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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보를 생각한다

[손호철 칼럼] "진중권이 바뀌었다고 진보의 정의가 바뀌나?"

최근 들어 한국정치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진보논쟁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너 빨갱이지"라고 몰아세우는 색깔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진보 쟁탈전'이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자라고, 한나라당 등은 좌파라고 비판한다면서 자신의 노선을 '유연한 진보'라는 표현으로 옹호한 바 있다. 즉 자신의 노선이 유연하지만 진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 비정규직 확대 등이 진보일수 있느냐는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정권초기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박사까지 나서 "유연한 진보란 없다"고 유연한 진보론을 비판한 바 있다.

자유주의세력 10년의 실정으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뉴라이트와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던 2009년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등장해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벌였다. 반북, 반공주의야말로 진정한 진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필자는 이 지면에 쓴 "'진보'가 그렇게 그리운가"(2009년 8월 3일자)라는 글을 통해 진보에 대한 네 가지 용법(변화에 대한 태도, 상대평가, 절대이념 평가, 해체주의)을 중심으로 비판한 바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진보논쟁에 휩싸여 있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은 미국 민주당의 집권플랜을 담은 <더 플랜>을 응용한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의 출간과 진보개혁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다양한 진보대통합 논의이다.

특히 'B급 좌파'를 자처해온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교체를 골자로 하는 조국 교수의 정권교체 계획이 민주집권 플랜이나 시민집권 플랜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진보집권이냐고 비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대표적인 논객인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김규항씨가 진보와 사이비진보를 판단하는 심사권을 가지고 있느냐고 반박했고 이에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조국 서울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물론 진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현재 "필요한 것은 다가올 연합 속에서 되도록 진보의 가치를 많이 관철하는 것이지, 그 연합에 딱지나 갈아 붙이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진보정당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그것은 누가 특정정당이나 세력이 진보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권리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 시대에 진보가 무엇이냐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가 진보인가? 또 비정규직 확대가 진보인가를 따져야 한다.

나아가 그 같은 진보의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현재 논의되는 다양한 연합 중 어떠한 연합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냐를 논의해야 한다. 즉 조국 식의 연합이 가장 바람직한 연합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먼저 진보대연합을 하고 이에 기초해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의 좌경화와 탈패권주의를 조건으로 조건부 반한나라당 '민주대연합'을 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인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논쟁해야 한다.

나아가 순수가정으로 조국 식의 연합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진보집권이 아니라 민주집권이라는 김규항씨의 문제제기는 귀담아 들어야 하다. 왜냐하면 정권교체가 아무리 시급해도 진보는 진보고 민주는 민주다. 진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다가올 연합 속에서 되도록 진보의 가치를 많이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그 연합의 성격이 무엇인지, 즉 진보연합에 의한 진보정권교체인지 반MB연합에 의한 민주정권교체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나아가 이 집권이 김규항씨의 주장처럼 진보집권이 아니라 민주집권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주의자가 아닌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민주집권이 더 의미 있는 것 아닌가?

사실 김규항씨가 우려했고 나 역시 우려하는 것은 진보라는 용어가 남용되면서 진보에 대한 허무주의가 확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의 유연한 진보와 관련해 진보가 대중들에게 연대와 평등, 생태가 아니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와 스팩전쟁, 그리고 이에 따른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과 환경파괴(새만금과 부안사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진보'가 그렇게 그리운가"에서 지적했듯이 진보가 영어의 liberal을 의미하는지, progressive를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둘러싼 논쟁과 오해는 이 둘을 구별하지 않으면서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등 자유주의세력을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liberal를 진보로 번역해 이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던 한 학자는 "진보주의는 오늘날 미국의 민주당 등 정강,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고, 이러한 이념적 사조를 자유주의(liberalism)이라고 칭하기도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용법은 잘못이다. 진보란 자유주의나 리버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좌파사상을 의미하며, 한국정치는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이 아니라 진보(progressive), 자유주의(liberal), 보수(conservative)라는 삼분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liberal를 진보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등이 보여주듯이 진보와 자유주의는 민주개혁에서는 같이 싸워왔지만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날치기 통과했던 비정규직 확대법안, 한미 FTA 등 신자유주의정책(소위 '경제개혁')에서는 자유주의세력과 냉전적 보수세력, 즉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재벌, 조중동이 손을 잡고 진보세력과 대립해 왔다. 다시 말해, 두 개의 개혁(민주개혁, 신자유주의개혁)을 둘러싸고 세 세력 간에는 두 개의 전선(반민주전선, 반신자유주의전선)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 '기우뚱한 균형'을 추구하는 김진석 교수 역시 최근 한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진보가 집권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모든 구호에서, '진보'라는 말은 극심한 오해와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좌파 혹은 '리버럴(liberal)'에 가깝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진보'라 자칭할까? 일종의 '진보 인플레이션'이다".

사실 진중권씨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보대연합을 거부하고 민주당과의 소위 반MB민주대연합에 나서 구청장 등 실속을 챙긴 민주노동당에 대해 "진보는 뭘 먹고 사느냐고?"라고 화두를 던진 뒤 "테이블 밑에서 민주당이 흘리는 음식 찌끄레기 먹으며 살아야지요"라고 특유의 필체로 비꼰 바 있다. 만일 민주당이 진보라면 이 글은 애당초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진 교수는 1년전만 해도 김규항씨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진보로 보았지만 민주당은 진보로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진 교수가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정치노선에 변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진 교수가 한국의 진보정당 발전을 위해 고전분투하며 기여한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결정을 충분히 존중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노선이 바뀌었다고 진보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치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얼마 전 열린 '2012년 야권연대, 연합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이라는 자유주의연합정당의 비극적 종말을 볼 때 그 당보다 폭이 넓은 연합정당의 성공적인 운영은 불가능"하며 "진보대통합은 우리가 대의에 입각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왜 진보정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느냐. 자유주의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라며 "진보대통합을 진보의 확장으로 보고 자유주의 토대를 획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자유주의 연합정당이라는 비극적 종말"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유 원장 역시 자신과 국민참여당이 진보세력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진보가 자유주의를 적대시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유주의와 통합해 진보의 확장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역시 진보와 자유주의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러면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국민참여당의 연합내지 통합을 '진보대통합'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합치는 '진보개혁대연합' 내지 '진보개혁통합'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한미FTA,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자유주의적 정책도 더 이상 적대시하지 말고 수용하면서 이를 '진보의 확장'과 '진보대통합'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사 통합을 하더라도 이를 진보개혁대통합이라고 부르면 되지 이를 진보대통합이라고 부르기 위해 진보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유 원장의 주장처럼 진보정당이 자유주의를 적대시하지 말고 자유주의세력과 통합해 자유주의의 토대를 획득해야 한다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민주당을 빼고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이유가 없다. 사실 민주당은 무상급식 시리즈와 같은 보편적 복지노선으로 좌경화해 진보에 가까워진 반면 유 원장은 오히려 이를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념적으로 본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국민참여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이 옳다.

진 교수 등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진보는 위기이고 뼈를 깎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liberal이 진보라고 진보의 정의를 바꿔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liberal은 liberal이고 progressive는 progressiv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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