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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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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 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 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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