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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권력 앞에서 용기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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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관객들이 권력 앞에서 용기 얻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한국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고희(古稀)를 넘겨서도 메가폰을 잡는 감독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쉰에 다다라도 퇴물 취급을 받기 일쑤다. 열악한 영화 노동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고, 대기업 위주로 재편된 영화계 구조와 스크린쿼터 축소로 나빠진 영화 상영 환경 역시 좋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영화의 상징적 존재 중 하나인 정지영 감독(65)이 문제작 <부러진 화살>을 들고 13년 만에 복귀했다. "(전셋집을 줄이느라) 이사가 잦았다"고 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마저 피해갈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대기업 배급사가 싫어할 만한 문제작을 만들어온 이력을 지닌 감독이 환갑을 넘겨 소자본 영화를 찍었다. <부러진 화살>은 그간 그가 발표한 영화들처럼 한국의 모순을 정조준하고 있다. 날이 바짝 서 있고, 에둘러가는 법이 없다.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으로 알려진 김명호 교수의 재판을 영화로 옮긴 <부러진 화살>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법부 권력의 실체를 고발한다. 정 감독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선명히 나뉜 오늘날 한국의 초상을 군살 없이 단단한 각본과 선명한 캐릭터의 힘을 빌려 관객에게 직설하고 있다.

4일 오후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을 보는 관객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경호 교수(안성기 역)처럼 오늘날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권력 앞에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 감독은 비단 사법부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이 "네트워크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만 혈안이 됐다며 이런 한국의 현실은 "코미디"라고 일갈했다. 최근 정봉주 전 의원 구속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 것은, 이를 정확히 대변하는 사례라고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정 전 의원의 구속 수감을 결정한 판사가 바로 김명호 교수의 석궁 피해자로 알려졌던 사실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부러진 화살>은 개봉 전부터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정 전 의원을 지지하는 누리꾼들은 적극적으로 이 영화 보기 운동에 나설 지경이다.

<부러진 화살>은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으나 결코 어둡고 풀 죽어 있지만은 않다.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을 통해 정 감독이 보여준 묵직한 주제의식과는 달리, 영화에 나오는 김경호 교수와 박준 변호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원칙적인 모습을 보이고, 인간미를 철철 흘린다. 정 감독은 "나는 원래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면서도 "두 캐릭터가 워낙 선명해서 영화가 이렇게 흘러가더라"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한 이 영화는 실제 정 감독이 공판 기록을 토대로 각본과 대사를 모두 짰고, 캐릭터 구축 역시 실제에 기반을 뒀다. 정 감독은 이 밖에도 자신의 영화관과 사회관, 과거 법정에 섰던 일화 등을 털어놨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

▲"이 사건(석궁 재판 사건)은 백 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프레시안(최형락)

"<부러진 화살>은 어처구니없는 영화"

프레시안 : 인터뷰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기자가 찾아간 이 날도 다른 매체에서 정 감독을 인터뷰 중이었다) 오늘은 제가 몇 번째인가요?

정지영 : 네 번째네. 오늘만 다섯 개가 잡혔어요. 하루 평균 대여섯 군데랑은 인터뷰하는 것 같아.

프레시안 : 198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어 오셨는데, 이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나요?

정지영 : 처음이지. 영화를 찍을 때 '문제적 작품'이라는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영화가 정식 개봉한 다음에야 관객 반응이 나올 줄 알았거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부러진 화살>이 처음 소개됐는데, 관객들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뜨거워서 놀랐지.

프레시안 : 최근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지난해 최고의 아시아 영화 10개 중 하나로 <부러진 화살>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정지영 : 그게 난 신기해. 이 영화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 주인공이 얘기한 것처럼 이 사건은 백 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이게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졌다고. 어떻게 그들(미국언론)의 시각에서 이걸 공감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요. 뽑아줘서 나야 영화 홍보에 도움 되니 좋긴 하지만, 의외였지.

