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파도 병원 못가는 트랜스젠더, 이유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파도 병원 못가는 트랜스젠더, 이유는…

[성소수자의 의료 이용 불편기·②] 성소수자에겐 너무 높은 '병원 문턱'

오는 8월 2일부터는 전국 모든 병의원이 접수창구와 응급실 벽에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액자 형태로 게시해야 한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따르면, 환자는 △성별·나이·경제적 조건으로 진료에 차별을 받지 않고 △자신의 질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의료진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비밀을 보장받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피해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로부터 여전히 거리가 먼 환자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들이다. 이들은 △배우자가 '법정 보호자'가 아니어서 수술을 거부당하고 △자신의 질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의료진과 툭 터놓고 상담하기 어려우며 △진료 수속을 밟을 때부터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까봐 노심초사해야 하고 △수술이 잘못돼도 어디 가서 호소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맞아 '성소수자의 의료이용 불편기'라는 주제로 병원에서 소외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편집자>

- 성소수자의 의료 이용 불편기
<上> "레즈비언이 입원하면 게이가 '남편'이라고 써주고…"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트랜스젠더 A 씨는 병원을 찾았다. 진료 수속을 밟기 위해 간호사 앞에서 신분증을 냈다. 간호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 "본인 맞으세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왜 2로 시작하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A 씨에게 쏠렸다. A 씨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A 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난감하다. "주위 사람들이 (외모를 보고) 여자로 봐주지도 않을 것이고, 남의 신분증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도 없으면 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지만 이미 대기실에는 다른 환자들이 바글바글하다.

신원 노출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본인을 인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나는 여자다"라고 대답하기를 강요받는 것을 A 씨는 폭력적이라고 느낀다. 그가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는 또 다른 이유다.

성별 정정 못한 트랜스젠더에겐 너무 높은 '병원 문턱'

A 씨는 주민번호를 바꾸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기 위한 조건으로 법원은 가슴 제거 수술, 자궁 적출 수술, 남성 성기 수술을 모두 요구한다. 그는 앞의 두 수술은 했지만 마지막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는 수술한 자신의 몸을 두고 "천을 조각조각 잘라서 보기 흉하게 꿰매놓은 느낌"이라며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몸 상태가 괜찮으면 상관없는데 수술이 건강을 상당히 망쳐놓는다"고 말했다. 길게 늘인 살에 소변줄을 연결하는 남성 성기 수술은 특히 위험해서 부작용도 많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더 이상의 수술은 원하지 않았다. "(성 전환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 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MB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올스톱이었어요." 그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A 씨의 사례처럼 더 이상의 수술을 원하지 않거나 수술할 돈이 없어서 성별 정정을 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에게 '병원 문턱'은 너무나도 높다. 그는 "돈을 모으는 중이라서 가슴 제거 수술밖에 못한 친구들이 예를 들어 산부인과에 가려면 가슴은 없고, 상당히 난감하다"고 말했다.

▲ 국내에 성형외과는 많지만 성 전환 수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믿고 찾을 만한 곳은 거의 없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수술 후 건강은 나빠졌는데…"

그러나 위험한 수술을 받고 호르몬을 주입하는 이들에게 '의료 접근성'에 대한 열망은 크다. 성 전환 수술이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고, 호르몬 치료가 간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A 씨는 "해외 사이트를 찾아보면 보통 사람 수명이 80살이라고 했을 때 우리 수명은 60살밖에 안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호르몬 수치 검사, 간 검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랜스젠더들은 대개 (신원 노출의 위협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아예 포기한다"며 "지금은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주변에서 "툭 터놓고 상담 받아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병원이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 사이에 '괜찮은 병원'에 대한 정보는 곧잘 단절된다고 했다. 일단 법원에서 성별을 정정한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떠난다고 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용을 마련한 친구들은 주민등록번호를 정정하고 '이쪽 사람들'과 안 섞이려고 합니다. 과거가 밝혀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저쪽 사회'와 섞여 살고, 이쪽 사람들과 연 끊고…. 그렇게 정보가 단절되면 남은 사람들은 다시 처음부터 '괜찮은 병원'을 수소문해야 하죠."

