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전 세계적인 시위가 벌어진 다음날인 16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진행된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헌정식에 참석해 월가 시위대와 관련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킹 목사를 언급하면서 "그가 오늘날 살아있었다면 실업자들이 월가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을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월가의 월권에 올바르게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켰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초에도 월가 시위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현상이라며 공감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날 역시 월가 시위대의 저항 정신을 킹 목사가 주창했던 저항 정신에 빗대 지지 의사를 밝힌 셈이다.
▲ 미국 워싱턴DC 내셔널 몰에서 열린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헌정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월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미국 시민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지난 대선 때부터 월가가 낸 막대한 정치자금으로 선거를 치렀고, 집권하는 동안에도 금융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가 시위가 지속되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자신들의 경제 정책 추진과 내년 대선 구도에서 시위를 활용하려는 목적 등이 작용해 잇따라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상태다. 이에 따라 월가의 큰손들도 이제 오바마 대통령에게 품었던 기대를 거두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월가의 주요 기업들이 공화당 대선 주자 중 하나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올해 봄 이후 현재까지 150만 달러를 몰아준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27만 달러를 모으는데 그쳤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롬니 전 주지사가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나 헤지펀드 운용사인 하이브리지 캐피탈 매지니먼트, 사모투자기업 블랙 스톤 등 월가의 대표적인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반면, 오바마 진영은 2008년 자신들을 지원했던 기업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례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했던 골드만 삭스의 직원들은 올해에는 4만5000달러만을 기부한 반면 롬니에게는 35만 달러나 안겨줬다.
신문은 올해 총 모금액으로는 오바마 측이 1억 달러로 롬니 측보다 3배가 많지만 월가에서 끌어들인 정치자금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격차에 대해 롬니 측은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들지만 오바마 측에서는 롬니가 월가의 이해를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해석도 각각 다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월가와 월가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표를 둘러싼 양당의 각축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월가 시위대는 정치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시위를 지속시키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시위대들은 기온이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침낭을 구할 방법을 궁리하면서 시위대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정책 이슈를 정리하는 방안 역시 조금씩 논의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전 세계적 동조 시위를 촉발한 이들 시위대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고 있다. 통신은 시위대에게 담요와 베개, 침낭 통조림 등이 지원되고 있으며 전국교원연맹이 리버티 플라자 인근에 있는 빌딩 사무실을 시위대에 숙소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지금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30만 달러(약 3억3000만 원)에 이르는 후원금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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