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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립을 위한 조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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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립을 위한 조건 (7)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길] 역사적인 조건 ④

1. 중립외교의 핵심인 기미ㆍ자강 정책

광해군이 후금에 취했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기미책(羈縻策)으로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되,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나아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군사적 자강책(自强策)을 마련하는 것이다.(한명기, 2002, 72)

『광해군 일기』권 147 (광해군 11년 12월 신미)에 따르면, 광해군이 후금에 대한 대응책을 신하들에게 지시한다;
"第惟我國人心兵力無可爲之勢 奈何 奈何...大槪一邊羈縻一邊自强 誠是長算 固不可廢一 皆無着實擧行之事 予切痛焉."

이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인심이나 병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대개 한편으로는 기미책을 쓰고 한편으로는 자강책(自强策)을 쓰는 것은 진실로 장구한 계산으로 한 가지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계책이 모두 착실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내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오."

기미 정책(기미책)은, 강자인 중국이 약자인 오랑캐들에게 적용한 지배전략이다. 이 지배전략을 동일한 오랑캐인 후금을 상대로 펼치자는 게 광해군의 기미책이다. 다만 강자가 약자를 다루는 기미책을 역전시켜 약자(조선)가 강자(후금; 오랑캐이지만 강자)를 다루는 '방어적인 기미책'을 광해군이 구사했다.

광해군이 후금에 대해서 취했던 기미책이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정통적인 기미책이라기 보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에서 明과 후금 사이에서 나라를 보존하고 自强을 하는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행하여 졌다.(이은숙, 8)

국방력을 수반하는 광해군의 '방어적인 기미책'은 스위스를 비롯한 전 세계의 무장 영세중립 국가들이 지금도 애용하는 대외전략이다. 기미하는 동시에 자강하는 정책은, 비무장 영세중립국가인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모든 무장 영세중립국가의 기본방침이다. 1815년에 주변 강대국(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을 기미한 끝에 영세중립에 성공한 스위스는, 민방위 중심의 자강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을 교묘하게 철수시키며 소련을 기미한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에 성공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남북한의 경우도 기미하면서 자강하는 중립정책을 공동으로 펼쳐야 중립화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스위스보다 2백년 앞서 무장 영세중립의 모델인 '방어적인 기미책'을 정립한 광해군을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사부님으로 모셔야하지 않을까?

1) '기미'의 뜻풀이

기미(羈縻)는 말의 굴레와 소의 고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미 중국에서는 한무제(漢武帝) 시기 두 단어가 숙어처럼 되어 '견제'라는 의미를 얻었다. 기미가 가지는 좀 더 자세한 뜻은 '羈縻不絶而已'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견제한다는 기미와 함께 '부절(不絶)'은 국교의 유지, 구체적으로는 사자(使者)의 왕래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이(而已)'란 '부절'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절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란 '군사적 공세와 정복ㆍ주변 민족의 나부(那部)편입ㆍ관리파견'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기미책이란 '주변민족이나 국가를 중국화(中國化)하지도 않으며 적국화(敵國化)하지도 않는' 외교의 원리를 의미한다.(고윤수, 51)

'기미'란 본래 중국이 흉노와 같은 주변 오랑캐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변변치 못한 오랑캐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견제하되, 정복하거나 지배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은 피하는 것이다. 오랑캐를 다독거려 '온다고 하면 막지 않고, 간다고 하면 잡지 않는' 소극적인 현상유지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개하고 사나운 오랑캐'에게 의리와 명분을 얘기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이므로 잘 구슬려 평화를 유지하자는 심산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겨우 10년. 여전히 아물지 않은 민생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도 겨를이 없는 와중에 사나운 후금과 일일이 맞대응할 여력이 없었던 데서 나온 고육책이기도 했다. 광해군은 누르하치 집단[후금]에게 유연하게 대처하여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침략 근성을 버리지 않는데 언제까지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편으로 기미책을 써서 다독거리며 다른 한편에선 힘을 길러 침략에 대비하려 했다. 자강책(自强策)이 바로 그것이었다.(한명기, 2000, 187)

2.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위해 어떠한 기미 정책을 펼쳐야하나?