프레시안 : 1998년 <까>를 마지막으로 13년간 쉬시다 지난해 세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들고 나오셨습니다. 극영화 <부러진 화살>을 포함해 <아리아리 한국영화>, 옴니버스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중 '이헌 기자의 오디세이'까지요. 셋 모두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상당히 강합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정지영 : 특별히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작업이 이어지게 됐어요. 우연히 학교에서 동료들과 얘길 하다가 한국영화의 오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 마침 크리스틴 초이라고, 중국계 미국인 교수가 만든 한국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었거든. (크리스틴 초이는 뉴욕대 영화과 교수다) 그런데 이게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찍은 작품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했지.

2년 동안의 인터뷰로 채운 작품인데, 마침 이 작품을 찍고 났을 때 이미 <부러진 화살> 편집이 끝났어요. 그래서 같은 시기에 나오게 된 거야. 그런데 같은 시기에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옴니버스를 감독들이 모여서 찍는데 참여해라'고 해. 보니까 다들 훌륭한 감독들이더라고. 그래서 또 찍었지.

프레시안 : 이제 <부러진 화살>에 집중해보겠습니다. 개봉이 설 연휴인데, 시사회는 일찍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시사회를 오래 하십니까?

정지영 : 영화 흥행은 사회적 반향으로만 되지 않아요. '입선전'이 중요하지. 내가 돈이 없으니 다른 상업영화처럼 마케팅을 대규모로 할 수 없다고. 그러니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인 입선전을 활용해야지. 그래서 2만 명을 목표로 시사회 프로그램을 짰어요. 시사회를 많이 하려니 당연히 시사회 일정을 앞당기게 된 거고.

프레시안 : 시사회에서 복귀작으로 <부러진 화살>을 선택하신 이유가 '이 사건이 너무 재미있어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셨나요?

정지영 : 문성근이 추천해줘서 르포 <부러진 화살>을 읽었는데, 이 사건이 내가 알고 있던 '석궁 테러 사건'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 관객들 모두가 안다고 생각했던 게 실체와 달랐던 거지. 영화적 재미도 충분히 있었어요. 김명호 교수와 판사의 공방전이 무지하게 재미있어. 감히 누가 판사한테 대들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김 교수는 법조문을 들이대면서 판사를 마구 공격하더라고. 우리 상식을 뛰어넘어버리는 이야기였어. 여기에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도 있지.



"관객들이 용기 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영화가 알려진 원인에 정봉주 전 의원 구속 수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지영 :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어요.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국민들이 뭐랄까… 너무 짓눌리지 말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 나약한 개인이, 저렇게 거대한 벽하고 아직도 싸우고 있는데 우린 뭘 하고 있느냔 말이지. 다들 조금씩 용기를 가지자,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부당한 권력에 짓눌리면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이 그렇지' 하고 포기해버리는데, 그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주고 싶어요.

▲'국민 배우' 안성기는 "차비"만 받고 홀로 거대한 사법부와 싸우는 김경호 교수(실제 사건에서는 김명호 교수) 역을 맡았다. ⓒ아우라 픽처스

프레시안 : 따지고 보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멀게는 인혁당 사건에서 X파일 판결로 대변되는 재벌 관련 판결, 정치권 판결을 보고 적잖은 국민이 '법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지요. 사법 권력이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만 엄격하다는 거죠. 감독께서는 사법 권력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영 : 나는 뭐… 허허, 특별히 감정을 가질 만한 일은 없었으니까…. 다만 이런 일은 있었어요.

89년돈가, 90년돈가? 당시 우리가 미국영화 직배 저지투쟁을 했는데, 내가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어요. 그때 내가 극장 방화사건, 뱀 사건에 연관돼서 2개월 간 구치소에 있었어요. 판결이 문제였다는 건 아니고, 내가 구속되는 과정이 코미디였지.

