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정치와 탈정당, 약간은 말장난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20대의 정치의식과 소통양상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바가 있을 듯 합니다. 지금 한국의 20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은 안철수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한참 힘 좋던 시절의 박근혜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안철수를 지지하는 주축 세력이 20대~30대인 것을 생각해보면, 특히 수도권의 40대가 "혹시라도 우측 깜빡이 켜고 좌측 통행할지도 모른다"고 하던 지난 대선의 이명박 현상과는 열풍 자체는 같다고 할지라도 지지 계층 사이에는 좀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 20대가 이렇게 안철수에게 열광하는가, 그걸 미디어가 만든 것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안철수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고 보느냐에 따라서 판단의 분기점이 갈립니다.
지금의 안철수는 어떤 면에서는 고공비행을 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길바닥에서 살아온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2009년 10월부터 30회 가깝게 청춘 콘서트를 했고, 대부분이 20대인 여기에 참여한 청중이 3만명이 넘습니다. 그 중에는 5천명 가깝게, 정말로 '어메이징' 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온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천 명을 넘게 모을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요즘 사람 모으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교보나 예스24 같은 대형 쇼핑몰에서 마음 잡고 보아도 100명 넘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청춘 콘서트는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이 20대들이 안철수라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를 보면서 가졌을 심경을, 저는 '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하게 더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전국의 한 곳 한 곳을, 점에서 면으로 만들어나간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를 그냥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건 어딘지 좀 어색한 것 같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대장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역순방 같은 걸 하고, 현장 방문도 합니다. 유명인들도 이런 걸 합니다만, 그 누구도 안철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이런 현장에서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저를 만나는 20대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때로는 저에게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공감 능력 같은 것을 약에 쓸려고 해도 없다고, 스스로 반성합니다. 지금의 안철수가 누리는 인기는 위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최소한 지난 3년 동안 밑바닥에서부터, 길바닥에서 차분차분하게 다져져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밑바닥에서부터 20~30대가 열광하고, 40대가 기꺼이 즐거운 눈으로 보는 사람이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안철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나는 꼼수다'로 이명박 정권에서의 막힌 한 구석을 뚫고 나갔던 김어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겨울의 홍익대 비정규직 청소부 문제에서 반값 등록금 집회, 부산 한진중공업까지, 가장 힘든 곳에서 맨 앞에 섰던 김여진이 있습니다. 시대는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최소한 지금 이 세 사람이 누리는 대중적 인기는 단순한 거품이 아니라, 바닥부터 다져진 공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현장에서 고생한 활동가들도 있고, 또 이런 일들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부터 현장을 방문하던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공평하게 인기를 누리고 지지를 받아야지, 그 공을 몇 사람이 너무 가져간 것 아니냐고 말할 수는 이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미지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청춘 콘서트든, 한진 중공업 현장이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왜 정당에서 그 돌파구를 찾지 않느냐, 왜 정상적으로 정당정치에 참여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 건 아니고, 사람들의 욕구나 답답함을 수용해주지 못하는 민주당에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정당 정치가 정상화되고, 대중들의 욕구가 정상적인 정치 과정을 통해서 대변되는 게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안될 때? 사람들은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고, 그게 안철수라는 출구를 찾아서 폭발한 게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보았던 안철수 현상일 겁니다.
이미지만 본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저도 동의할 수 있는 있지만, 이명박 때의 '닥치고 경제' 때와는 조금은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하는 경제근본주의의 시대가 지난 대선에서의 사람들의 열망이었다면, 지금 안철수를 통해 투사되는 열망에는 그와는 반대의 흐름, 공동체의 꿈, 다음 세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한 때 노무현이 외쳤던 '상식적 사회'에 대한 열망 같은 게 막 뒤섞여 있겠지요.