기미책과 자강책을 절묘하게 배합한 광해군의 외교 전략은, 한반도 중립통일의 교본으로 삼을만하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을 능수능란하게 견인ㆍ견제하지 않으면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떠한 기미책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한가? 주변 강대국을 잘 다독거려 '온다고 하면 막지 않고, 간다고 하면 잡지 않는' 기미 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주변 강대국의 군대중 가장 막강한 미군이 온다고 하면 막지 않고, 간다고 하면(철수한다고 하면) 잡지 않는 정책을 구사할 수 없나? 이미 미군이 한국 땅에 들어와 있으므로 더 이상 오라고 할 필요는 없고, 주한 미군이 철수한다면 막지 않을 묘안은 없을까? 묘안을 강구하기는커녕 주한미군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철수하거나 한국군에 전시 작전지휘권을 넘겨준다는데 "제발 그러지 말고 마르고 닳도록 한국에 주둔해달라고 읍소하는 것'은 광해군의 기미책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떠오르는 신흥국인 후금에 대한 광해군의 기미책, 지는 해인 명나라의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거부한 광해군의 외교 정책에서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21세기에 떠오르는 중국에 대하여 기미 정책을 구사하는 한편, 지는 해인 미국(미국을 지는 해로 평가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의 '이이제이 정책(남북한을 이이제이하여 미국의 국익을 챙기는 정책)'을 거부할 수 있을까? 남한의 친미 지향적인 정치집단이 미국의 이이제이 정책을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하지 못한다면 봉건시대의 임금인 광해군에 범접하지 못하는 정치집단이 아닐까?

광해군의 외교능력을 과장한다는 비판(고윤수, 43)이 있지만, 강대국(당시의 명나라)의 이이제이를 거부한 광해군의 용단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1618년(광해군 10) 후금은 명[명나라]에 대해 '일곱 가지 원한(七大根)'을 내세워 선전포고를 하면서 만주의 요충인 푸순(撫順)을 점령했다. 명의 '지배'를 정면으로 거부한 후금의 '도전'에 맞서 명도 전면전을 선언했다. 명은 각지에서 후금 정벌에 필요한 병력과 물자를 징발하는 한편, 조선에 대해서도 2만 명의 병력을 원병으로 보내라고 강요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었다. 광해군은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명의 요구를 거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명[명나라]의 병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으라고 촉구하는가 하면 계속 거부할 경우 '먼저 조선을 손봐 줄 수도 있다'며 협박했다. 이에 더하여 광해군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조정의 신료들이었다. 대북파 이이첨을 포함한 대다수가 화이론과 명에 대한 '보은론'을 내세워 원병을 파견하라고 채근했다. 내외의 압력에 밀려 광해군은 결국 원병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한명기, 2002, 74)

명나라의 제국주의 정책의 기본인 이이제이 전략을 거부하는 것은, 정권을 내놓고 도전해야할만큼 위험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이 해냈다. 제국의 이이제이 정책을 거부하는 행위에 '반(反)제국주의'라는 낙인이 찍히므로,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반역행위이다. 반역행위이기 때문에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재조지은'을 광해군에 촉구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한국에 적용하는 가운데 광해군과 같이 중립외교에 뛰어난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가정을 해보자. 그러한 대통령이 21세기의 제국인 미국의 이이제이 전략(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핵심이 이이제이에 있다)을 거부할 경우 장관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 미국의 '재조지은(한국전쟁때 미군을 파병하여 나라를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라고 대통령을 향해 아우성치지 않을까?

<인용 자료>
* 고윤수「광해군대 조선의 요동정책과 조선군 포로」『東方學志』제123집(2004.1)
* 이은숙「광해군의 실리외교」『陸士 논문집』제57집 제2권(2001.6)
* 한명기『광해군』(서울, 역사비평사, 2000)
* 한명기「광해군-외교의 '빛'과 내정의 '그림자'」『한국사 시민강좌』제31집(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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