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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점령 시위가 '반자본주의'? 개혁 저항세력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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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점령 시위가 '반자본주의'? 개혁 저항세력의 꼼수"

"자본주의 개혁 논쟁 촉매로 써야"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월가 점령 시위가 17일로 두 달째를 맞았다. 하지만 시위가 가장 먼저 시작됐던 뉴욕의 주코티 공원 농성장이 15일 경찰에 의해 철거되는 등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앞에 텐트를 치고 한 달째 농성중인 '런던을 점령하라' 시위대도 16일 런던시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은 상태다.

경제 위기를 불러온 금융 자본의 규제와 부자 증세 등을 주장하는 시위를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는 흔히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6일 <가디언> 칼럼에서 반자본주의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자본주의를 개혁하라는 요구를 회피하려는 이들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양상이 달리 전개되어 왔으며 나라별로도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처럼 거대 기업이 존재하지만 강력한 복지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나라도 있고,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싱가포르에서는 모든 토지를 정부가 소유하는 등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할 때 자본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각국의 사정에 따라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조금씩 다르다고 역설했다. 또 시위대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자본주의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설적인 논쟁을 벌이기 위한 촉매로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반자본주의'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런던을 점령하라' 운동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흔히 시위대들을 반자본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이는 심각한 오도다. 지난주 런던 시위대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많은 시위 참가자들은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좀 잘 규제되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자본주의를 바랐다. 시위 참가자 중 일부가 반자본주의자라고 할지라도, '반자본주의자'라는 게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

▲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런던을 점령하라' 시위대. ⓒAP=연합뉴스
예컨대 많은 미국인들은 프랑스나 스웨덴을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인 나라로 여긴다. 하지만 19세기의 미국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본다면 사회주의라고 부를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조국이 기업들에 누진소득세를 매기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1905년 뉴욕주(州)가 제빵사들의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 미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언급한 "원하는 만큼 일하는 자유"를 성인들에게서 빼앗아 가고, 아이들에게도 '일할 자유'를 빼앗아갔다는 사실에 끔직해할 것이다. 자본주의의적이란 무엇인지, 또 반자본주의가 무엇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현재 우리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주춧돌이라고 여기는 많은 제도들은 19세기 중반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유한책임회사를 반대했고, 허버트 스펜서는 중앙은행 제도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제도들이 투자 위험에 상한성을 설정해 시장의 경제적 유인을 약화시킨다고 봤기 때문이다. 파산법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대 의견들이 있었다.

누진소득세와 복지 제도, 아동 노동 규제, 하루 8시간 근무제 등 처음 도입됐을 때 반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조치들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필수 요소가 됐다.

자본주의는 또 나라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진화했다. 사유재산과 이윤 추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모두 자본주의이지만, 그 체제가 조직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우호적인 기업들끼리 상호출자를 하는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교차 소유한 지분 비율이 전체 상장 주식의 50%를 넘어선 적도 있었고 지금도 약 30%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적대적 인수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이로써 일본 기업들은 영국이나 미국의 경쟁 업체보다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또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핵심 노동자들에게 종신 고용을 보장해 노동자들의 강력한 충성심을 얻어냈다.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 관한 경영 사안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농업과 소매업 분야에는 대기업 진출을 막는 강력한 규제가 시행돼 빈약한 복지를 보완했다.

독일의 자본주의도 미국이나 영국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처럼 독일도 노동자들에게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권한을 주지만 공동결정 시스템 형태로 이뤄진다. 일본처럼 노동자 개인에게 발언권을 주는 게 아니라 공장 폐쇄나 인수 등 핵심 이슈를 논의하는 감독위원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이 상호출자를 통해 적대적 인수로부터 보호를 받은 반면, 독일 기업들은 공동결정 시스템으로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의해 보호받는다.

스웨덴과 독일처럼 유사한 자본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 사이에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독일에서는 공통결정 시스템과 산별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중앙 노조가 노동자들을 대변한다. 임금 협상 역시 스웨덴 기업총연맹이라는 사용자 단체와 노총 사이에서 이뤄진다.

의도적으로 재벌(concentrated corporate ownership)을 없앤 독일과 달리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재벌 중 하나가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에릭슨이나 일렉트로룩스, 사브 등 스웨덴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한다. 혹자는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기업들이 스웨덴 전체 생산액의 3분의 1을 만든다고 계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강력한 복지 제도로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 중 하나를 만들었다.

자본주의에 관한 정의에 도전하는 혼합체제(hybrid)도 있다. 사회주의적 전통을 가진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싱가포르는 더 재미있는 케이스다. 싱가포르는 보통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대표 모델로 인식된다.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다국적 기업에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싱가포르는 매우 사회주의적인 국가다. 모든 토지는 정부의 소유고 주택의 85%는 국영기업이 공급한다. 국내총생산의 22%가 국영기업에서 만들어지는데, 전 세계 평균인 10%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자본주의 국가인가 사회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스웨덴이나 일본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바꿔야 하는 것과 영국을 위해 바꿔야 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점령하라 운동'이 주장한 바와 같이 영국에서는 금융 분야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하다. 점령 시위 참가자들이 서로 동의한 개혁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사실이 금융 개혁을 하지 않는 핑계로 이용돼선 안 된다. 런던 시위대 안에는 경제위원회가 구축되었고 이미 많은 금융 개혁안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 개혁안 중에는 아데어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이나 조시 소로스 오픈소사이어티 재단 의장, 앤디 할데인 영란은행(BOE) 금융안정성 최고 책임자와 같은 '기득권'이 지지하는 내용도 있다.

점령 운동에 반자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개혁을 원치 않은 세력들은 진짜 논쟁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젠 막아야 한다. 영국의 자본주의가 국민 다수를 위해 더 나아지게 만드는 논쟁을 촉발하기 위해 점령 운동을 이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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