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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가장 낮은 곳'을 품어야 산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현대차 1사 1노조 추진에 부치는 제언

# 1. 2003년 5월 2일, "우리가 2·3차 하청을 품지 못하면 …"

2003년 4월 말,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한 노동자가 자신의 실명을 걸고 '비정규직 인간선언'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발간했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비정규직도 당당하게 노조를 결성하고 권리를 주장하자는 취지였다. 이 호소가 있은 후 5월 2일, 100여명의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모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조 결성을 위한 활동을 선언하게 된다.

한 달 전에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되기는 했지만, 거대한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이 공개적으로 노조 결성을 선언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1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그마저도 1차 하청과 2·3차 하청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에서 노조를 조직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1차 하청을 조직한 후에 2·3차를 비롯한 청소·경비·식당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순서를 밟자는 주장도 간간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 2003년 5월 2일, 현대차비정규직투쟁위원회 결성식 ⓒ현대차비정규직투쟁위원회

그런데 5월 2일, 감동적으로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비정규직투쟁위원회를 결성한 후, 긴장감을 털어내고 처음 만난 어색함을 씻기 위해 두부김치와 막걸리로 뒷풀이를 시작하자, 그 자리에 모였던 평범한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선도적으로 준비하던 이들의 고민을 깨끗이 정리해 주었다.

"우리 1차 하청도 정규직과 차별받고 고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 옆의 2차, 3차 하청노동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있습니다. 임금도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있어요. 우리가 만약 2·3차 하청을 품지 못한다면, 비정규직을 품지 못한다고 욕먹는 정규직과 우리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 2. 2003년 5월 26일, 현대차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인간선언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진 아산공장, 그런데 이곳에서 첫 번째 비정규직 투쟁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아산공장에서 청소와 경비를 담당하는 동서다이너스티라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항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5월 26일자로 작업 전환배치가 벌어졌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고약한 것이었다. 특히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 집중적으로 부당한 전환배치가 벌어졌다. 이를테면 공장의 동문으로 출퇴근 하던 노동자를 남문 쪽으로 전환배치해서 출퇴근할 때 이전보다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도록 한다든지, 주야간 근무를 임의로 조정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 투쟁조끼를 입고 구호를 외치는 아산공장 청소노동자들

사측이 끝내 이를 무시하고 전환배치를 강행하자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동서다이너스티 사무실 점거농성에 나섰다.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일만 할 것이라 믿었던 고령의 청소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조끼를 입었다! '파업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 80여 명이 달려왔다. 정규직노조 중재로 협상이 주선되었지만 사측의 태도 변화가 전혀 없어 결렬되었고, 점거농성 지속과 함께 잔업거부 투쟁이 벌어졌다. 이제 막 노조를 시작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청소부들의 투쟁에 가장 높은 연대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수십 명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사내하청노조에 가입했다.

이 투쟁에 대한 현대차 원하청 자본의 탄압은 잔인했다. 무려 26명의 사내하청노조 간부들이 해고되었고 공장 출입마저 봉쇄되어 노조는 궤멸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청소부들의 투쟁에 함께 했던 것을 어느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는 명제를 몸소 실천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숱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10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있다.

# 3. 2003년 6월, 울산공장 투쟁 "누구는 리어카 만들고, 누구는 자동차 만드나"

▲ 울산공장 2·3차 하청 투쟁 피켓팅을 벌이는 비정규직 조합원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울산공장에서도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2·3차 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법정최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월차 하나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 화장실도 자유롭게 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 날에도 야간근무를 돌아야 하는 비참함과 분노가 폭발했다.

현대세신, 명성기업, 진우공업, 태형산업… 울산공장 곳곳에서 2·3차 하청노동자들의 저항이 터져나왔고, 비정규직투쟁위원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1차 하청 노동자들 역시 이 투쟁에 함께 하며 약속을 지켰다. 화장실 갈 때마다, 부모님 제사가 있을 때마다 "내가 인간인지 노예인지"를 의심해야 하는 비인간적 처우에, 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분노하며 공장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누구는 리어카 만들고, 누구는 자동차 만드나? 차별을 중단하라!" 대부분의 2·3차 하청노동자 투쟁은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7월 8일 울산공장에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비정규직노조 탄생에 2·3차 하청노동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의 명칭에 '사내하청'이 아니라 '비정규직' 네 글자를 선명하게 넣은 것도, 1차 사내하청만이 아니라 2·3차 하청, 그리고 사내하청만이 아니라 청소·경비·식당 등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겠다는 정신을 담은 것이었다. 울산공장 비정규노조 결성을 기점으로, 그 이후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주도하여 만든 노조들은 대부분 '사내하청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노조'라 이름 붙여졌다.

