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던 미국의 저명한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는 3일(현지시간)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홈페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2012년에 전개될 시위의 방향을 전망했다.
울프는 지난해 선진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정치권에 반대 의견을 표출하는 시위대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며 우려를 표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만 유지한 채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부의 시위대 탄압은 방식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울프는 전 세계적으로 분출됐던 시위의 의제가 점점 민주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라는 일관성을 갖춰가고 있다며 그러한 움직임이 2012년에는 좀 더 극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가 올해 선거를 치른다는 점에서 풀뿌리 운동이 어떤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원문 보기)
▲ 1일(현지시간) 바레인에서 진압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대들. ⓒAP=연합뉴스 |
지난해 분출됐던 전 지구적 시위는 올해 어떻게 될까? 튀니지에서 시작됐던 그 분노가 미국 뉴욕에서 정점을 찍었던 것일까, 아니면 올해 '반대의 정치'(politics of dissent)가 단계적으로 좀 더 확대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답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우려스럽다. 우리는 시위대에 좀 더 집중적으로 탄압이 가해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인권을 제한하는 법령이 속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상당수의 풀뿌리 저항운동도 목격할 것이다.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시위와 이에 대한 탄압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응원하는 많은 '치어리더'들이 결코 설명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초국적 자본의 힘이다.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중국 같은 닫힌 사회까지 모두 노동조합 및 인권 보호 등을 말하는 골치 아픈 민주주의와 활기찬 언론보다는 좀 더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성향에 가깝다.
전 세계에서 시위에 대한 대처는 유사하게 나타났다. 국가와 기업들은 민주주의의 허울을 유지하면서 반대 의견을 짓누르는 최선의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영국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인권보호법에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영국 경찰은 평화로운 시위대들에게 곤봉과 방패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런던 재계의 '신뢰하는 파트너'들에게 배부되는 경찰의 테러위협 관련 보고서는 '점령하라' 시위와 '의심이 가는 활동가'를 언급하고 있다.
영국에는 엄중한 국내안보 법규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애국법(Patriot Act) 같은 법은 결코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초 벌어진 긴축정책 반대 시위, 그리고 8월에 영국 주요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난 뒤 영국 경찰은 SNS 계정과 스마트폰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 군대는 SAS(영국 특수부대)를 운용할 대규모 기지를 런던에 세우고 있는 중인데, 이는 영국의 전통적인 자치 치안제에서 극단적으로 벗어난 조치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이스라엘에서 '점령하라' 식의 시위가 벌어졌지만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15살 소녀를 폭행하고 시위대를 닥치는대로 체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처럼 이스라엘도 취재활동을 제한하고 반대의견 표출을 불법으로 만드는 새로운 법안을 밀어붙였다. 새로운 법안은 좌파 성향 단체에 대한 기부 행위를 불법으로 만들고 인권법도 약화시킨다. 명예훼손에 대한 법규도 강화돼 심층 보도를 하는 것은 더 위험해졌다. <하레츠>는 이를 두고 '신(新) 봉건제'라고 불렀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국방수권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는 미국 시민에 대해 정당한 법 절차를 중단시키고 그들을 무기한 감금하거나 고문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 세계 다른 민주국가에서 이와 유사한 법을 받아들이는 걸 보게 되도 놀라서는 안된다.
이런 법은 과거에는 합법적이었던 반대 의견을 불법으로 만들 뿐 아니라, 선진 민주국가에서 비슷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자치 치안제을 유지하던 국가들이 법 집행기구의 군사화를 강화하면서 시위대를 향한 폭력 진압이 늘고 있다.
게다가 경찰에게 점점 정교해진 무기와 방어 도구가 지급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 연방정부는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약 340억 달러를 투입해 전장에서나 사용되는 장비로 경찰관을 무장시켰다. 텍사스 등에 근무하는 경찰들이 이스라엘로 파견돼 군중을 통제하는 방법을 훈련받았다는 사실이 탐사 보도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시위대를 탄압하기 위한 용병부대의 세계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전 세계적으로 풀뿌리 시위가 벌어진 시대에 용병들은 중요한 존재다. 군·경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곤봉을 사용하는 것보다 외국인이 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블랙워터', 'Xe 서비스' 등으로도 불린 악명 높은 용병업체 '아카데미'의 설립자 에릭 프린스는 아랍에미리트(UAE)로 회사를 이전했다. 그곳에서 모집한 파키스탄 용병들은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고 있는 바레인으로 갔다.
전 세계 시위에 대한 이러한 조직화된 대응은 하지만 아직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칸(烏坎) 사태'(지난해 9월 정부의 토지 강제수용에 항의해 벌어졌던 우칸촌 주민 시위)가 일어났던 중국에서조차도 말이다. 주민들의 토지를 몰수한 지방 정부를 향한 이 시위의 결과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주민과 정부의 교착상태 자체가 풀뿌리 운동의 새로운 힘을 드러낸다.
SNS는 더 선명하고, 잘 조직된 시위을 가능케 했다. 또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신기술을 이용하는 이들은 민족이나 국적, 종교적 정체성에 따른 충돌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단순하게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은 시민들의 감시 없이 움직이는데 점점 익숙해져가는 다국적 자본과 정부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월가 점령 운동에서 모스크바 시위까지 각 시위에서 나오는 의제들이 더 일관성을 갖추게 되면서 이러한 충돌은 2012년에 극적으로 전개될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결과에 따라 세계는 자본에는 열려 있고 반대 의견에는 귀를 닫는 중국처럼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덴마크처럼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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