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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인의 쓸쓸한 죽음,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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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인의 쓸쓸한 죽음,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석훈 칼럼] "최고은법, 이제는 통과시키자"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 내가 책에서 다루는 소재들은 어렵고 힘든 존재들 혹은 스스로는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물, 공기. 아니면 '개도맹', 개구리, 도롱뇽, 맹꽁이 같은 것들이다.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은 막상 해보니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가치 평가, 즉 우리가 지켜야 할 생태계의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이냐, 그리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나 문화적 요소들의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이냐는 가치 평가가 중요한 핵심고리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부수어버린 동대문 운동장을 보존하는 것의 가치는? 이건 문화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이고, 그리고 4대강 유적지의 문화재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곳에서 만난다. 생태계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거나 보여줄 수 없는 것처럼, 문화에도 그런 요소가 많다. 이명박 정부의, 그냥 부수어버린다. 이 불도저 앞에서 생태계와 문화재, 이런 것들의 존재가 참담하게 지어져 버린다.

일단 분쟁의 소지를 없애버리겠다고 구럼비 바위부터 먼저 부수어버린 해군의 공사 강행도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다음 세대' 혹은 세대간 형평성 역시 공통점이다. 지금 우리가 불편하다고 없애버리는데, 구럼비 바위가 다음 세대에게는 정말 중요한 유산으로 여겨질지,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가? 그런 이유로 난 현 정권이 반 생태정권이며 동시에 반 문화 정권으로 생각한다.

몇 년간 두 개의 작업을 동시에 해보니, 명확한 차이점 한 가지가 있기는 하다.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 예를 들면 강화 갯벌을 지키는 저어새나 울산에서 늘 문제가 되는 고래들에게 뭘 직접 물어볼 수가 없어서 늘 답답하고, 간접적인 경로로만 연구해야 한다. 문화경제학에서 진짜 좋은 점은, 궁금하면 직접 만나서 물어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이든, 배우든 아니면 스탭이든,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하면 좋겠느냐,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생태경제학 보다는 작업으로 보면, 몇 배는 편하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의 문제이다 보니, 감정이 따라가서 연구자로서는 생태계의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BS 26층에서 막내작가가 뛰어내렸을 때와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이 자살했을 때로 기억한다. 분석 작업 때문에 영화 <청춘>을 한참 보고 있을 때, 감독이 자살한 거라서 마음의 애틋함이 더 했다. 막내 작가에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한류스타에서 성공한 감독에 이르기까지, 문화 산업의 뒤안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죽음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거라고 하는 야박한 얘기들을 보면서, 그건 너무 무심한 동어반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울증은 자살의 원인인 것이고, 왜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그들이 고립되고, 외롭고 힘들었느냐, 그게 경제학자가 볼 문제이다. 약간만 치료를 받고, 조금만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었더라면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정말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고(故) 최고은 작가.
어쨌든 책 작업 후반부에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로 일명 '최고은법'이라고 부르는 4대보험에 대한 문화예술인에 대한 특별 조항 같은 것이 8월에 여야합의로 입법하겠다는 것까지 보고 나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정도는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책에서는 약간 언급만 하였다. 솔직히, 이 정도는 할 거라고 보았었다.

일반적인 노동과는 달리, 문화 산업은 그 특성상 취업 중인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의 경계가 모호하다. 1류급 감독의 경우를 살펴보면, 내 관찰로는 자기들은 '헌팅 중' 혹은 '구상 중' 그렇게 말하지만 법적으로는 미취업 상태이고, 그냥 노는 걸로 보인다. 그건 영화사나 제작사에 정규직으로 취업 중인 스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물론 비정규직의 일반화 속에서 그런 특수 직종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제도 정비 없이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지난 10년간 온 몸으로 겪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온 국민이 사회당의 공약인 것처럼 기본 소득을 받고 있으면, 문화예술인이라고 해서 별도로 복지 정책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 특히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고 굳게 믿는 한나라당의 복지 프레임 내에서 기본 복지로 뭔가를 처리하기에는 요원하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문화예술인들에 대해서 4대 보험을 법적으로 처리해주자는 게 최고은법의 취지이다. 4대 보험에 대한 사용자 납입분을 기금으로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를 정부 보조로 직접 할 것인가, 이런 기술적인 논쟁들은 좀 남아있다. 어쨌든 이 정도만 되어도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의 지나친 생활의 격차가 생겨나는 것은 좀 완화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약속했던 8월이 지났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이면 또 몇 달 질질 끌면서, 경제 위기니까 긴축 경제해야 한다고 슬쩍 넘어갈 모양새이다.

