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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대북정책, 1971년 대선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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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의 대북정책, 1971년 대선의 데자뷰

[한반도 브리핑] 대선국면에서 외교전략 논쟁의 필요성

무너진 것이 너무 많아, 차마 문제는 외교야!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문제는 경제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다. 주변 열강들의 힘이 아시아로 쏠리고 있다. 아세안이 분열하고, 중국은 패권을 숨기지 않으며, 미국의 대중국 포위외교가 가속화되고 있다. 한반도는? 안타깝게도 다시 21세기판 신냉전의 전방초소로 변하고 있다.

이대로 우리의 운명을 주변 열강에 맡겨야 하는가? 국권을 상실한 19세기처럼. 중요한 국면이 아닐 수 없다. 대선국면에서 외교 전략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필요한 이유다. 레토릭이 아니다. 심도 깊은 문제의식과 실현가능한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일군사협력,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활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귀환'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으로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의 '공동성명'이 무산됐다. 1967년 아세안 창설 이후 처음 겪는 사태다. 미중 양국의 대립과 갈등이 이미 아시아를 무대로 분출하고 있다. 중국은 영향력 행사를 자제하지 않을 기세고, 중국의 주변국들은 미국을 호출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정책은 날개를 달았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정부의 한일 군사협정 체결이 시도됐다.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 핵심에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작동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간의 조약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동북아 냉전에서 일본의 역할을 재평가했고, 일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후체제를 봉합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미국은 오랫동안 한미일 삼각동맹을 동북아 냉전의 기본전략으로 유지해 왔다. 한일 군사협력은 미국의 오랜 요구였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유지해 오면서도, 한일 군사협력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역시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문이다. 그 핵심에 독도문제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전후 일본의 영토를 정확하게 명시했다면, 다시 말해 조선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했다면, 오늘날 일본이 저렇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독도문제는 영토문제이기 이전에 역사문제라는 점, 즉 일본 식민지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당당하게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히 그 책임을 미국에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전략구상을 덜컥 받았다. 밀실처리 과정은 부차적이다. 이미 한반도 주변해역에서 벌어진 확산방지조치(PSI)훈련과 정례적인 군사훈련에 일본 자위대가 참여했다. 또한 한일 군사협력은 한미 전략대화의 결정 사항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를 읽지 못하고,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수용해 버린 것이다. 한일군사협력은 그래서 한국 외교의 현주소다.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아찔한 덫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결정이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오랫동안 차근차근 진행되어 왔는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북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김정은 체제이후 많은 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정보 무능이다.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는 여인이 부인인지, 동생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인지를 아직도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대화와 접촉이 이루어졌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정보다.

군의 핵심 실세였던 리영호의 석연치 않은 해임도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이 사태를 정확하게 해석할 정보는 제한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부는 이 사태를 심각한 권력투쟁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부인인지, 동생인지도 구분 못하는 정보력을 감안할 때,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당의 제도적 기능이 정상화되고 있다. 당의 군에 대한 영도도 단지 원칙이 아니라, 제도적인 형태로 정비될 것이다. 문화적 개방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젊은 지도자의 스타일상의 변화로 해석하기에는 그것이 북한 사회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경제정책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2000년대 중반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시도하다 실각되었던 박봉주 전총리가 당 경공업부 부장으로 복귀해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내각의 권한과 역할도 강화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역량의 강화는 남북접촉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박정희 정부가 1971년 남북대화를 시작할 때, 핵심 논리가 바로 접촉을 해야 북한이 무엇을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북대화 중단은 북한 정보에 대한 무능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정세 관리에 대한 한국의 실종이 장기화되었다. 남북관계 없이 우리가 어떻게 동북아 외교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1971년 선거의 데자뷰

이명박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날이 밝으려면 조금 남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그리고 김정은 체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대선 주자들에게 물어야 할 때다.

▲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은 레토릭의 수준에서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말하며 신뢰를 강조하고, 균형적 시각을 내세운다. 그러나 방법은 없다. 5.24 조치의 철회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한 민감한 남북관계 현안을 언급한 적도 없다. 그래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어떻게 남북관계를 재정립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40여 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1970년 박정희 정부는 닉슨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전향적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고자 했다. 바로 1970년 8.15 구상이다. 물론 교류와 협력을 개시하겠다는 구체적인 구상은 반공법의 현실을 강조하는 법무부 장관의 반대로 추상적으로 발표되었다. 8.15 구상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향적이었고, 결국 적십자 회담과 7.4 공동성명의 계기를 제공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예비군 폐지를 비롯해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박정희의 대응은 무엇이었나? 전향적인 8.15 구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냉전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선거 며칠을 앞두고 북한의 남침 위협이 임박했다는 기자회견을 남발했고, 국민들의 반공정서를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미국이 남침위협을 과장하지 말 것을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말이다.

1971년의 재연, 과도한 억측일까? 새누리당이 한편으로는 합리를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 극우인사의 친북인사사전을 근거로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라. 일부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합리적 포장과 색깔 본색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핵심은 철학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1972년 세계적인 데탕트 국면에서, 결국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관계의 실질적 전환 계기가 되지 못했다.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은 남북대화 전환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7.4 남북공동성명 재해석', <역사비평>, 2012년 여름호 참조)

일부 보수신문들조차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적극적 외교 전략이 필요하고, 그 핵심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정세 주도권의 확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색깔론이 판치고, 몇 마디의 추상적인 개념만 있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 반복되는 역사는 훗날 보면 희극이지만, 동시대인들에게는 비극일 뿐이다.

달라진 정세,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야권주자들도 외교 전략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집권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구상했던 것을 실행하기만 하면 될까? 한반도 평화체제, 남북 경제공동체, 그리고 실질적인 남북연합 진입, 그것은 목표다. 방법은 더 구체적이여야 한다. 달라진 상황도 반영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전략을 어떻게 구상할지는 더욱 어려운 문제다. 한미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하면서, 한중관계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인 현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갈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도 중요하다. 푸틴의 동방전략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검토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특정 주변국의 특정한 이해관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복합외교의 지혜가 필요하다. 전략과 과정,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외교혁신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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