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1> 대치동 학원가의 점심시간 : "엄마가 말하길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2> 미친 사교육, 비용만큼 효과 있나? : 세계에서 가장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3> 가정 경제 파탄내는 사교육 : 아이들이 진학하면, 엄마는 '알바' 뛴다 |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강남 집값과 교육 문제가 긴밀히 연동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외가 엄격히 금지돼 있던 1980년대에는 학군 그 자체가 변수였다면, 지금은 탄탄한 사교육 인프라가 주요 변수라는 사실이다. '강남지역에 살면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라는 믿음은 강남 집값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물론, 진학률은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일 뿐이다. 집값 하락과 '교육특구 강남'의 신화 붕괴를 기계적으로 연결짓기는 무리다.
그러나 강남 집값이 '교육특구 강남'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척도라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강남 지역 학생들의 진학률이 추락하는데 강남 집값이 제자리를 지킬 가능성은 없다. 또 강남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 이 지역 학부모들이 주도해온 '사교육 열풍'의 경제적 기반 역시 약해진다. '사교육 올인'으로 대표되는 강남 식 교육과 부동산 가격 변화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건 상관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지표들이 눈에 띈다. 아직은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다. 예컨대 "'교육특구 강남'의 시대는 끝났다"라거나, "강남 교육은 영원히 불패"라는 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몇 가지 사실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강남 교육 모델'은 임계치에 다가갔다는 점을 시사한다.
강남구, 상위권 학생수 급감
▲ 강남 대치동의 한 학원. ⓒ연합 |
강남구와 더불어 '강남 3구'로 꼽히는 송파구에서도 수능 1~2등급을 받은 학생이 2010학년도 9.5%에서 2011학년도 7.2%로 2.3%포인트 줄었다. 이는 서울시내 전체 상위권 학생의 감소율인 1.2%보다 높은 수치다. 서초구도 1.1%포인트 줄었다.
서울시내 일반고 학생 중 상위권이 줄고 특히 강남구에서 상위권 학생이 급감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유력한 설명은 경기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 강남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율형사립고, 혁신학교 등이 강남 전입 수요를 흡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알리미 등에 따르면 다른 구에서 강남구로 전입한 학생 수는 2008년 5261명에서 2010년 4090명으로 감소했다.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학군 수요가 강북과 수도권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는 설명이 나온다. 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작했고 서울,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 개혁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일제히 추진하고 있는 혁신학교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낳고 있다. 여느 공립학교와 똑같은 비용으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까닭에, 혁신학교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은 근처 전세가격에도 반영돼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한 세대 이상 지속돼 온 강남 전입 열기는 한풀 꺾일 수 있다.
강남 전셋값 떨어졌지만, 전입 수요는 냉랭
두 번째 변화 신호는 부동산 가격에서 왔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서울 전체 아파트 전셋값은 0.3% 올랐지만, 강남구는 오히려 1.1% 하락했다.
전셋값이 떨어졌지만 이사를 고려하는 학부모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12일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 공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대치삼성아파트의 전학 이사철 전월세 거래 건수는 40건(2010년 11월~2011년 1월)에서 23건(2011년 11월~2012년 1월)으로 지난 1년 새 절반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대치동 대치현대아파트의 전월세 거래 건수도 12건에서 6건으로 줄었다.
국민은행은 "전국의 전셋값은 신학기 이동 수요와 봄 이사철 준비 수요가 오르면서 올랐지만, 강남구는 예년에 비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학군 수요가 감소했다"면서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물량이 적체되며 3개월 연속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급증한 학원 매물, '무권리금 학원'도 나와
그뿐만 아니다. 방학 동안 주로 학생들이 많이 찾는 단기 오피스텔 임대 시장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 인근 오피스텔은 방학 때마다 단기계약 수요가 몰린다. 자녀의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방학 동안 강남 학원에 등록시키려는 지역 학부모들이 찾기 때문이다. 이들 오피스텔은 보통 보증금과 임대료가 100만 원대로 비슷한 게 특징이다. 철저히 단기 수요에 맞춘 상품이다. 그러나 경제 불황과 인터넷 강의의 활성화로 인해 이런 수요가 최근 들어 줄어들었다고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말했다.
대치동 학원가에 위치한 ㅅ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 수능이 쉬워지고 불황이 계속되면서 '학원 특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며 "올 겨울 단기 오피스텔 계약을 겨우 한 건 체결했다. 여름방학 때도 2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인근 ㅂ부동산 관계자도 "오피스텔 단기 임대가 예전의 5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호소했다.
학원 수요도 덩달아 하락하면서 학원 매물은 급증하고 있다. 상가 거래의 '기본 요소'가 돼 버린 권리금마저 포기한 학원 매물이 나올 정도다. 학원 거래를 주로 하는 ㅂ부동산 관계자는 "요새 대치동에 무권리금 학원이 늘어났다"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원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 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요새는 인터넷 강의만 듣고 학원 수강을 하지 않는 가구가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남은 '교육특구', 이젠 옛말?…"속단 일러"
"강남은 '교육특구'"라는 말은 옛말이 된 것일까?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대입 수시 등에서 학교 내신이 강조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이 교육특구로 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쉬운 수능 기조를 강조하고 있어 '교육특구'에 학생이 몰리지 않는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을 향한 열기가 과거보다 한 풀 꺾인 것은 사실이지만,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견고하다.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은 "수능 1~2등급 학생의 변화 추이는 특목고 인기의 오르내림과도 관련된 현상일 가능성이 있고, 강남 쪽의 전세 수요가 줄어든 것은 경기 침체가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위권 학생이 특수목적고로 진학한 탓에, 일반고로 진학한 상위권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치동 인근의 한 논술학원 강사(35)는 "수강생들이 줄어들면서 학원 사이에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강남권이 전국 사교육의 메카인 것은 확실하다. 목동의 학부모도 자녀를 대치동 학원으로 보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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