일단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양쪽 다 발의한 법안에 제동을 건 것은 노동부이다. 명분은, 문화예술인이 노동자라는 것을 관리하기에 어렵다, 즉 비정규직 일반에 대해서 너무 복지정책을 강화시키면 자신들이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노동자성'이라는 아주 해괴한 단어를 동원하면서 반대 논리를 만들고 있다.

일단 말이 되지가 않는데, 문화 산업이라고 해도, 제작단계에서 다 정상적으로 세금내고, 한국은행에서 GDP 계산할 때 쓰는 국민소득에 다 잡히기 때문에, 그 매출 신고와 세금 경로를 따라서 처리하면 행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건 문화예술 전체를 지하시장 취급하거나, 편의점만도 못한 구멍가게 취급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진짜로 이걸 명분으로 법안 처리를 막고 있는 진짜 이유는, 4대보험이라는 자신들의 업무 영역에 문화부가 들어와서, 이럴 수는 없다, 그렇게 반대하는 걸로 이해하고 있다.

보통은 여야의 정치 싸움 때문에 꼭 필요한 정책 법안이 표류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노동부의 밥그릇 지키기가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해는 가지만, 부처 밥그릇 지키겠다고, 이런 중요한 전환점에서 법안 처리가 계류되고 표류하는 것은 진짜 아닌 듯 싶다. 안 그래도 청년 유니온의 노조 설립을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미적미적 거리고 있거나, 노동자의 권익에 반하는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이번 정권에서 노동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헐리우드와 비교해도 노조나 유니온 같은 보호 장치가 너무 미흡하다. 당장 자기 생활 꾸리기에도 정신이 없어서, 노동부 청사 앞에서 집회할 인력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노동부 밥그릇 지키기 눈치 보면서, 아주 기본적인 4대보험을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적용시키는 1차적인 정책도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해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여야 합의도 다 된 거라서, 문안 조정하고, 상정하면 끝나는 일을 언제까지 이렇게 미루고 있을 것인가? 이 정도만 해도, 올 겨울,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 쓸쓸이 자살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김치 남은 거 있으면 좀 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겼던, 그런 눈물 나는 죽음은 많이 줄일 수 있다.

솔직히, 한국의 문화영역에서의 1차 생산자, 기회자들, 그들에게 우리가 해준 게 뭐가 있는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현장에서 외주 제작사의 스탭들의 일상적 삶에, 진짜로 한국 사회가 보태준 거 하나도 없이, 1류급 스타들만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발레, 오페라, 국악, 이런 현장에서 벌어지는 잘 교육받은 연주자나 기획자들의 삶을 보면 우리는 문화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 국제민속음악 대회에서 호평 받거나 우승하는 음악이 국내 음반시장에서 5장, 10장 팔리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니 그들이 배고프고 힘든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아직 우리는 소비자로서 문화 다양성의 꽃을 피워 올릴 준비가 덜 되어있다. 그러니 그 빈 공간을 당분간 국가가 조금 더 채워주는 수밖에 없다.

토건의 나라에서 문화의 나라로 우리가 바뀌면, 국민경제의 생태적 전환도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이미 문화예술 영역에 들어와있는 20대~30대가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데에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최고은법이, 그 기본은 마련해줄 수 있는 출발점이다. 제발 이 법 만큼은 첫 눈 오기 전에 출발시키자고 부탁 드린다. 4대 보험이 우리의 젊은 문화예술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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