<남부군> 촬영장에서 구속됐는데, 이게 재미있었어. 그때 극장에 방화사건이 나서 경찰이 범인을 추적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옛날 극장에 뱀이 풀렸던 사건까지 들어간 거야. 당시는 극장에서 없던 일로 하고 덮었는데, 경찰이 방화사건 범인을 못 잡으니 '옛날에 뱀 넣은 놈들이 범인일 거야' 이렇게 된 거지. 그래서 어느 날 형사들이 촬영장에 왔더라고. 서울로 올라가자는 거지.

그런데 그때가 <남부군> 여름 씬 촬영이었는데, 하루만 더 하면 끝나거든. 그래서 내가 '내일 가자' 그랬지. 군사를 100명 이상 끌고 내려왔는데 어떻게 그걸 접고 올라가? 그러니 이 친구들이 술 사다 놓고 화투 치고 하면서 무작정 기다리더라고. 그런데 어떤 놈이 신문을 하나 가져왔어. 보니까 '정지영 감독 구속'이라고 나와 있더라고. 나는 촬영하고 있는데.

이걸 보고 형사들이 하는 얘기가, 신문에 구속으로 나왔으니 나는 구속돼 있어야 한다는 거야. 완전 코미디 아냐. 신문이 오보한 건데, 그 오보에 날 갖다 맞춘 거지.

프레시안 : <부러진 화살>이 보여준 지금의 한국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네요.

정지영 : 코미디가 벌어지는 거지. 사법 처리라는 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검사는 증거를 제대로 내놔야 하고, 재판관은 합리적인 재판을 진행해야지. 그런데 <부러진 화살>을 보면 알겠지만, 이 절차가 다 무시돼요. 누가 봐도 황당해 할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거지. 얼마나 한심해.

프레시안 : 그런데 사법부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모티프가 된 르포 <부러진 화살>을 보면 서형 작가와 인터뷰한 한 부장판사가 '사법부는 99% 잘하는데, 1% 잘못한 것만 언론이 크게 다뤄서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한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세요?

정지영 :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싶어. 재판이 얼마나 공정한지 무슨 통계가 나오나?

사법부도 인간이라 판결에 오류가 날 수 있어요. 하지만 법의 엄정함은 국민 누구도 예외가 돼선 안 되는데, 이 사건(김명호 교수 사건)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거든. 판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하지 않잖아? 그러면 무슨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그런 걸 보는 국민들은 사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고.

프레시안 : 우리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서 사법부가 의구심이 가는 판결을 한 적이 있었다는 지적이 많은 이유죠.

정지영 : 맞아요. 법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 건데, 어느새 권력을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도구로 쓰여요. 그러니 국민과 권력의 소통이 단절돼 버리지. <부러진 화살>은 소통 좀 제대로 하자는 거예요.

<나는 꼼수다> 열풍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언론이 국민과 소통할 생각은 안 하고, 자기들 이익만 좇고 제 역할을 안 하니 '나꼼수'가 히트치는 거지. 언론이 제대로만 해봐요. '나꼼수'가 왜 인기를 끌어. 이런 시대를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버렸다는 게 서글픈 일이지.

프레시안 : 따지고 보면 사법부, 언론은 물론이고 소위 말하는 '권력'에 가까운 우리나라 모든 조직을 국민이 불신합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 신뢰도가 이 정도로 망가졌을까요?

정지영 : 나는 영화인이니까 영화판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DJ 정부 때 영화검열이 없어졌어. 그 이후에 점점 뭐랄까…, 민주주의라 하면 되나? 10년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건 틀림없는 것 같아. 그런데 MB 정부 들면서 이게 후퇴한 거지. 영화정책만 보면 그래요.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드물어요.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거든. 똑같이 보면 작품이 안 나오는데 어떡해. 이런 사람들한테 정부가 구시대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온 것 아닌가 싶어요.

▲"판사의 권위가 '권위를 위한 권위'가 돼선 안 되거든."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사법부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 판사들의 자유로운 발언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트위터나 페이스북 하시나요?

