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저작권 진영 대(對) 뉴미디어 진영의 '로비 전쟁'으로만 여겨졌던 이번 논란에 일반 대중들이 가세하면서 미국의 정치권에 중요한 파장을 불렀다는 평가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위키피디아 영문판 홈페이지가 이날 폐쇄된 후 미 의회에 SOPA와 PIPA를 반대하는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대 구글'로 대표되는 대결에서 이들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향유하던 소비자들이 관전에만 그치지 않고 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직접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신문은 이를 두고 기존의 미디어 권력이 인터넷 자유를 옹호하는 활동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뉴미디어 진영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며 '인터넷을 건드리지 말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 현상이 미 정치권에서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입법 활동은 보통 산업계 간의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다툼이었지만, 인터넷과 관련된 문제가 부상하면서 이제 일반 시민들이 중요한 이해당사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로비에 휘둘리던 의원들도 유권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에 따르면 최근 최소 10명의 상원의원이 SOPA와 PIPA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이같은 입장을 SNS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법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한 하원의원의 숫자는 상원의 2배에 달한다.
하지만 SOPA를 처음 발의했던 텍사스주 공화당 하원의원 라마 스미스(그는 저작권단체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있다)를 비롯한 규제 찬성파들은 뉴미디어 진영이 SOPA, PIPA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안을 인터넷에 대한 전반적인 검열 시도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법률 용어와 기술 용어로 인해 SOPA와 PIPA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칫 일반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뉴미디어 진영의 선동에 넘어간 결과 반대 여론이 일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연구하는 클레이 서키 뉴욕대 교수는 18일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키 교수는 SOPA와 PIPA는 잠재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넘어 인터넷에 대한 상시적 검열이 이뤄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면 인터넷 이용자들은 과거처럼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논란이 규제 당국과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충돌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발효를 앞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지적재산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방관할 사안만은 아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원문 보기)
▲ 18일(현지시간) 미 의회의 인터넷 규제 법안 입법시도에 항의해 24시간 홈페이지 폐쇄조치에 들어갔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영문판 홈페이지 메인화면. |
SOPA와 PIPA는 소비 일변도의 인터넷을 창조할 것
미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인터넷 규제 법안 SOPA와 PIPA를 싫어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두 법안은 미국 정치권에서 기업의 돈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은 SOPA와 PIPA를 발의한 의원들에게 수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의원들은 대중을 대표한다는 역할을 거부한 또 다른 예다. 그들은 지난해 말 대중들에게 어떤 의견도 묻지 않고 이 법안을 처리하려고 시도했다.
홈페이지 도메인 주소를 차단한다는 이 법안의 '기술적 해법'은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반면 이 법이 시행됨으로써 나올 부작용은 인터넷의 주요 기능을 손상시킬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에 신경 쓰지 않을지 모른다. 정치는 따분한 주제고, 법안에 담긴 기술적 세부사항을 보다보면 졸음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사안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SOPA와 PIPA가 통과되면 당신은 24시간 온라인 감시를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올드미디어 기업들이 당신을 사적으로 감시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은 당신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그들이 당신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건 당신이 온라인에서 세계 친구들과 공유하려는 '그것' 때문이다.
SOPA와 PIPA가 통과되면 미디어 기업들은 '미국 밖에 있는 해외 웹사이트가 미국의 재산권을 훔치는데 가담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이 그런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웹사이트의 도메인 주소는 폐쇄될 수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웹브라우저에 주소를 치면 아무 것도 화면에 뜨지 않게 된다. 단지 기업들의 '주장'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SOPA와 PIPA는 기업들이 저작권 침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게 지나치게 큰 부담이라고 간주한다.
폐쇄 조치로 인해 사이트 자체가 없어지는 건 물론 아니다. 도메인 주소만 비활성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이 SOPA와 PIPA가 정말 무서운 이유다. 이 법들은 미디어 기업들을 단지 판사, 배심원, 법 집행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모든 웹사이트를 검열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들은 저작권을 침해한 특정 게시물의 주소만이 아닌, 저작권을 침해한 이용자들을 감시하는데 소홀한 웹사이트 전체를 처벌하길 꿈꾼다.
난해한 법률 용어가 담긴 이 법이 무시무시한 것은 명시적 목적인 저작권 침해 방지뿐 아니라, '위반 활동을 가능케 하는' 웹사이트 자체에 효력이 미친다는 점에 있다. 법 조항 상으로는 어디에도 이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그런 의도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모호한 문장으로 쓰여 있다. 빠르게 퍼지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검열은 도메인 주소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공적 웹 콘텐츠의 어떠한 발원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적 웹 콘텐츠의 어떠한 발원지'(any source of public web content)라는 구절이 너무 딱딱하다면 즐겨 찾는 웹 게시물의 작성자 이름으로 대신해보자. 바로 당신이다. 미국은 페이스북, 트위터, 플리커, 레딧 등 사용자들이 생산하는 글을 게시하는 웹사이트의 호스팅을 제공한다.
SOPA와 PIPA가 시행되면 이러한 사이트는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즉 저작권 침해 행위를 찾아내려는 이들로부터 이용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 법안은 특정 웹사이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기 전에 어떠한 사전 공지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트 관리자는 사실상 이용자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해야 한다.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바라지 않은 게시물을 이용자들이 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이용자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SOPA와 PIPA는 간단히 말해 민영화된 국제 인터넷 검열기구를 만들려는 시도다. 이 검열기구는 거의 모든 인터넷망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온라인상에서 공적으로 소통하는데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 엄격한 규제로 인한 의욕 상실 효과)를 가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인터넷에서 보고 듣는 모든 콘텐츠는 전문 인력에 의해서만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가 아닌 이들은 그저 콘텐츠를 소비하는 역할밖에 맡지 못한다.
미 의회가 이 법안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소비 일변도의 인터넷'이라는 부작용이 이 법안의 최우선 목표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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