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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적때기에 애 눕히고 장사한 40년 세월이 한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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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적때기에 애 눕히고 장사한 40년 세월이 한순간에…"

[현장] 부산시, 공원 재정비로 60~70대 노인 72명 점포 철거 방침

"아지매, 막걸리 한 잔 주이소."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 점심 산행을 나온 한 할아버지가 매점에 들러 막걸리를 찾는다. 이 공원에서 40년 간 매점을 운영해온 박순옥(가명·72) 씨는 반가운 듯 단골을 맞는다. 한두 평쯤 돼 보이는 매점 안에서는 또 다른 손님이 후루룩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40년 전 당시 32세였던 박 씨는 자녀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그는 혼자 자녀들을 키워야 했다. 서울에서도 "소쿠리 이는 장사에서 리어카까지 오만가지를 다했다"는 박 씨는 1971년 당시 돈으로 권리금 100만 원을 주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매점을 운영하면서 자녀를 하나둘 키워낸 그는 나이 일흔둘에 95세 된 노모를 모시고 산다.

예전에는 벌이가 좋았다. 40년 전만 해도 부산에는 공원이 하나밖에 없었다. 매점 100개가 있어도 그럭저럭 풀칠할 수 있었다. 지금은 54개로 줄었다. 젊은 손님들은 유원지로 빠져나갔다. 수입은 한 달에 70~80만 원.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노모와 둘이서 병원비와 집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귀한 돈이다.

▲ 박순옥 씨는 매점을 운영하면서 나이 일흔둘에 95세 된 노모를 모시고 산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상의할 필요 없으면 협의체는 왜 구성?"

그런 박 씨에게 지난 10월 28일 동래구청은 연말까지 매점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 부산시가 '금강공원 재정비 사업'을 벌여 노후한 시설을 현대화하기로 하면서다. 부산시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와 공동사업을 벌이는 것을 구상 중"이라며 "2015년까지 공원에 주차장, 광장, 다목적문화회관, 최첨단 놀이기구 등을 들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정비 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부산시는 동래구청에 매점 철거 사업만 따로 떼어 위탁했다.

구청은 위로금으로 점포 한 동당 1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금강공원 매점 상인 72명은 반발했다. 구에서는 무작정 나가라는 통보를 해놓고 뒤늦게 '협의단'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구청과의 두세 차례 협의가 이어졌지만, 철거하라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또 다른 매점 상인 이순자(가명·70) 씨가 한탄했다.

"구청 직원 둘이 (매점) 사진 찍고 협박한다 아이가. 12월 31일까지 안 나가면 바로 용역 데리고 강제 철거 하겠다는기라. 우리하고 왜 미리 상의 안 했냐고 하니까 보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이라 상의할 필요 없다고 하는기라. 그럼 와 협의체는 구성하락켔노?"

"마흔 넘은 장애 아들 키우거나…"

15일 오후 4시. 구청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상인들이 매점 3호에 옹기종기 모였다. 상인들 중 가장 젊으면서 협의단장을 맡은 옥향숙(52) 씨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일급 장애인이거나, 나이 마흔 넘은 장애 아들을 키우는 등 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라며 "대학생 조카를 키우는 나도 암 수술을 두 번해서 폐가 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평균 연령은 60대. 그 중에는 나이가 90세 가까이 된 노인도 있었다.

올해 나이 70세인 이순자 씨는 "28살에 시작해 자녀 셋을 업고 다니면서 장사했다"며 "배고파서 새끼들 먹이려고 들어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때는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었던 큰 애가 지금 50살이 됐으니 말도 못한다"고 했다.

"배가 고파서 나왔지. 아(아이) 업고 다니면서 장사한 기라. 그래가지고 풀밭에 거적때기에 아 눕혀놓고 (장사)하고, 젖 먹이고. 개미가 아 얼굴에 기어올라갖고 엉망진창인데 그렇게 해서 키우고 산 기라. 연탄불을 못 피워서 옆에 집에 보리쌀로 여섯 식구가 먹은 데도 있었는데, 옛날에 밥솥이 있었나. 솥에 넣고 생활했는 거라."

ⓒ프레시안(김윤나영)

안 나가면 철거용역비도 청구?

이 씨는 "저축할 돈은 없어도 70~80만 원이면 자장면 한 그릇 사먹을 수 있고, 병원비도 낼 수 있다"며 "살아있는 동안 약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지금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나가면 정부에서 노인연금 9만 원 받고 용돈 쓰는 처지"라며 "사는 게 서글프다"고 했다.

"오죽하면 내가 시에 가서 정문 앞에 구딩이 파놓고 우리랑 가족들 전부 생매장시키라고 고함쳤다 아닙니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진데 얼마나 답답하믄 그런 소리를 했겠는교.

(그런데도) 저놈들은 몰라 갖고 냉정해 삐니까. 이 돈(위로금 1000만 원) 안 찾아가면 구청이 다 가져가삔다 카고, 안 나가면 우리가 철거비용까지 내야한닥 카고. 힘없는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아이가. 진짜로 철거비용까지 내야하는 거 아이가…."


상인들 "보상금 공평하게 집행해야"

상인들은 그동안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장사했는데 권리금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쫓겨난다고 한탄했다. 이들은 특히 매점 한 동을 혼자 맡은 사람과, 반씩 나눠 장사하는 사람들의 보상금이 일괄적으로 1000만 원이라는 점에 반발했다.

실제로 40년 전 100만 원이었던 권리금은 10년 전부터 평균 700~800만 원으로 올랐다. 목이 좋은 자리에서는 1000~2000만 원까지도 치솟았다. 이들은 권리금을 두 번씩이나 내고 반쪽 동에서 한 동으로 터를 넓힌 사람들에게는 공평하게 2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재정비 후 다시 장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철거될 때까지는 몇 개월이라도 점포에서 계속 장사하고 싶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협의단장인 옥향숙 씨는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아도 10년 이상 살면 어느 정도 권리가 생기는데, 4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생존권에 대한 대책도 없이 내보낸다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 동래구청을 찾은 금강공원 매점 상인들. ⓒ이만수

구청 관계자 "위로금 주는 것도 아깝다"

이에 대해 금강공원 매점 철거를 담당하는 구청 관계자는 "위로금은 보상비가 아니고 행정적인 협조 차원에서 지불하는 것인데, 사실 안 줘도 되는 거다. 법적으로 보상 근거가 없는데 (상인들이) 떼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에서 하는 사업이 재개발·재건축이 아니라 '공원 재정비 사업'이라 매점 상인들에게는 보상과 관련한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원래 상인들은 해마다 계약을 갱신해서 연말이 되면 자동적으로 나가야 한다"며 "매년 장사를 해왔으니 계속하겠다고 보상해 달라는 건데, 솔직히 (위로금을) 주는 것도 아깝다. 마치 전세 살다가 전세 계약 끝나고 보상금 내놓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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