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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고지 밟은 '길거리 훌리건' 푸틴, 그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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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고지 밟은 '길거리 훌리건' 푸틴, 그의 앞날은…

[인물탐구] '푸티니즘'은 이번에도 가능할까

러시아 유권자들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한 통합러시아당의 블라디미르 푸틴을 선택했다. 그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반푸틴 여론을 극복하고 권좌에 다시 오르면서 과거 2번의 대통령을 지내며 펼쳤던 '푸티니즘'(Putinism)에 관심이 다시 모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7일 푸틴 개인을 해부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푸틴이 태어나던 무렵인 1950년대 러시아는 체제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틴의 부친은 독일 나치군이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했을 때 시절 단 4명만이 살아남았던 전투의 생존자 중 하나였다. 푸틴의 큰형은 2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사망했고 둘째 형도 2차 대전 기간에 디프테리아로 숨졌다. 1952년 태어난 푸틴은 가족들에게 '운명의 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푸틴의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몸은 허약했고 아웃사이더 성향이 있으며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였다. 그는 길거리 불량배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길 원했고, 결국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진짜 훌리건'이 됐다. 당시 소련 영화에 매혹된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들어가기를 희망했지만 KGB는 퇴짜를 놨다. 법학 대학졸업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레닌그라드대에 입학해 국제법을 전공한 푸틴은 결국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 4일(현지시간) 생애 3번째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연설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평소 마초 이미지로 유명한 그의 눈물을 두고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이 반대진영으로부터 제기됐다. ⓒAP=연합뉴스
신문은 그가 KGB에 있던 시절 '스타 스파이'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파견되기 전까지 레닌그라드에서 외국인을 감시하는 방첩임무를 수행했다. 드레스덴에서 재직하던 시절에는 개혁반대론자인 에리히 호네커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에 반감을 품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을 지지하던 공산당원 및 비밀경찰을 포섭하는 일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KGB의 뒤를 이은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지내던 푸틴은 1999년 보리스 옐친의 지명으로 총리 대행이 되면서 47세의 나이로 정계 일선에 등장했다. 하지만 크렘린궁의 고문이었던 글렙 파블로프스키는 푸틴이 그 이전에도 "1980년대 이후 소련의 쇠퇴와 관련해 '복수'할 방법을 찾던 광활하면서도 베일에 싸인 조직에 속했다"고 말했다.

푸틴은 1990년대 민영화 조치로 탄생한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을 길들이는 기술로 인해 알렉산더 쿠드린 전 러시아 재무장관과 같은 자유주의자들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됐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클리포드 가디는 "푸틴이 재벌들 사이에서의 분쟁을 예방하는 한편, 재벌 해체론자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이중의 장치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그에게 '정보'라는 귀중한 자산을 확보하는 기회가 됐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기업 뿐 아니라 정적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손에 든 푸틴은 권력의 '독점화'를 추구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을 KGB 방식으로 다뤘다. 클리포드 가디는 푸틴이 "자신의 적을 죽이지 말라. 목적을 위해 그들을 조정하고 이용하라"라는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앤드류 우드 전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도 "푸틴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졌고 다른 이들의 욕망을 알아채는 능력이 있지만 그 방식은 수상쩍었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푸틴이 겉으로 옛 소련의 영화를 재연하려는 인물로 비춰지지만 그가 전체주의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푸틴이 만든 러시아는 '개인의 의해 소유된 국가'(personalized state)라는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피오나 힐은 1996년 옐친이 군주제와 전체주의, 개혁, 민주주의로 이행해 오면서도 그 전체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가 없었다고 말한 사실을 들며 푸틴이 2000년대 선보였던 '푸티니즘'이 그에 대한 답인 셈이라고 말했다.

파블로프스키는 "푸틴은 공평함을 추구하는 볼셰비키들을 얼간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는 서방의 자본가보다 더 크고 뛰어난 자본가가 러시아에 필요하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서양의 정당들이 진짜 경쟁을 펼친다고 믿지 않는다"며 "그는 한쪽이 힘을 갖고 나머지는 기다리는 것이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전세가 역전됐을 때를 위해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2000년 3월 처음 대통령이 된 푸틴은 체젠 무력진압을 통해 몰락한 국가의 위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재벌에 대한 대대적 사정으로 옛 소련을 추억하던 이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때마침 도래한 고유가 시장을 이용해 광활한 자원을 바탕으로 러시아 경제를 일으켰고 한 때 푸틴의 지지율은 70%를 넘기기도 했다.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대통령 자리를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넘겨주고 총리직에 오른 푸틴은 이후에도 정계의 1인자 자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3선 도전을 천명하면서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통치방식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됐고, 12월에는 하원선거 부정 의혹까지 터지면서 대대적인 반푸틴 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예전 같지 않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푸틴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앞으로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푸틴에 비해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메드베데프 정권을 거치며 크레믈린궁을 수호하던 FSB의 견고함도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이 철저한 통제를 바탕으로 한 '푸티니즘'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도 물음표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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