정지영 : 난 안해.

프레시안 : 최근 일부 판사들이 정부와 대통령에 비판적인 발언을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등 일부 보수 언론은 이들 발언 하나하나를 다 기사화하고 비판하고요. 어떻게 보시나요?

정지영 : 판사는 인간 아닌가? 오죽하면 그러겠어? '저런 권위 없는 판사한테 재판 어떻게 받느냐'고 하는데, 판사의 권위라는 게 권위를 위한 권위가 돼선 안 되거든. 그 권위가 존중받으려면 투명해야지. 확실하고, 정당하게 판결하면 저절로 권위가 생기고 국민들이 존중하지.



<부러진 화살>은 두 캐릭터의 영화

프레시안 : 영화의 뼈대인 법정공방 장면은 대사까지도 모두 공판자료와 르포 <부러진 화살>에 기초했습니다. 여기에 김명호 교수(영화에서는 김경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영화에서는 박준, 박원상 역)의 도움도 컸나요?

정지영 : 김명호 교수는 그때 감옥에 있었으니 면회를 몇 번 갔고, 그 다음에는 편지를 주고받았지. 이것저것 계속 물어봤어.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냐, 언제 눈물을 흘려봤느냐, 대학시절은 어땠느냐, 이런 것. 캐릭터 잡아야 하니까. 정말 영화처럼 꼬장꼬장한 사람이야.

박훈 변호사야 만날 수 있으니까, 만나서 술 여러 번 먹고, 자료 몇 박스를 받았지. 박훈이 물건이더라고. 법으로 먹고 사는 놈이 만날 '법이 쓰레기'라고 해. 쟤가 이번에는 통합진보당 예비경선에도 나왔지?

프레시안 : 장은서 기자(김지호 역)는 창조한 인물인가요?

정지영 : 르포를 쓴 서형 작가와 모 신문사 기자를 합쳤어요. 서형 작가가 르포를 쓰면서 자연스레 김명호 교수, 박훈 변호사랑 친해졌거든. 또 실제 한 신문사 기자가 열심히 도와주다가 갑자기 '죄송합니다. 더 이상 못 도와드립니다' 하고 떠났어요. 장은서를 여성으로 만든 건 극적 재미를 위해서고.

다 실제 캐릭터를 보완한 거지, 없는 걸 새로 만든 건 없어요.

프레시안 : 두 주인공 캐릭터(김경호와 박준)가 모두 전복적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영화가 생각보다 상당히 유쾌했던 것 같습니다.

정지영 : 맞아요. 실존한 캐릭터 둘이 워낙 개성이 강해서 이 영화를 안 무겁게 만들어줬어. 그 양반들이 날 도운 거지. 나는 원래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런데 그 둘을 묘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렇게 그려지더라고. 김명호 교수가 4년 감방 갔다 와서 사회와 척지고 산에서 농사짓고 있다고 생각해 봐. 유쾌하지 않지. 그런데 김명호는 지금도 싸우고 있거든. 그런 강단이 영화에 힘을 줬어요.

프레시안 : 감독 개인적으로는 김명호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보시나요?

정지영 : 글쎄…. 뭐 굳이 석궁까지 들고 찾아갈 필요는 있었나 싶긴 하지. 그런데 그게 '따져야겠다' 싶던 차에 맨입으로 가려니 뭔가 좀 허전했겠지. '이 놈이 겁을 먹어야 하는데' 싶던 차에 그런 것 아닌가 싶어.

▲"법이 쓰레기"라는 변호사와 "법은 수학과 같다"는 수학 전공 피고인. 이 둘은 '법을 권력'으로 활용하는 사법부와 맞선다. ⓒ아우라 픽처스

"'조심해라' 말 안 들으려 신경 써"

프레시안 : 희망버스 행사 때 김진숙 지도위원을 찾아 전화를 하셨죠.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정지영 : 관심이야 쭉 있었어요. 내 작품 성향도 대체로 그랬던 것 같고. 다만 문제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닫혀 있다 보니 '왜 영화감독이 정치적 발언 하느냐' 하는 인식이 대중에 좀 많은 것 같아. 이게 잘못된 거거든. 감독이 자기 소신을 영화로 얘기하면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 다르네' 이렇게 판단하면 된다고.