그는 "나도 호르몬을 주입한 지 7년이 됐는데, 호르몬을 맞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며 "이러한 고민조차 마음 놓고 상담할 만한 의료기관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여성질환은 시집가야 해결된다?…내겐 쓸모없는 처방"

다른 성소수자도 믿을 만한 의료기관이 없다고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레즈비언인 B 씨는 "갑상선에 종양이 생겨서 여성암전문병원에 갔다"며 "그런데 의사가 '이런 건 시집가면 낫는다. 혼기도 찼는데 빨리 시집가야지'라고 말했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B 씨는 "나도 건강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출산을 해야 낫는다고 말하면 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처방"이라며 "의사에게 충분히 내 정보를 제공하면서 진료를 받을 조건 자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살림의료생협의 추혜인 가정의학 전문의는 "의사들이 성소수자 환자에 대해 충분히 훈련이 안 됐고, 성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불편해지는 경험을 한 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며 "이 때문에 환자들은 묻지 않고 호르몬 약을 달라는 대로 주는 의사를 찾아가는 등 위험한 해법을 찾게 된다"고 지적했다.

추 전문의는 "미국에서는 성소수자와 관련한 의학 학회가 있고, 1년에 정기적으로 컨퍼런스를 진행한 뒤 여기에 참가한 의사가 원할 경우 홈페이지에 '성소수자 친화 의료기관'이라고 공개한다"며 "한국에도 그런 의료인의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이 많아져야"

우리 동네 '맞춤 주치의'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오는 8월 개원을 앞둔 서울 은평구의 살림의료생협이다. 살림의료생협은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자신이 제공한 정보의 범위 내에서는 정당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림의료생협의 추혜인 전문의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나 의사에게 충분히 자신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고 일상적으로 건강 상담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다음은 '성소수자의 건강권'과 관련한 추혜인 전문의와의 일문일답. <편집자>

프레시안 : 많은 성소수자들이 '믿을 만한 의료기관'이 없어서 의사와 마음 놓고 상담을 못한다고 호소한다. 의사로서 '환자 맞춤형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성소수자라는 정보가 어떨 때 필요한지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추혜인 : 내 주변에 레즈비언인 젊은 친구들 중에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이 있다. 자궁경부암 주사는 세 차례나 맞아야 하고 가격도 50여만 원으로 비싸다. 그런데 사실 자궁경부암은 남성과의 성관계를 통해 옮는 바이러스로 생기는 암이다. 남성과 성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레즈비언은 그런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는데 이들이 상담을 충분히 못 받고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다.

또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가면 검사하기 전에 '성관계 여부'를 물어본다. 한 레즈비언이 성관계가 "있다"고 답해서 질 안에 들어가는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통증이 심하게 유발됐던 적이 있다. 그 환자는 여자와 성관계를 한 적은 있지만 남자와 한 적은 없었다. 결국 질 안에 큰 기구가 들어가면서 검사 도중에 하혈을 하거나 질 주름이 찢어진 일이 생겼다. 보통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레즈비언 성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생각했을 때 성관계를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프레시안 : 자궁경부암 예방주사가 남성에게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왜 그런가?

추혜인 :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는 '인간유두종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주사다. 이 바이러스는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을, 남성에게는 음경암이나 항문암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는 으레 젊은 여성들이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남성이 맞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생물학적인 성별 여부보다는 어떤 성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상담이 이뤄져야 맞춤형 진료를 권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살림의료생협에서 성 전환 수술을 하려는 사람에게 주치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추혜인 : 수술하기 전후에 어떤 식의 수술이 있고,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수술을 위해 준비돼야할 것이 무엇인지 조언할 수 있다. 큰 수술을 받기 전에는 호르몬 치료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식의 안내들을 같이 하면서 어떻게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을지를 함께 의논할 수 있다. 환자가 수술하는 의사에게 가기까지의 상담과 두려움, 부작용, 모르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1차 의료기관이 할 수 있다.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거나 예방주사를 맞을 때나 산부인과나 비뇨기과적인 검사를 받을 때,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얘기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 진료실은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인 만큼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진료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다. 내가 요즘 성소수자 환자를 위한 진료를 준비하기 때문에 이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더 나아가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을 다른 의료기관으로까지 확산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