이게 궁극적으로 어디로 갈 거냐, 그건 모릅니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실체 없는 거품이 어느 날 터지면서 노무현 시대의 몰락처럼 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지금과는 또 전혀 다른 단계의 한국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안철수가 정말로 출마했을 때, 그에게 투표할지 하지 않을지,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개별적으로 어떤 정책을 얘기할지, 어떤 정책적 구상을 가지고 올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대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은, 만약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긴다면, 다음 정권은 연정의 형태를 가진 일종의 집단지도체계처럼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민주당은 절대로 자력으로 집권하지 못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요. 제각기 자신의 길을 걷는 많은 힘들이 모여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이익 덩어리를 이길 수 있겠지요. 한 편에서는 이 정당을 전부 모아서 임시정당 혹은 가설정당과 같은 프로젝트 정당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좀 어려워 보입니다. 원칙적으로 저는 그렇게 당을 하나로 묶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논란을 지나, 단일후보를 만들어내고, 정책연합이든 연정체계든, 그렇게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때 안철수가 단일 후보의 결정 과정에 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상적으로 단일화 과정이 진행된다면, 그 과정에서 여러 정당이나 집단이 지지했던 정책들이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하나의 공약집이 나오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런 과정 없이 안철수든 혹은 그 누구든, "이 힘이 더 강하다"라고 추대하거나 '옹립'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반대할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누구?"라는 것보다는 그 논의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찰하기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민주당도 꼼수가 많은 정당입니다. 안철수 현상의 등장으로 기존 정당이 심리적 타격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걸 뒤집어서 말하면 기성 정치인에 대한 '희화화'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와 기존 정당은 현실적 경쟁자이지만, 집권 이후에는 또한 정책을 공유하면서 같이 국정을 이끌어나가게 될 파트너 관계이기도 할 겁니다. 집권 이후에 정당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지만, 그게 무당파이지만 비정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단 당원이 되라는,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는 지도자를 일단 정당 절차에 들어가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청춘 콘서트에는 스스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매회 100~150명씩 스스로 자원해서 행사를 이끌어나가는 그 20대들이 정치적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들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무당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에너지를 가지고 왜 안철수 같은 허상을 쫓느냐고 말할 게 아니라, 왜 저 에너지를 당신들 정당에서는 받아내지 못하느냐, 그런 얘기가 더 하고 싶군요.
제가 안철수에게 주문하고 싶은 딱 한 가지는 "당신은 일방주의를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 모든 것이 몰렸을 때 '고독한 결단'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충분히 동감할 수 있고, 집단이나 정당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몰렸을 때 구조적으로 생겨나는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20대~30대에게 안철수라는 심벌(Symbol), 정말 상징 뿐이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은 허상에 대해서 문제라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정당에 가입하기를 거부하거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무관심 그 자체입니다. 대통령이 뭘 하든, 한나라당이 뭘 하든 "어차피 마찬가지다"라고 대중들이 정치에 극단적으로 무관심해지는 상황이 제일 위험합니다.
제가 지난 정부 중반쯤 졸저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만나보았던 많은 20대들은 진짜로 그렇게 정치절차나 정치 과정에 심드렁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 이후에 제가 만나보는 20대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뭔가를 바꾸고 싶어했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했고, 마땅히 자기 힘을 얹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데에서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무당파적 경향이 오히려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무당파지만 비정치적인 것인 아닌 현 상황이, 제 눈에는 지난 대선 때처럼 암울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간 안철수,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게 이미지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안철수는 가장 많은 20대를 만났고, 대화하였고, 또 20대가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몇 년간 이걸 연구했던 저도 그렇게 많이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게 박근혜는 물론 손학규, 정동영과도 다른 점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당분간 20대~30대와 이 꿈을 조금 더 꾸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꿈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 꿈을 꾸는 동안, 현실은 조금씩 바뀝니다. 그걸 왜 정당이 못했느냐고 하는 게 순서지, 왜 이런 꿈을 꾸느냐고 할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만약 다음 대선에서 단일 후보가 나오지 않고, 제가 지지하고 있는 다른 진보후보가 각각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겁니다. 저도 골치 아픕니다만,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장사라는 표현을 쓴다면,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꿈을 파는 장사입니다. 정당의 틀에 이 모든 것을 가두려고 하면, 그 때는 정당이 아니라 관료체계로 전락하게 됩니다. 현실은 언제나 불균형인데, 지금은 관료체계를 싫다고 하는 힘이 더 큰 것 같네요.
심상정이나 노회찬 같은 사람과 집권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저한테는 어차피 대선은 차악일 수밖에 없지요. 이 경우라면, 저는 많은 20대들이 꾸는 꿈을 조금은 더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꿈을 꾸어보는 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20대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안철수가 청춘 콘서트를 떠나면서 했던 말입니다. 입장료 없던 콘서트, 그가 만든 꿈에 저도 당분간 함께하렵니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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