# 4. 밥 짓는 노동자들, 통근버스와 시설관리 노동자들도 하나의 노조로

2005년에 기아차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된 이후, 제조업 비정규직노조 중에서는 가장 왕성한 조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화성공장 식당 노동자들이 대거 비정규직지회로 가입해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기아차 사측은 식당이 멈추자 생산직 노동자들 식사 수만 개를 도시락으로 공수해야 했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생산직 역시 1차 하청만이 아니라 2·3차 하청 모두를 조직대상으로 했으며, 식당은 물론이고 도장부 청소노동자들 조직화에도 성공했다. 말 그대로 기아차 안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직종 조직화에 나선 것이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의 경우 2004년 원·하청이 함께 나선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 생산직에서 일하던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는 성과에 이어, 통근버스·시설관리 등 직종과 고용형태를 넘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길로 나아갔다.

강(江)
도종환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낡은 책장 속의 역사책을 꺼내읽듯 오래 전 역사를 장황하게 다시 소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0년 전부터 활발하게 시작된 제조업 비정규노조의 역사는 출발 시점부터 '낮은 곳으로 임하는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직종과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10년이 지난 오늘, 이제 운동은 더욱 발전하여 현대차 울산·아산·전주 3개 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원·하청 합동으로 특별교섭을 진행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 시점에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하는 '1사 1노조' 문제이다.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위해 모든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생산직만이 아니라 직종과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거의 역사 위에서,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과도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자본이 노동계급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시키고, 비정규직마저 1차 하청과 2·3차 하청으로 분할해온 반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맞서 거슬러 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정규직 현대차지부와 울산·아산·전주 비정규직 3개 지회는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해 '1사 1노조'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1사 1노조를 완성할 것인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 양측 모두 큰 틀에서 1사 1노조를 추진해야 한다는 데에는 뜻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10년 가까이 독립적인 체계로 운영되어온 노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은, 하루 이틀 토론으로 명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쟁점이 있다.

이를테면 현재 불법파견 특별교섭 관련, 1사 1노조를 곧바로 완성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투쟁을 전개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진행되는 원·하청 공동투쟁을 성과 있게 마무리한 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연말쯤에 1사 1노조를 완성할 것인지? 그리고 1사 1노조로 노조를 통합할 경우 비정규직 조합원을 어떻게 편재할 것인지도 합의해야 한다. 비정규직 부문위원회 형식으로 당분간 비정규직을 별도로 묶어서 편재할 것인지? 아니면 공장별·사업부별·부서별·선거구별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완전히 하나로 통일시킨 체계로 편재할 것인지?

각각의 주장이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노조 지도부들 사이의 토론만이 아니라 조합원 대중의 충분한 토론 속에서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 사이에 수많은 이견과 논쟁에도 불구하고 올해 불법파견 특별교섭의 핵심 요구로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내걸기로 합의한 저력이 있기에, 나는 원·하청 노동자들이 현장 토론을 통해 좋은 결론을 도출해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하고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1사 1노조"의 취지에 걸맞게, 원·하청 단일노조는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10년 전의 비정규직노조 건설의 역사를 되짚어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당·청소·통근버스 등은 나중에 확대하기로 하고 생산직군만 먼저 조직하자던지, 혹은 2·3차 하청이나 한시하청(단기계약직)은 어려우니 우선 불법파견이 확실한 1차 하청만을 조직하자던지 하는 이상한 논의에 빠져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문제는 비정규직노조들이 건설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실천적으로 검증하고 극복해온 쟁점들이다. 간부나 활동가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운동'을 전개해왔기에, "모든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논쟁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

자본의 분할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

노동운동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노동운동은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비로소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구성을 보면 1차 하청에 비해 2·3차 하청의 숫자는 소수이다. 하지만 만약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1차 하청만을 조직대상으로 삼고 노조를 결성했다면 과연 지금까지 노조를 지키는 것이 가능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2·3차 하청이나 청소·경비·식당 노동자들의 역동적인 저항이 없었다면 출발 시점부터 비정규직노조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2·3차 하청을 품지 못한다면 비정규직 괄시하는 정규직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는 평범한 노동자의 말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출발시점에서 자본의 분할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할 때에 노조로 모여드는 노동자들의 높은 계급의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만약 1차 하청만 조직한 상태에서 2·3차 하청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데 도와주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그런 비정규직노조가 무슨 사회적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쌍용차 노동자들이 2009년 77일간의 점거파업을 벌일 때, 파업노동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들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이젠텍 노동자들이 싸울 때 제대로 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연대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 싸움 꼭 승리해서 평택 지역에, 그리고 전국에 모든 투쟁에 연대를 함으로써 과거의 죄를 씻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의식이 있었기에 쌍용차 노동자들은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정리해고 철회"만이 아니라 "분사화(도급화) 저지", "비정규직 총고용 보장"이라는 3대 요구를 함께 내걸었다. 파업노동자들 모두가 진실로 "정리해고가 철회된다 해도 분사화나 총고용 보장 약속 없이는 파업 중단 없다"고 외쳤다. 분할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77일 점거파업은 분명한 사회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분할에 맞서지 않으면 생존도 담보할 수 없다

