 짙은 안개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남한과 미국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점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해 대북정책을 전환시키려는 의도'와 '한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학습효과를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4월과 2.29 합의 직후인 2012년 4월에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대화와 협상의 단절 및 대북 압박과 제재의 강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또 다시 로켓을 발사하면 '북한의 패턴을 종식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대선 개입용이라는 분석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남한의 정권 '재창출'보다 '교체'를 선호한다고 할 때, 대선을 전후한 로켓 발사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더 유리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북한도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의 견해로는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은 대외 관계에서도 다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김정은 체제가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전략적 비중을 그리 높게 두지 않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지난 20년간의 대미 관계 및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앞으로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는 '기대 이익'이 극히 불확실한 남방 관계, 즉 한미일과의 관계 개선보다는 독자적인 논리와 명분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강한 의사를 이번 로켓 발사를 통해 과시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분석이 곧 김정은 체제가 북미관계나 남북관계 개선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계 개선을 추구하겠지만 과거처럼 연연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취지의 분석이다.
▲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장면 ⓒ연합뉴스 |
선군정치 '완성'을 통한 체제 전환?
이에 따라 '미국 압박용'이나 '한국 대선 개입용'이라는 판에 박힌 분석과는 다른 각도에서 북한의 의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차적인 의도는 북한의 발표 내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로켓 발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제일 먼저 강조했는데, 이는 김정일의 업적을 기리고 김정은의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발사 시점을 김정일 서거 및 김정은 체제 출범 1주년에 맞춘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동시에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은 김정은 체제의 노선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미 김정은의 노선을 '핵보유-경제발전 병행 노선'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로켓 발사 계획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할 수 있다.
핵심은 '핵 억제력 확보'에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안보적 목적이다. 이미 5~10개 사이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2006년 7월, 2009년 4월, 2012년 4월 잇따라 장거리 로켓 발사에 실패함으로써 핵무기를 운반할 탄도미사일 능력을 제대로 과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이번 로켓 발사 계획은 탄도미사일 능력 증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력 증강,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 움직임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북한과 적대 관계에 있는 한미일 3국의 전력 증강은 북한의 강경파 입지 강화 및 이에 따른 핵과 미사일 전력 증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는 이전부터 나왔었다. 이번 로켓 발사 계획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또 하나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체제 정비이다. 경제발전을 최대 당면 과제로 설정한 김정은 체제는 이를 위해 군부 핵심 인사 숙청 및 세대교체, 노동당과 내각의 위상 강화 등 체제 정비에 나서고 있다. 얼핏 이러한 움직임과 로켓 발사 계획은 모순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 두 가지가 고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군사 우위에서 경제 우위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선군정치의 완성을 대내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는데 '핵 억제력' 증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로켓 발사는 이를 위한 유력한 수단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이번 로켓 발사에 성공한다면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선군정치의 핵심이자 국가안보 전략의 중추인 '핵 억제력'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는 경제발전에 집중하자는 내부적 논리 동원 및 자원 재분배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표적인 업적을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의미함)으로 내세우면서 개혁개방에 시동을 건 것과 대단히 흡사한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게 이러한 점을 강조하면서 양해를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로켓 발사는 김정은 체제에게도 위험 부담이 크다. 우선 4월 발사 실패 후 8개월이라는 짧은 준비 시간과 로켓 연료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엄동설한은 실패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또한 북한이 처한 현실을 볼 때, 로켓 발사 강행과 개혁개방에 필요한 대외적 환경 조성은 양립하기 어렵다.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의 속성상 로켓 발사 강행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김정은 체제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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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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