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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0년, 문화 교류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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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0년, 문화 교류의 명암

[中國探究] 한중수교 20주년 <3>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각계에서 양국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중수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된 대륙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교 이후 양국은 더욱 우호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양국 간 문화 교류 역시 활발히 전개됐다.

한중 문화교류의 역사: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20년 간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양국 문화 교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수교 직후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1994년 당시 김영삼 정부가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뒤 상호 학술, 문화, 언론, 청소년, 체육 분야 등의 교류가 탄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양국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호 탐색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대중문화의 중국 내 인지도와 호감도가 상승하면서, '한류'는 두 나라 문화 교류의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상호 인식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보면 '한류'같은 상징적 사건들은 여전히 빈약한 편이다. 더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화 갈등 요인들도 곳곳에 잠복해 있어 양국 관계를 시험하고 있다.

한류: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한류는 한중수교 20년 문화 교류를 정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한류는 사실 역사적으로 중국에게 일방적으로 문화를 전수받기만 했던 우리가 역으로 우리 문화를 중국에 전파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자존심을 키워준 현상이었다. 실제로 동아시아 문화 형성의 구조는 전통적으로 중국 내부에서 형성된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단방향적 특징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한류는 그 방향성을 방사형으로 바꾸면서 아시아 문화의 진앙을 한반도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현상이었다. 물론 그것은 근대 이후 국가 간 문화 교류의 플랫폼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대중문화가 우리 전통문화와 일본문화, 미국문화, 홍콩문화 등을 두루 섭렵하고 소화하면서 일정한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류 현상에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정서가 자주 개입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사회에는 한류 현상에 민족적 자존심을 덧입히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중국 입장에서도 한류의 유입을 체제 안정화 차원에서 속도와 폭을 조절하는 상황에서 이런 시각이 활용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적 정서가 자극받으면 한류 같은 문화현상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또한 대중가요 같은 특정 대중문화 영역에서만 그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논쟁적이다. 예컨대 출판이나 영화,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의 중국 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더 큰 문제는 상호 교환의 차원에서 우리 문화가 중국에 들어가는 만큼 중국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불균형한 대중문화의 질과 수준, 역사적‧이념적 격차의 문제 등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진출'에만 도취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입'에 대해서도 문과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한 때가 됐다.

다소 낮은 층위의 문화 교류: 불충분한 상호 인식

한류를 벗어난 논의에 접어들면, 양국 간 문화 교류는 다소 낮은 층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문화외교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정부 간 문화교류는 주요한 현안에 밀려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차원에서 이른바 "분위기 조성용"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민간에서의 교류는 20년 사이에 괄목상대할만한 변화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별‧영역별‧주체별로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낮은 충위의 문화 교류가 지속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까닭은 제도적 측면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호 인식과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념적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문화 교류를 언급하면서 양자 사이의 공통성과 유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주로 전통 문화에 대한 상호 인식에서 기인한다. 대표적인 것이 공자를 표상으로 하는 유교 문화에 대한 태도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바와는 달리 한국과 중국 모두 유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복잡성을 형성하는 요인 중, 전통적으로는 도가 사상을 꼽을 수 있고, 현대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꼽을 수 있다. 도가와 사회주의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한국의 입장에서 둘은 이해하기 어려운 요인들이다. 중국은 유가의 현실성에 더하여 도가의 개방성과 상상력, 사회주의의 이념성 등이 한꺼번에 작동하고 있는 사회다. 이 둘은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이질적인 문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한 이해가 '남조선' 층위를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대중문화는 공고한 유가적 전통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거기에 일본의 식민 문화, 기독교 문화, 미국 대중문화, 다문화 등 매우 혼종적인 양상으로 축적됐다. 이런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다면 상호 인식 지평의 확대는 요원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잘 이해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양국은 상호 내부 특수성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이 일천한 우리로서는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이념 외적 층위에서 주로 수행하려는 경향이 짙다. 또 중국은 한국 사회의 기독교 문화와 일본문화의 잔재, 그리고 한국 전쟁이 남긴 상흔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주로 유사성의 확보, 나아가 이질성의 방기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화산업: 문화무역의 장애를 제거하고 규모를 키워야

산업적 층위에서도 문화교류 내지 문화무역이 더욱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이나 중국 모두 문화를 산업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시간이 오래되지는 못했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늦게 문화산업을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는 중국을 문화산업의 잠재적 시장으로만 간주한다는 점이고, 우리는 중국에게 아직 시장이 되어 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문화산업 역시 자본과 인력, 기술이 집약돼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런 의미에서 정교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출판, 방송, 영상, 게임, 공연, 전시, 축제, 테마파크 등 분야에서 우리가 축적해 온 인력과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한다. 중국은 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받았지만, 여전히 이념적 장애와 규제가 만만치 않게 발목을 잡고 있다. 이념적 층위에서 중국은 문화를 체제 유지와 선전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일거에 그런 요소들이 제거되기도 어렵다. 마침 한중 FTA 체결 협상이 진행 중이니, 문화산업계가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바를 잘 반영할 필요가 있다. 문화의 특성을 감안하여 창의성을 보장하고, 상호 개방을 확대한다면 양국 간 문화무역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게 될 것이다.

문화갈등: 건설적 한중관계 20년을 위해

여전히 양국 간 가장 중요한 뇌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문화갈등의 문제다. 한중 문화갈등은 2000년대 초반 '동북공정'의 문제로부터 비화되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사례들이 터져 나왔다. 강릉 단오제 유네스코 등재, 창춘 동계 아시안게임 "백두산은 우리 땅" 퍼포먼스, 공자 한국인설 논란,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폭력사태, SBS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사전 보도 사건, 첨단 정보기기 한글 자판 국제 표준화 논란, 아리랑 중국 국가무형문화유산 등재 사건 등 최근에는 갈등 발생이 더욱 빈번하고 격화되고 있다.

문화갈등은 개별 사안들이 각각의 특수성을 띠고 있어서 각각의 영역에 대한 특수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은 주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민간에서 우발적으로 촉발되는 갈등에 양국 언론과 유명 인사들이 개입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도 엿보인다. 양국 정부와 전문가들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 조정의 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문화갈등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그 규모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양국 모두 특수한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갖고 있는 바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갈등이 불가피한 것임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이를 미연에 예방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리를 좁혀가기 위해 양국 정부는 물론 언론과 전문가, 민간 주체가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노력들이 향후 20년 더욱 건설적인 한중관계를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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