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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에 괴물 같은 에이스 선수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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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에 괴물 같은 에이스 선수가 없는 이유

[런던올림픽] '별'들 무수한 영국 꺾은 한국 팀의 에이스는 '팀'

어린 시절 우리는 수많은 축구만화를 봤다. 배금택의 <황제의 슛>, 김철호의 <그라운드의 표범>, 오일룡의 <공포의 센터포워드> 등. 한국 축구가 아시아 수준에 머물고 있던 1980-1990년대 우리는 만화를 통해 세계 정상에 도전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비정상적인 환경과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위 에이스라는 선수들의 등장을 괴물처럼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서 정말 세계 정상에 도전하게 됐다.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U-20 월드컵) 4강 진출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출발이었다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은 한국 축구의 탈피가 이뤄진 성과였다. 이제 10년이 지나 마지막 숙제였던 올림픽 4강에도 진출했다. 개최국 영국을 승부차기 끝에 꺾은 홍명보 감독과 젊은 선수들의 도전은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 팀에는 괴물 같은 에이스가 없었다. 그들에겐 오직 11명, 그리고 벤치의 7명까지 돈독하게 뭉치는 팀(Team)이라는 이름의 에이스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살아도 팀이고, 죽어도 팀입니다."

▲홍명보 감독은 "팀"을 강조해 한국 축구에 승리를 안겼다. 5일 오전(한국 시각)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 영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승부차기에서 5대 4로 승리한 후 홍 감독과 선수단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홍명보 감독은 지난 6월 말 올림픽에 참가할 18인의 대표팀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회에 임하는 결연한 각오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선수 개인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미화하는 걸 거부한다. 홍명보 감독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은 우리, 그리고 팀이다. 감독으로서 처음 세계 무대에 도전했던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부터 지속되어 온 콘셉트다. 당시 그는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삼총사>에 등장하는 대사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 One for All)'를 팀의 구호로 제안했을 정도다.

차범근, 박지성과 더불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지만 홍명보 감독은 외로웠다. 자신을 비롯한 소수의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거는 분위기,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표팀은 월드컵 무대에서 늘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선수 생활 말년인 2002년 거둔 월드컵 4강의 성공이 그에게 지도자 인생의 변치 않을 철학에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바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진리였다.

영국 팀 물리친 홍명보의 철학,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 같은 신념은 그대로 발휘되고 있다. 우리 대표팀은 누구 하나에 의지하지 않는 팀이다. 언론에서는 박주영, 김보경, 기성용, 구자철 등의 활약에 명운이 걸린 것처럼 말했다. 박주영과 김보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 승승장구할 수 없을 것이다. 홍명보호는 몇몇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로 버텨냈다. 영국전에서는 지동원이 나타나 해결사 역할을 해줬다. 김창수와 정성룡이 뜻하지 않게 다쳤지만 그들을 대신해 투입된 오재석과 이범영은 흔들림 없이 자기 몫을 다했다. 이번 대회 성공의 진정한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단단한 수비라인은 4경기에서 2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홍명보 감독이 그토록 강조했던 팀 정신(Team spirit)의 결과물이다.

반대로 우리와 상대했던 영국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했어도 팀으로 뭉치지 못하면 무수한 별들도 하늘 위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였다. 축구종주국인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갈등이 심해 단일국가임에도 유일하게 월드컵을 비롯한 주요 대회에 축구협회 별로 대표팀을 만들어낸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탓에 그동안 올림픽에는 출전을 거부했었다. 이번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개최국이라는 대의명분과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64년 만에 단일팀을 구성했다.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마이카 리차즈, 애론 램지, 다니엘 스터리지 등 프리미어리그의 스타들도 대거 선발했다.

그러나 정체성이 갈라진 그들을 팀으로 엮기에 한 달여의 시간은 부족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선수 차출을 거부했고 긱스, 벨라미를 비롯한 웨일즈 출신 선수들은 잉글랜드의 여왕을 위한 국가를 부르지 않았다. 실제 경기에서도 영국 단일팀은 전혀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 경기 중 정성룡과 리차즈가 충돌해 쓰러졌을 때 우리 선수들은 모두 정성룡에게 달려가 몸 상태를 확인하고 일으켜줬지만, 리차즈 주변에는 의무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국이 동기부여를 갖고 하나가 돼 뛰었다면 영국은 단지 기계적인 역할을 하는, 팀으로서 껍데기만 있을 뿐이었다.

4강에서 우리가 상대하게 될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능력은 오히려 영국 단일팀보다도 높다. 사실상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나설 국가대표팀 수준이다. 하지만 조별리그, 그리고 온두라스를 상대로 한 8강전에서 보여준 브라질의 경기력은 조직적인 플레이보다는 개인 전술에 의한 플레이가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럽 진출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유럽 명문클럽의 스카우터들 앞에서 기량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브라질을 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개인 능력, 체력 등 모든 면에서 냉철하게 볼 때 이길 가능성보다 질 가능성이 많지만, 팀플레이라는 변수에서 우리가 앞선다면 영국전처럼 또 한 번의 짜릿한 승리가 현실이 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거스 히딩크나 주제 무리뉴 같은 뛰어난 전술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을 모아 팀워크라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그는 뛰어난 리더이자 보스다. 축구의 역사에서 길게 보면 승리는 늘 전술가가 아닌 보스의 몫이었다.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브라질전을 준비한다. 우리는 4강을 넘어 결승전이라는 무대가 처음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몫이 되길 꿈꾼다.

▲한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 지동원이 5일(한국 시각)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영국을 상대로 득점을 한 뒤 팀 동료 윤석영, 구자철, 기성용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한국은 오는 8일 오전 3시 30분(한국 시각) 맨체스터 올드 트라포드 경기장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인 브라질과 결승행을 놓고 4강전을 치른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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