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지의 고민은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향후 5년 동안 어떠한 업적을 낼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대표된다. 분단국가의 대통령 후보로서 향후 남북관계발전을 위해서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영예는 물론 후세에게도 역사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과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연합뉴스 |
첫째, 집권 여당의 후보로서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한 긍정적인 업적이 있다면 어떠한 차원에서 활용하느냐의 문제이다. 국내경제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 정부 집권 초기인 2008년 당시 매우 어려운 국제경제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글로벌 금융위기에 잘 대처한 측면이 인정된다.
박근혜 후보 스스로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밝혔듯이, G20 회의 및 핵안보정상회의의 유치를 통해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 위상을 국제사회에 알린 점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과가 대통령 개인의 역량 덕분이라기보다는, 한국 국민 전체의 노력, 유능하고 부지런한 공무원 집단, 그리고 역동적인 시민사회 등이 모두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의 경우 현재 경쟁관계에 있는 어떤 후보보다도 외교정책 전반에 걸친 관심과 전문지식이 깊고 또한 국제 사회에서의 인지도 역시 매우 높은 정치지도자이다. 세계 곳곳의 지도자들과 오랫동안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슈와 전략이 복잡다난해지고 있는 외교현실에서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능력, 주요 국제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등 오랫동안 잘 준비된 능력으로 인해 세계 주요 지도자들로부터 신뢰할만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근혜 후보는 향후 한국의 미래 비전과 관련하여 외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정치지도자이다. 이러한 정황은 박근혜 후보가 집권할 경우 현 정부의 외교성과보다도 훨씬 더 큰 업적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대화해 정신에 기반을 둔 동북아평화협력
박근혜 후보는 기본적으로 "신뢰외교"라는 키워드를 강조하고 있다. 권력관계, 영향력, 보상, 억지 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외교관계에 '신뢰'의 개념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박후보는 이러한 전통적인 외교개념으로는 복잡하게 얽히고 네트워크화 된 21세기의 외교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신뢰외교'에서 의미하는 신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배려, 믿음, 관용의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사회의 행위자들 간 상호이익의 창출 및 확산을 위해서 서로 조화로운 관계에 이르도록 만드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실천에 이르게 만드는 "전략적" 의미의 신뢰로 설명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뢰외교'에서의 신뢰는 외교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목표 지향적' 성격과 '외교 수단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철학적 깊이가 전제가 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짐작컨대, 박근혜 후보가 강조하는 새로운 외교관계의 강화는, 한국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도 발굴하고, 동시에 안보 차원에서 국가이익도 챙겨야 한다는 의지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탈근대적 국제관계의 속성을 보이는 외교환경 하에서, 신뢰의 개념을 외교전략과 결합시키는 노력은 매우 창조적인 접근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동북아 역내 국가들간 갈등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면서, 박근혜 후보의 신뢰외교는 동북아 지역적 차원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박후보는 "한중일사무국" 오픈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제 2회 한중일 국제포럼"에서 행한 축사를 통해, 현재 아시아가 처한 경제성장과 안보위기가 공존하는 '아시아의 패러독스'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다. 동 연설에서 동북아 국가들간 신뢰의 실종을 지적하면서,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역사인식을 통해 한중일 삼국이 "대화해(大和解)"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박 후보는 한중일의 경제성장 의지가 외교안보적 협력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한중일 트로이카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신뢰에 기반 한 새로운 동북아의 실현을 위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대체로 동북아의 화해와 평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준 인식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동북아 지역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은,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문제와 서로 의존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비전으로 연결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 전반에 걸친 정교한 정책적 준비를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실천을 유도하는 전략적 개념의 '신뢰'
둘째, 남북관계 분야와 관련하여, 이미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정책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 그리고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 지금까지 많은 대화와 합의가 있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까닭의 밑바탕에는 남북한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반론적 의미의 신뢰가 아니라, 남북이 서로 어떤 특정한 약속에 이르게 만들고, 또한 그러한 약속을 서로 지킬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종의 "강압적인 신뢰(enforcing trust)"의 의미를 가진다. 북핵문제가 20년을 넘어서면서,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인식을 반영하여, 가치적 개념인 "신뢰"를 실천적 차원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의미 있고 창의적인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뢰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출발은, 첫째 과거의 수많은 약속 중에서 서로 지킬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또 실천 가능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 남북한 사이의 대화가 즉시 재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로는, 대북한 인도적 지원은 가능한 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성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셋째, 남북한 사이에 차츰 신뢰의 씨앗이 싹트게 되면, 사회문화 교류사업도 대폭 늘리고 동시에 남북한 사이의 대규모 경제협력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적 정교함이 전제가 된 거시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포용과 원칙을 모두 계승하는 대북한 균형정책
사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쟁을 경험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대북정책과 남북관계가 국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기 보다는 늘 염려와 불안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입장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변화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북한은 변화 대신 오히려 핵개발에 계속 집착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더욱 강화하면서, 결과적으로 남북한 사이에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남북통일의 가능성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경제통합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많은 한국인들은 과거 햇볕정책과 지금 정부의 원칙론적 대북정책 모두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국민 여론을 존중하면서,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은 지금까지의 대북정책 교훈을 모두 받아들인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현실적으로 한미관계 및 북미관계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측면이 있으므로, 박근혜 후보에게 있어서 긴밀한 한미동맹의 유지는 한반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전략적인 현실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동시에 박후보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북미관계의 개선에 대해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관련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많은 미국인 및 중국인들은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사이에서 어떠한 외교적 스탠스를 유지할 것인지 매우 궁금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후보는 한미간 전략동맹 관계를 더욱 심화하고, 한중간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강화하는 일이 결코 서로 충돌하는 상반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게 있어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병행발전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정합게임'이라는 전략적 혜안을 국민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6자 회담국 전체를 포함하여, 2012년은 전 세계적으로도 50여개 국가의 국가리더십 교체가 이뤄졌거나 그에 준하는 변화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다. 동북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례가 없는 갈등을 지켜보면서, 국가이익과 지역이익 사이의 정교한 균형감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포함하여 외교정책 전반에 걸친 박근혜 후보의 특화된 능력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넘어 '외교강국 한국' 만들기와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11·12월호(제21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2012 대선후보의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입니다.
* 원제 : 박근혜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신뢰외교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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