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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의 변화, 그리고 두 가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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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후보의 변화, 그리고 두 가지 한계

[김상조 칼럼] 경제민주화 공약, 중요한 변화 있지만 한계도 명백

16일 오전, 드디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였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의 갈등 속에 나온 공약인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평가가 없을 수 없다.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 기준부터 밝혀야겠다. 경제학의 한 분야인 산업조직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구조(structure)-행위(behavior)-성과(performance)' 모형을 차용하기로 한다. 시장의 구조가 경제주체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시장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논리다. 이를 정책 분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거꾸로 가면 된다. 즉, 효율과 분배의 측면에서 시장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먼저' 불법행위나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규율하는 수단(행위 규율 수단)을 사용하고, 그래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단(구조 교정 수단)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현실 상황 판단 - 행위 규율 수단 - 구조 교정 수단'이 얼마나 정합적 체계를 이루고 있느냐가 공약 평가의 기준이 될 터이다. 경제민주화 공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상의 평가 기준을 강조하는 이유는, 요즘 모든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공약 평가 방식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예컨대, 재벌개혁 공약 평가를 보면, 출총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금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여부 등의 구조 교정 수단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것들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개혁 의지 여부'나 '반시장적 태도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 방식은 무의미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구조 교정 수단은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동원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출총제 등의 구조 교정 수단만으로 재벌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구조 교정 수단이 없다고 재벌개혁이 바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관건은 이러한 정책 수단들의 체계적 정합성이다.

이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평가해보자. 오늘 발표된 '35개의 실천 과제' 중에서 금산분리를 위해 일정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의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행위 규율 수단이다. 즉 박근혜 후보 공약은 행위 규율 수단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분야만큼은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 뒤처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후보의 중요한 변화이자 명백한 한계다.

박근혜 후보가 (특히 재벌기업의) 불법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들을 도입하고 그 엄정한 집행을 약속한 것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변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바는, 출총제 등의 구조 교정 수단이라기보다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이 이 정도로나마 변화했다는 것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구조 교정 수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철학의 한계다.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 및 이로 인한 시장구조와 민주질서의 왜곡이 행위 규율 수단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순진한 착각이다. 행위 규율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구조 교정 수단이 예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김종인 위원장과 갈등을 빚게 된 근본 배경이다.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행사 금지 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기존 순환출자 규제는 삼성⋅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3개의 그룹에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제한된 의미의 구조 교정 수단이다. 이것이 재벌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아니다. 다만, 이 규제의 진정한 효과는, 해당 그룹들이 순환출자를 끊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예컨대, 3년의 유예기간 동안) 그룹 전체의 출자구조와 조직형태를 지금보다 합리적인 모습으로 재편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런 제한된 의미의 구조 교정 수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 후보의 또 다른 한계는, 그 행위 규율 수단이나마 제대로 집행할 거냐는 의문에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즉 진정성의 문제다.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함으로써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투 트랙'으로 갈아탔는데, 이는 단순한 레토릭으로 해석할 수 없는 박근혜 후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투 트랙'은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과는 배치된다는, 즉 경제민주화는 분배 요구라는 기득권 세력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 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공약 발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데, 이를 단순히 공약 초안에서 몇 가지가 빠진 것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투 트랙'론은 박근혜 후보가 여전히 박정희 개발모델의 낙수효과, 그리고 이를 세련되게 표현한 작금의 경제위기론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불만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종인 위원장이 토사구팽 당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역할을 접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박근혜 후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후보는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은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서 기업집단법 관련 주장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코멘트도 빠뜨릴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집단법 하면 독일의 콘체른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심각한 오해다. 독일 콘체른법의 핵심은, 기업집단 관련 규정을 하나의 법에 모두 포괄하느냐 아니면 여러 법에 나누어 담느냐라는 법 형식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콘체른법은, 다수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기업집단 자체를 하나의 법적 주체로 간주하는 단일체 접근법(single enterprise approach), 또는 지배-종속의 '상황'이 형성되면 지배회사 행위의 부당성과는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종속회사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부여하는 '상황에 기초한 접근법'(situation-based approach)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 전통과 관행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어렵다.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에는 독일 콘체른법을 모델로 한 기업집단법 논의는 사라진 대신, 영국⋅프랑스의 법규와 판례에 기초한 다원적 접근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내가 제안한 것도 이 다원적 접근법이다. 즉 각 법 영역의 취지에 맞게 기업집단의 범위 및 그 권리⋅의무를 유연하게 조정하여 도입하자는 것이다.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상법(회사편)에서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소한의 규정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에서는 더 포괄적이고 엄격하게, 마지막으로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하는 금융법에서는 가장 넓으면서 가장 강하게 규정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집단법이라는 표현의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업집단에 대한 종합적 규율체계'의 확립을 10년 정도의 장기과제로 생각했다. 이게 선거 국면의 정치인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다. 더 선명한 걸 요구했다. 그래서 내가 '일단' 재벌 관련 규정들만을 하나의 법에 모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제안했다. 어차피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시급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취지다.

사실 이게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의 '제3장. 경제력 집중 억제' 파트는 협의의 경쟁법과는 잘 안 맞는 부분이다. 전경련 등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을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규제라고 비난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이나 EU의 경쟁법에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게 없다. 그래서 이 공정거래법 제3장을 들어내서 별도의 법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러한 기존 논의에 기초하여, 공정거래법 제3장을 분리하고, 다른 법률들에 산재해 있는 재벌 관련 규정들을 옮기고, 최근 논의되는 새로운 규제 장치들을 추가하는 형태로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각 규제 장치들 간의 보완⋅대체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니까, '과잉규제'와 '규제공백' 위험을 극복한 정합적 규율 체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후보가 대규모기업집단법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 특히 대규모기업집단법이 현행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댄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경제력 집중 억제 수단들을 공정거래법에 둔 현행 체계가 더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벌개혁 논의가 공정위의 행정규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그 결과 공정위의 자의적 재량권 행사가 언제나 논란이 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3장에 있는 장치들, 그리고 최근 논의되는 재벌규제 장치들은 사실은 회사법⋅금융법에 두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두를 생각은 없다. 어차피 기업집단법 논의가 단기간 내에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만,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기업만 상대하는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문제의식이 망각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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