현대차 1사 1노조가 모든 비정규직을 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데에는 또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런 방식으로 1사 1노조가 작동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10년 전 역사를 들먹이긴 했지만 2007년 기아차에서 1사 1노조가 실현되었을 때, 식당이나 청소노동자들까지는 포괄하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2·3차 하청은 조직대상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시절 부지회장을 지냈던 이동우 조합원은 2·3차 하청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기아차지부 조합원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분할에 맞서지 못하면서 점차 원·하청 자본은 하청업체 내에 계약직이라는 또다른 신분과 분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최근 비정규직노조 부문에서도 복수노조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금호타이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각각 복수노조가 출현해 현재 현장 내에 4개의 노조가 병존하고 있다. 그런데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부문에서 출현한 복수노조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재작년 정리해고 투쟁과정에서 정규직노조가 힘에 밀려 500여개 공정을 단계적으로 도급화 하는데 합의한 바 있는데, 사측은 그 자리에 순차적으로 2·3차 하청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2·3차 하청을 중심으로 복수노조가 만들어지고 만 것이다. 도급화 합의로부터 출발해서 "가장 낮은 곳(!)"에서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더니 이제 1차 하청의 일부까지 조직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보더라도 민주노조운동이 1사 1노조를 실현함에 있어서 '모든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삼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대기업노조 부문에는 복수노조 출현 사례가 그리 많지 않지만, 만약에 자본 측이 마음을 먹는다면 정규직 부문이 아니라 비정규직, 특히 2·3차 하청처럼 가장 낮은 부문의 비정규직들을 동원해서 복수노조 설립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집회장에서 흔히 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외치지만, 사실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1차 하청과 2·3차 하청,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셋이고, 열이고 스무 개로 분할되어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외쳐야 할 슬로건은 "노동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이다.

▲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은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며 2010년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공장에 붙인 현수막. ⓒ프레시안(김봉규)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 4000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먼저 소리 소문도 없이 잘려나갔다.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20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잘려나갔다. 그 시절에는 비정규직노조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자본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전에 비정규직을 먼저 공격하는 이유는, 서서히 정규직을 포위해서 공격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적으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 있는 정규직을 먼저 공격할 경우, 정규직이 저항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비정규직이 함께 단결투쟁에 나서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직력과 투쟁력이 취약한 비정규직을 먼저 공격한다면, 저항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손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리한 뒤에 정규직을 공격하게 되면, 이미 비정규직 잘려나갈 때 눈을 감았다는 이유로 정당성과 명분을 상실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정규직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며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부으며 포위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입에 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지만,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펼쳐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이런 상태에서 현대차 1사 1노조가 열악한 비정규직 부문을 배제하고 가게 된다면, 조·중·동과 보수 이데올로그 입장에서 이만큼 훌륭한 먹잇감이 어디에 있겠는가! "진보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실체가 이렇다…" 뭔가 중요한 투쟁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정규직노조 일부 간부들의 취업비리가 터져나왔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제는 단순히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역시 10년 전 노조를 처음 만들 때의 초심을 떠올려야 한다. 2003년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출범 때부터 함께 해왔지만, 필자 역시 어느 순간부터인가 생산직이 아닌 청소·경비·식당·시설관리 노동자들 조직화 문제를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참으로 뼈아프게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의 자기반성문이자,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자세로 "모든 비정규직 조직화 운동"에 복무할 것임을 선언하는 글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차 사측은 또다시 '가장 낮은 곳'을 먼저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는 8월 2일부터 효력을 발생하는 '불법파견 즉시 고용의무' 조항을 핑계로, 근속 2년 미만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모조리 계약해지하고 현대차(주)의 인턴, 즉 직접고용 알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3차 하청의 경우, 끊임없이 공장 밖으로 외주화 시키는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만일 현대차 노동자들이 이런 '낮은 곳'의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간다면, 자본의 분할을 넘지 못하고 생존마저 담보하지 못하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참으로 반갑게도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게 1사 1노조의 정신이어야 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비로소 폭발력을 갖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 2년 미만자 노동자 계약해지에 침묵한다면,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면 정규직 고용불안이 온다'는 <함께 가는 길>(현대차 사측 홍보물)" 주장과 무엇이 다릅니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해서 얻어진 정규직 명찰을 달고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까? … 2년 미만 동지들이 사측 공격으로 계약해지 당하고 나면, 사측 공격은 바로 우리를 향할 것입니다. 그때 연대를 호소하면 누가 우리와 함께 투쟁하겠습니까?

- 6월 8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사측의 '2년 미만 사내하청 전원 계약해지'에 따른 긴급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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