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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무사만루 찬스에서 무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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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무사만루 찬스에서 무득점"

[복지국가SOCIETY] 민주통합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

지난 1월 15일 민주통합당이 출범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꽃가루 효과(컨벤션 효과)에 더해 지난 4년 동안 누적되어온 MB정부의 실정 때문에 새누리당을 누르고 7년 만에 정당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민주통합당의 총선 승리를 낙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새누리당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때 원내 제1당을 넘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않을까 전망되던 민주통합당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것도 단 두 달 만에 말이다.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어떤 이들은 민주통합당이 무사 만루의 찬스에서 한 점도 내지 못했다고 비유한다. 야구에서 아웃 카운트가 하나도 없이 모든 루에 주자가 나가 있다면 응원하는 팬들은 당연히 최소 2점에서 많으면 4~5점이 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한 점도 내지 못한 것이다.

무사 만루의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가 한명숙 대표였다. 그리고 그녀는 절호의 찬스를 무참하게 날려버렸다. 한명숙 대표는 딱 두 달 만에 최고점에 있던 당을 최저점으로 끌어내렸다. 40% 안팎으로 유지되던 정당 지지율이 30% 언저리로 내려앉았다. 10%포인트의 지지율을 까먹었다. 최소 350만 명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한명숙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임종석 사무총장으로 상징되는 지역구 공천 과정의 난맥상, 경선관리의 무원칙과 무능, 개혁공천의 실패, 당내 특정 계파가 독식한 비례대표 공천의 퇴행성, 한미 FTA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안에 대한 말 바꾸기 등 한명숙 대표와 당 지도부가 비판 받는 사안은 한둘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실책을 범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한명숙 대표는 민주통합당의 명실상부한 대표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최근 당 지도부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영선 의원이 당 안팎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그 '손'이 한명숙 대표를 끊임없이 흔들었다고도 했다.

이러한 박 의원의 주장에 대해 민주통합당의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세상은 그렇게 간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의 위기는 한명숙 대표만의 잘못 때문은 아니다. 물론, 한명숙 대표가 당 대표로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겠으나, 적어도 '보이지 않는 손'도 공동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명숙 대표와 당권을 주무르고 있는 486그룹 그리고 이화여대 라인과 함께 '보이지 않는 손'이라 지칭되는 세력 또한 작금의 현실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여러 언론의 보도나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봤을 때,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상임고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민주통합당의 탄생 과정에서 한명숙 대표보다 더욱 깊이 관여한 사람들이다. '혁신과 통합'을 만들었고 '시민통합당'을 창당해 민주당 밖에 있던 친노 세력들이 민주통합당으로 합류하는 정류장을 제공했다. 그리고 한명숙 대표는 이해찬 전 총리의 강력한 권유로 당 대표에 나섰고,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상임고문 등 친노 세력은 당 대표 선거에서 한 대표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그러다보니 한명숙 대표가 탄생한 1월 15일 밤, 일부 언론에서는 '한명숙 대표는 아바타 대표'라는 말이 나왔고, '수렴청정'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해찬 전 총리의 '한명숙 대표, 문재인 대통령 구상'을 전했다. 한명숙 대표를 위시한 486 그룹, 이대 라인,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칭되는 친노 세력, 이들은 이번 19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철저히 자기 몫을 챙겼다.

개혁이니, 쇄신이니 하는 단어는 자신들도 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민주통합당의 공천이 철저히 주요 계파 간의 제몫 챙기기로 일관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했던 열린우리당 출신 486 그룹이 대거 공천을 받았고, 이미경 총선기획단장의 경우처럼 한명숙 대표와 같은 학교를 나온 여성들이 두드러지게 주요 요직을 차지했다. 부산의 경우는 친노 세력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분위기였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민주통합당이 처한 위기는 이들 모두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당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을까? 박근혜 위원장에게 대권을 넘겨주려고 그랬을까?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기 싫었을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그들 스스로 '정권교체'를 부르짖고 있으니 말이다. 입만 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선거 승리에 대한 열망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사실 MB정부와 여당을 미치도록 이기고 싶을 것이다. 이번 4월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을 차지하고, 12월 대선에서 승리해 다시 한 번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민주통합당 당권파들에게는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당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편적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말들은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방향으로 당을 이끌 생각도 별로 없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경제민주화를 보자. 유종일 교수는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그동안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관련 의제들을 앞장서 제시해왔고 실천적 해법을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어 경제민주화 과제를 해결하고자 전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한명숙 대표와 당 지도부는 서울지역에 공천할 테니 올라오라고 해놓고는 시간만 끌다 결국 공천장을 주지 않았다.

경제정책과 관련한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시민사회로부터 낙천을 요구받은 김진표 원내대표 같은 사람에게는 공천을 주면서 유 교수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민주화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도 공약은 계속 발표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어차피 지킬 약속도 아니고, 한미 FTA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안처럼 나중에 말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현재 민주통합당을 이끌고 있는 세력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없다. 이것이 바로 현재 민주통합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비전이 없다 보니 자리싸움 말고는 할 것이 없게 되고, 비전이 없다 보니 국민들이 뭐라고 할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주도 세력의 이러한 모습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모습과 상당부분 대비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여론의 흐름으로 볼 때, 민주통합당 주도 세력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박근혜 위원장을 정치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이 자리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박근혜 위원장은 복지와 경제민주화, 변화와 혁신을 내걸고 과감하게 전진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미지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주도 세력은 그렇게 반문할 자격조차 없다. 당신들은 그런 이미지를 연출해낼 능력조차 없지 않던가!

민주통합당 주도 세력은 '비전'이 없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통합당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기의 본질이 여기 있다고 했을 때,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간단하다. 비전이 없는 이들이 모두 물러나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된다. 민주통합당의 주도 세력은 오는 4월 11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단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심판이라는 결과 앞에서는 누구나 겸허히 승복해야 할 것이다.

정권교체를 해낼 능력도 없고, 정권교체를 해서 이후에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는 '무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은 모두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민주통합당도 살고, 정권교체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그리고 남북화해라는 세 가지의 시대적 과제를 추진할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과 실천능력을 갖춘 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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