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체결 이후 농가가 큰 피해를 입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예고된 미래다. ⓒ프레시안(최형락) |
2010년 일본 내각부의 자료를 보면, 일본이 농업을 완전 개방할 경우 농업 및 관련 산업에서 34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일본의 식품 자급률은 현 40%에서 14%로 감소한다(<EPAに関する各種試算>). 한국은 어떠할까?
놀랍게도 한국 정부는 그런 자료를 만들지 않는다. 2004년 한-칠레 FTA, 2011년 한 EU FTA, 지금의 한미 FTA, 그리고 머지않은 한중, 한호 FTA라는 거센 흐름을 강행하면서도 농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일방적 홍보가 있을 뿐이다. 외교통상부가 낸 <한미 FTA 이제 마무리 할 때입니다>라는 자료를 보자. 2017년까지 22조 원을 쓴다는 <FTA 국내보완대책>이란 것이 있다. 이 대책으로 우리 농업에서 'FTA 환경 하에서 경쟁력을 갖춘 산업기반 구축'이 가능하다는 듯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22조 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그 돈을 쓰면 한국 농업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일까? 3회로 이어질 이 글에서 나는 이른바 농업의 국제경쟁력 정책이 20년 동안 실패했으며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점과 국내적으로는 중소농 조직화 허용과 농업 주도 식품체계를, 대외적으로는 기초 농산물 가격 보장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는 새로운 국제농업통상 규범을 정립하는 대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1995년부터 걷어 간 농어촌특별세
20년 전인 1992년, 우루과이 라운드(UR)를 강행하던 김영삼 정부는 2002년까지 10년간 62조 원을 농업 경쟁력 강화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94년 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농어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농업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농어촌 특별세다. 애초 10년 동안만 걷겠다고 한 농어촌 특별세는 다시 10년이 연장되었다. 시민들이 집이나 땅을 취득할 때 내는 농어촌 특별세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이 소득세를 낼 때 농어촌 특별세를 추가로 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했다. 2011년에 시민들로부터 걷을 농어촌 특별세가 4조2000억 원이니 막대한 돈이다.
김대중 정부의 1999~2003년 사이 총 42조 원을 쓴 <농업농촌발전계획>, 노무현 정부의 2004년~2013년 동안 총 119조 원을 쓴 <농업농촌대책>,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2017년까지 22조 원을 쓴다는 <FTA 국내보완대책>도 그 뿌리에는 농어촌 특별세가 있다.
▲지난 1994년 4월 12일, 나주 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민자당(현 한나라당) 나주시·군 개편대회가 열린 나주 군민회관 앞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계화 물결은 농업에 치명타를 가했다. ⓒ연합 |
20년 동안 실패한 '국제 경쟁력 패러다임'
그렇다면 지난 17년 동안 걷어간 농어촌 특별세는 성과가 있었는가? 세금을 사용하여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목표가 실현되었는지를 보자.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농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농어촌발전대책>이다. 그 '10대 핵심 시책'이란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우리 농어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할 가족 전업농 15만 호 육성'이다.
여기서 전업농이란 무엇일까? 정부 자료는 이를 "농어업 소득으로 교육, 문화생활비를 포함하는 가계비를 충당하고, 경제 잉여로서 확대 재생산을 위한 신규 투자가 가능한 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가"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도시 근로자 상위 30% 소득계층의 가구당 평균 소득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소득"을 올릴 농가라고 설명한다(농림부, 1994, 농어촌 발전대책 및 농정개혁 추진 방안). 쌀의 경우 3헥타르 이상의 전업농이 정책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119조 원 규모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도 첫 번째 목표였다. 과연 이에 따라 도시 상위 30%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전업농 15만 호가 육성되어 한국 농업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가?
농가 중 1%만 농사 지어 가계비 해결
놀랍게도 도시민들이 농어촌 특별세를 내기 시작한 1995년과 비교해서 2009년의 평균 농업소득 자체가 오히려 감소했다(통계청, 농가경제조사). 현재 이용 가능한 자료로서 1995년과 가장 근접한 1999년을 기준으로 2헥타르 이상의 농사를 짓는 농가는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한국여성개발원, 여성농업인의 취업유형별 소득전망과 정책개발). 이런 여유가 있는 농가들이 전체 농가의 6.5%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2010년 기준으로, 농업소득만으로 가계비를 모두 해결하려면 10헥타르 이상의 농사를 지어야 한다. 심지어 7헥타르에서 10헥타르 사이의 농가도 농업소득만으로는 가계지출을 감당할 수 없다(통계청, 2010 농어가 경제조사 결과).
2010년 농어업센서스의 자료로 추정하면 10헥타르 이상 농가는 전체 농가의 1%가 되지 못한다. 즉, 이제 농가의 1% 정도만 농사 소득으로 정상적 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김영삼 정부의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극소수의 농가만이 농사를 지어 윤택한 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농조차 더 이상 농사로는 자녀 교육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철저한 실패다. 김영삼 정부의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농업대책은 철저히 실패했다. 2010년의 농어업센서스는 농가의 68%가 연 농산물 판매액이 1000만 원이 되지 못하는 빈농임을 보여 준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농가들이 한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도시민이 해마다 수조 원씩 낸 농어촌 특별세는 도대체 어디에 썼나?
아직 겪지 못한 FTA 충격
▲지난 10월 6일 농민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러나 한-EU FTA는 불행히도 발효되었고, 여기에 한미 FTA와 한중 FTA, 한호 FTA까지 가세할 위험에 놓여 있다.
더 두려운 점은 이미 20년 동안 실패한 정책에 대한 반성조차 없이 시민의 세금을 걷어 그것을 연명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외교통상부의 <한미 FTA 이제는 마무리할 때입니다>는 'FTA를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하자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것은 20년 전에 김영삼 정부가 한 거짓말이다. FTA는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일 수는 있어도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될 수 없다.
평생 농어촌 특별세를 내야 할 시민으로서,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농업과 FTA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무엇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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