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씨는 23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정규직 전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삼는 것은 불법파견을 축소하는 회사의 기만적인 안"이라고 평가했다.
최 씨는 "현대차가 만든 자동차에 결함이 나면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차량 한 대만 리콜하지는 않는다"고 비유했다. 고용노동부와 대법원이 현대차 공장 전체를 '불법파견 사업장'이라고 판결한 만큼,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제시한 안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최 씨는 2004년부터 이미 현대차 정규직이다. 정규직 '전환' 대신 '신규채용'안을 고수하는 것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사측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 씨는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송전철탑에서 한 달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올라온 지 38일이나 됐기 때문에 방풍이나 우천대비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며 "우리보다는 온몸으로 비바람을 다 맞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현대차가 22일 불법파견 특별교섭에서 최병승 씨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다음달 5일까지 정규직 입사원서를 내라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최병승 : 두 가지 점에서 문제다. 현대차의 제시안은 불법파견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 대법원 판례는 동종유사 사안에 대해 법원이 내리는 최고의 권위 있는 판결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판례에 따라 정규직 전환 문제는 현대차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제시돼야 한다. 정규직 전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삼는 것은 불법파견을 축소하는 회사 측의 기만적인 안이다.
현대차가 제시한 내용도 문제다. 판례에 따르면 현대차는 (나에게) 입사원서를 제출하라고 것이 아니라, 현행법에 따라 인사명령을 내려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나는 2004년 3월부터 현대차 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이다. 현대차가 보도자료에 낸 것처럼 "대법원 판결과 중노위 판결을 존중"했다면, 복직 명령을 제출해야 한다. 근속, 임금도 판결과 단체협약에 따라 인정해야 한다. 현대차가 노사 교섭안에서 제시한 안은 불법파견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최병승 개인에 대한 신규채용 안은 받지 않을 생각인가?
최병승 : 내가 개인적으로 이 안에 대해 받고 말고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노사 교섭에서 제시안으로 제출된 것이기 때문에 그 결정은 노사교섭위원과 조합원 총회가 결정해야 한다. 원‧하청이 공동 교섭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교섭단에서 결정할 것이다. 또한 원하청 불법파견 특별교섭에는 정규직 채용, 불법파견 문제, 신규채용안 문제 등 다른 요구안까지 일괄 제출하고 일괄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안건을 하나씩 처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프레시안 : 최병승 개인 신규채용안에 대한 비정규직 노조의 입장은 무엇인가?
최병승 : 노조에서 결정된 바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정규직으로 전환(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법리적 해석으로는 맞지 않다. 노조는 그런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인사명령을 내면 모를까.
프레시안 : 현대차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철탑농성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언제쯤 내려올 계획인가?
최병승 : 우리 두 사람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러 철탑에 올라온 게 아니다. 특정한 계기가 있다면 그에 맞춰서 여러 동지와 집단적으로 농성 해제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그 키를 쥔 쪽은 노조가 아니라 현대차다. 현대차가 얼마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는가에 따라 농성 해제가 논의될지 여부도 달려 있다.
"현대차에 결함 생기면 리콜은 한 대만 하나?"
프레시안 : 현대차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
▲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인 최병승 씨. 최 씨는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 받았지만, 현대차는 최 씨의 '정규직 전환'을 거절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예를 들자면 이렇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자동차에 결함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한 소비자가 불량을 문제제기했다고 해서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차량 한 대만 리콜하지 않는다. 당시 만들었던 같은 차종 전체를 리콜한다.
대법원 판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판결하면서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판단 기준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 판결 기준을 같은 사안에 동일하게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미 행정기관인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판정하고, 그 결정을 사법부인 대법원이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을 현대차가 거부할 수 있는 명분과 이유가 어디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법원 불법 판결나도 검찰은 2년째 '조사 중'
프레시안 : 최근 문재인, 박근혜, 심상정, 안철수 등 대선후보들이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냈다. 대선후보 대부분이 동종업계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최병승 : 대선후보가 일차적으로 고려해야할 과제는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가, 할 수 있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이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지 2년이 지났다. 현대차는 지난 10년간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했다. 노동자들이 현대차의 범죄 행위를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아직까지 현대차에 대해 기소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다. 노동부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신들이 2004년에 불법이라고 판정했고, 2010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났으면 그에 걸맞은 행정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행정조치도, 사법처리도 안 받는데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겠나? 대선후보라면 최소한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행정, 사법적 조치가 이뤄질 것을 요구해야 한다. 법 이행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게 대선후보가 할 수 있는 핵심 사안이다. 그래야 진정성이 있다.
"비바람 맞는 쌍용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걱정"
프레시안 : 고공농성을 한 지 38일째다. 건강 상태는 어떤지 알려 달라. 춥지는 않은가?
최병승 : 건강은 괜찮다. 처음에 적응하는 과정이 있었다. 생리적인 문제로 인해 식사량을 조절한다든가, 자칫하면 실족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좁은 공간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적응되고는 굳이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대신 현대차가 불법파견 문제를 일관되게 부정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막막하다는 생각은 있다.
바람은 부는데 올라온 지 38일이나 됐기 때문에 방풍시설이나 우천 대비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우리보다는 쌍용차 동지들이 더 걱정이다. 온몸으로 비, 바람 다 맞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열흘까지 해봤는데 (쉽지 않았다). 쌍용차 동지들이 훨씬 걱정이다.
프레시안 : 동료들은 철탑에 자주 오가나?
최병승 : 아침에 출근 선전전을 하러 온다. 동료한테 전화도 오고 (철탑 위로) 소리 지르면서 대화도 한다. 주로 '밥 먹었냐' 이런 얘기(웃음). 사람들은 안부를 가장 많이 물어본다.
내가 철탑에 올라오는 과정부터 조합원들이 지켜주고 있다. 회사가 농성장을 침탈하려고 할 때도 조합원들은 파업하고 나와서 온몸으로 막았다. 그 과정에서 다친 분도 계시다. 밥도 삼시세끼 다 챙겨주시고 필요한 것은 수족처럼 챙겨줘서 그런 게 더 미안하다. 우리는 (철탑) 위에 있는데, 조합원들은 아래서 방한지 쓴 텐트에서 자는 게 안쓰럽고 죄송하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현대자동차와 동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최병승 : 회사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과하고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결정했으면 좋겠다. 특히 회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상식적인 자기 결정을 내려야 노사 협의가 가능하다.
저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해왔다. 햇수로 9년 동안 우리가 요구해온 것들이 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합원들이 9년 동안 지켜온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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