그런데 연예인, 영화인들은 정치적인 얘기하면 불리한 상황이 일어나니 모두가 입을 닫아버려요. 우리가 영화운동 할 때도 보면 영화인 중에 한미 FTA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그런데 다들 불이익 당할까봐 겁나서 적극적으로 안 나섰지. 한심한 상황이야.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된 건지, 안타까워요.

▲정지영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지난해 10월 9일, <부러진 화살> 개봉에 맞춰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향했다. 그는 타워크레인 인근에서 김 지도위원과 전화로 인사를 했고 "크레인에서 내려온 후 <부러진 화살>을 보러 오시라"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의 건강 문제로 아직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부러진 화살>이 당장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는 영화인데, 안성기 씨가 출연에 부담을 가지지 않으셨나요? 여태껏 인터뷰를 보면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하던데요.

정지영 : 부담도 있었겠지. 그런데 내가 볼 때 김경호 교수 역할은 배우 평생에 한번 맡을까말까한 역이에요. 이런 캐릭터 해야지. 연기자는 새로운 캐릭터를 맡을 때 희열을 느끼는 법이거든. '이걸 내가 근사하게 해 봐야지' 그런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나랑 한 두 작품(남부군, 하얀 전쟁)이 민감한 영화였는데도 성공한데 대한 믿음도 있었을 테고.

프레시안 : 촬영 당시 배우들이 영화가 가진 민감함 때문에 부담을 가지진 않던가요?

정지영 : 이 영화를 찍으면서 외부 요인에 방해받고 싶진 않았어요. 누가 와서 '지금 너희 사법부에서 주시한다더라' 이런 소리가 들리면 누군가는 흔들리고, 그러면 영화가 안 되거든. 많이 조심했지. 배우들이야 다들 조금씩은 '만만치 않네' 하는 생각이야 했겠지.

프레시안 :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거로군요.

정지영 : 그렇지.

프레시안 : 한국 영화의 오늘을 어떻게 보시나요?

정지영 : CJ가 독점하다시피 하니까 염려스럽지요 솔직히. CJ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독점이 두렵다는 거지. 독점적 자본은 결국 오만해질 수밖에 없거든. 지금 현실이 모든 영화인들이 CJ에 줄서려고 하는 마당인데, 그러면 결국 모든 게 자본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어요. 영화인들이 잘 대처해야지.

프레시안 : 대기업 자본과 함께 문제가 되는 게 73일로 줄어든 스크린쿼터 이후 한국 영화 점유율입니다. 점차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있죠. 미래도 그다지 밝아보이진 않는 것 같은데요?

정지영 : 무조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영화현실이 정말 열악하지만,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나오거든. 이런 에너지가 있는 한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맥없이 한국 영화가 쓰러지진 않을 거라고 보지. 당장 나부터도 지난 13년간 영화를 놓지 않았으니까.

다만 영화노동자들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영화인 노조가 잘 하고 있는데, 결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 요구를 잘 반영해줘야지.

▲거장으로 칭송받는 감독도 저예산 영화를 통해서야 겨우 복귀가 가능했다. 한국 영화의 현실이다. ⓒ아우라 픽처스

프레시안 : 차기작을 구상중이신가요?

정지영 : 구상중인 건 있는데, 아직 얘기할 단계는 아니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프레시안 : 아드님이랑 함께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으세요? (정지영 감독의 아들 정상민은 <부러진 화살>을 제작한 아우라픽처스 대표다. 부자가 영화인의 길을 걷는 셈이다.)

정지영 : 뭐, 이 영화를 함께 한 거니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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