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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실패를 인정한 노무현의 성찰은…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 증세 제대로 할 후보를 뽑자"

10월 21일,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주요 직책에 있던 9명의 친노 인사들이 그 자리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당 내외의 비판적 여론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이것을 그들의 선거 전략이라고 본다. 친노 세력의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주 작은 희생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들은 참여정부는 잘못한 것이 없고 자신들도 떳떳한데 다만 여론이 좋지 않으므로 선거를 앞두고 잠시 물러나 있자는 것일 게다. 나는 이것이 그들의 선거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참여정부의 오류와 실패의 원인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530만 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된 이유를 다각도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참여정부의 실패에 대한 국민적 심판 정서가 강력하게 작동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누가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나오더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민생의 희망을 주겠다던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서민 대신 삼성과 손을 잡았고, 사회공공성의 강화 대신 의료민영화와 한미 FTA의 추진을 선택했다. 땅값과 집값은 쉼 없이 치솟았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투기에 가담했다. 대학등록금은 치솟았고, 사교육은 기승을 부렸다. 빈부격차의 심화 속에 여기에 가담할 능력이 없던 서민들은 당시 가슴에 멍이 들었다.

둘째, 우리국민의 심성과 사회 전반에 걸쳐 각자도생의 원리와 욕망의 정치가 만연해 있었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라는 시장만능주의와 온 나라에 만연해있던 '나만 살겠다는' 욕망의 정치를 억압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감당했어야 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그렇게 하는 것 대신에 신자유주의에 편승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심화시켰다. 의료민영화와 한미 FTA의 추진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와 욕망의 정치에 해당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한때 유행이었다. 마치 누구나 자유 시장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허상을 심어주고, '우리'나 '공공성' 보다는 시장의 영역에서 '나'만 잘 살겠다는 그릇된 인식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시장만능주의라는 시대적 상황과 우리 국민의 오도된 인식이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를 대선 판으로 불러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왕 시장만능주의의 길로 갈 것이라면 경험 있는 기업인 출신의 '원조' 시장주의자가 더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국민적 인정을 받게 되면서 이미 2007년 대선의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이 나라가 잘못된 길로 너무 깊이 들어왔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이 앞장섰던 신자유주의의 길은 결국 우리 국민의 부자 되겠다는 욕망을 충족시키기는커녕 양극화와 민생불안만 더 가중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나의 살림살이만 어려워진 게 아니다. 주변의 모두가 어렵다. 부모도 어렵고, 형제도 어렵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시대에는 노인이나 빈자 등의 사회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OECD 평균의 3배다. 특히,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의 5배나 된다. 범죄율도 급증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위기에 처해있다. 나만 살겠다는 시장만능과 경쟁만능의 경제사회적 운영원리가 초래한 이 엄청난 비극을 이제는 종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된 데 대한 원인적 고찰과 반성이 요구된다. 나는 이렇게 된 데 대해 이명박 정부에게만 모든 죄를 묻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토건+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참극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잘 알고 있고, 이미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이를 심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곳을 악마시하고, 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곳의 허물을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성찰하고,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참여정부의 실세였던 분들이 아직까지 진정성 있게 성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유감을 표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선거공학에 불과할 개연성이 높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의 문재인 후보 캠프 직책 사퇴 소식을 접하면서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후 성찰 내용을 다시 생각해본다.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와 탈권위주의 등에서 이룬 큰 성공과는 달리 '복지국가 분야'라고 알려진 경제사회적 민주주의에선 시대적 과제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참모들 누구도 인정하지 않던 참여정부의 실패를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끗하게 인정했다. 복지를 더 확충하지 못한 것과 사회양극화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반성했다.

그리고 미국식의 경제사회적 발전이 아니라 유럽식 발전의 길, 즉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었다. 이러한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대통령 혼자, 또는 집권세력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우며,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였던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을 만들고 조직하는 일이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시대의 새로운 민주주의인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로 나아가는 데서 깨어 있는 국민의 조직된 힘과 정치사회적 참여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복지국가'를 기치로 국민운동 또는 시민운동을 전개하였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입에 담는 것은 참여정부를 비난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 그러했듯이, 제대로 된 성찰이 없으면 올바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나는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분들 중의 상당수가 매우 유능하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분명해야 한다. 실패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비전에 대한 확고한 동의가 그것이다. 성찰과 동의는 참여정부 주도세력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다 해당한다. 민주당도 여기에 예외일 수 없다. 우리 국민은 지금 민주당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이제 더 이상 민주당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거나 손을 뻗지는 않는다. 이미 우리 국민은 긴 세월에 걸쳐 그렇게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외의 새로운 인물에게 기대를 보내고 있는 바, 이것이 지난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사회과학적 현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라는 새 시대의 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권위주의를 해소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실 분은 복지국가 정당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조하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새 나라, 즉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게 이번 대선의 시대적 의미이자 상황적 과제임을 우리 국민들이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복지국가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복지국가 건설의 토대를 확고하게 구축하겠다는 분을 우리의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당장은 그런 분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새로 뽑힌 대통령이 역동적 복지국가를 실제로 건설할 수 있도록 국민적 총의를 모아 지지해주어야 한다.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 요구되는 부담을 우리가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깨어 있는" 국민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지난 5년 넘는 세월 동안 하나의 큰 흐름과 싸워왔다. '대한민국 선진화론'이 그것이다. 이것은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우리나라 우파의 전략이다. 여기서는 복지와 성장은 서로 충돌하는 대립물이다. 복지에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이며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이다. 경제성장을 이룬 후에 그 파이의 일부를 복지로 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와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제사회 운영원리를 가진 나라에서는 복지와 경제는 명백하게 상충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복지와 경제성장이 상충하는 게 아니라 선순환하거나 유기적으로 통합된 관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불과 1-2년 전부터였다. 그리고 이제 2012년 대선에 나선 대부분의 후보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기조 위에 서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복지국가 건설의 대장정에 돌입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국가 건설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데 있어 대통령이나 정당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의 인식과 태도인데, 아직 이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경제민주화 조치를 통한 공정한 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양극화와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규제 중심의 경제민주화만으로는 안 된다.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와 사안별로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개입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누진적 조세제도와 적극적 재정정책이 중요한 이유이다. 복지와 경제가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스웨덴이 복지와 경제가 대립하는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높고, 더 공평한 분배를 달성한 결과로 인해 국민의 행복도가 더 높다는 것쯤은 이제 다수의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스웨덴 국민들이 부담능력에 따라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이래서는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우리가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원한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러면서 부담능력에 따라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지국가 건설을 원한다면 온 국민에게 부담능력에 따라 세금을 더 내도록 설득하겠다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나는 이게 옳고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대통령 후보라면, 나는 당연히 보편적 증세를 주장하고, 이것을 공약의 전면에 내걸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 혁명'의 큰 길로 온 국민이 함께 나와 줄 것을 요청드릴 것이다. 반복지의 덫에 갇혀 있는 나라, 복지는 좋은데 부담은 싫다는 국민들로 넘쳐나는 나라는 '나'만 살겠다는 각자도생의 시장만능주의 세상,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만큼 발전"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이 유권자인 국민의 수준을 의심하며 이리저리 측량해보고 있다.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슬그머니 집어넣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후보들에게 정치적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복지국가 증세를 과감하게 주창하는 후보를 우리의 대통령으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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