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사건은 간단한 사건은 아니다. 자치와 중앙정부의 행정이 충돌하고 있고, 생태와 토건이 충돌하고, 관광위주의 지역개발과 정주권 위주의 지역발전이라는 또 다른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넓게 보면 자원 경쟁으로부터 시작되는 신냉전 시대의 동북아 관계를 포함한 큰 흐름이 충돌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와서 보면 애초에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나, 크루즈항과 같은 편익 요소의 과대 계상에 의한 비용 편익분석상의 문제 혹은 환경영향평가상의 미비점 같은 것들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가깝다.
기왕 하기로 한 것이니 그냥 하는 게 낫지 않느냐, 이 논리 역시 군인들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졌던 절차적 하자와 부딪히면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맞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방전략과 관련해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 문제점이다.
첫째는, 과연 대양해군 전략이 옳은가? 이건 자주개발율과 같이, 우리가 자금을 대서 석유 시추부터 참여하자는 지난 정권부터의 소위 '자연외교'의 헛점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위기가 생기면, 자주개발이 아니라 그 뭐라도 안정성을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외국에 쓰는 그런 돈으로 국내에서의 대체에너지에 대한 기술개발 및 보급 혹은 에너지 절약 기술에 먼저 투자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 그런 게 불행히도 지난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 자원외교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마이너'들의 의견이다. 지금 해군이 주장하는 것은, 남지나해로부터 이어지는 석유 수송로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자원 빈약국으로서 한국이 가지는 지정학적 운명이기는 한데, 과연 그게 우리가 해군을 강화한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냐, 그런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 하나 만든다고 우리가 석유 수송로를 지킬 수는 없다. 노무현 시절에는 자원외교와 연결시켜서 대양 해군에 대한 국가적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양 해군의 전략은 이미 국가적으로 수정된 상황 아닌가? 그게 제주 해군기지가 원점에서 다시 검토될 기술적 필요의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미국 주도의 MD 체계에 과연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편입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건 국가적으로는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 중국을 가상적으로 하는 MD 체계의 한 축으로 제주도가 자리잡게 되는 문제가 사실 군에서 이토록 제주 해군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아직도 있다. '평화의 섬 제주'라는 구호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와이와 비교를 하는데, MD 체계에서 사실상 최첨단의 접경지역에 해당하는 제주와, 상대적으로 안정지역에 들어가 있는 하와이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좀 아닐 듯 싶다. 정말로 군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이 우리의 원유 수송로를 봉쇄하는 상황이 온다면, 제주는 대만과 중국 사이의 양안관계보다 훨씬 더 뜨거운 대치 지역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자고 하는 해군 기지는, 이미 포화상태라는 다른 지역의 군항에 한 개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한중일 관계에 MD 체계와 함께 전혀 다른 국면으로의 전환을 만드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게 "이미 하기로 한 사업이니까 그냥 하자",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큰 결정이라서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다.
국방부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국방의 중요성은, 이미 잠실 롯데건설이 빌딩 하나 올린다고 하면서 서울공항과 관련된 수많은 양보를 하면서 이미 설득력을 잃은 것 아닌가? 서울을 지키는 전투기들이 기존에 확보한 안전장치를, 일개 건설업자의 민원이라고 순순히 들어주었던 국방부를 생각해보자. 강정 마을 주민들은 가난해서 '넘보고', 건설사의 민원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지금 우리를 설득하겠다는 그 말이 그렇게 선한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국가적으로는 큰 결정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대양 해군의 전략도 바뀌었고, MD 체계 속에서 제주항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의견으로 알고 있다. 지금 왜 이 시점에 왜 꼭 강정 마을에 해군항을 설치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아직도 불투명하다. 만약 해군이 제주 군항을 기점으로 다시 대양 해군 전략으로 복귀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은근슬쩍 '기왕에'를 내세우며 MD 기지로 제주도를 바꾸려고 한다면, 군은 지금 국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 두 가지가 국방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제 제주도 자체의 발전 전략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제주도를 둘러싼 큰 힘은 기본적으로는 현지인들을 위한 발전 전략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이미 50~60% 정도의 땅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지인을 위한 발전 전략을 세울 것인가, 이 두 개의 힘이 지난 5~6년간 제주도에서는 충돌하고 있었다. 똑 같은 문제는, 평창에서도 벌어졌고, 개발 호재가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알기 쉽게 얘기하면, 골프장과 도로를 놓고 개발을 해서 땅값을 올리고 외지인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줄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살기에 편하고 경제적 이익이 조금이라도 발생하게 할 것인가, 그런 문제이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외지인들이 대개 이긴다. 외지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개발이 현지의 대토지 소유자, 소위 '토호'들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 지자체 의원, 심지어는 지역에 발언권을 가진 교수들까지, 이렇게 동맹체를 만들면서 현지 주민들은 번번히 이용당하거나 싸움에서 졌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서울로 올라간 돈을 움직이는 곳을 우리는 '테헤란로의 기획 부동산업체'라고 부르기도 하고, 타워 팰리스를 축으로 하는 도곡동 권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강정마을. ⓒ프레시안(최형락) |
여기까지는 투기꾼들이 이겼는데, 제주 올레를 상징축으로 하는 또 다른 힘들이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솔직히 개발을 제한하는 유네스코 자연경관 지정 같은 게, 땅투기꾼인 외지인들이 뭐가 반갑겠는가? 여전히 제주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외지인 세력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정주권의 패러다임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 7대 경관이라고 하는 목소리와, 군사항구라도 유치해서 어차피 여기는 평화의 섬도 아니고, 생태의 섬도 아니고, 그냥 골프장으로 가득 찬 환락의 관광도시일 뿐이다, 그런 두 개의 힘이 팽팽하게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광역단체 차원에서 보면, 그래도 이 정도 버틴 것은 제주 밖에는 없다.
해군이 지금 잘 모르는 것은, 제주 올레 이후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제주에서는 자치와 정주권 그리고 생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돈 주고, 뭔가 더 주겠다고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개발 논리가 대개 이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골프장 개발할 때, 제주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보고 들어와서 대충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 정권 때, 비선을 통한 청와대의 부탁으로 제주도의 골프장에 대한 보고서의 초고를 만들어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7년째 제주도를 나의 연구 지역으로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데, 최근처럼 외지인에 대해서 현지인의 실질적인 목소리가 높아진 적이 없었다.
군이나 경찰은 강정마을의 한 줌 주민들과 종북파 나부랭이 일부가 난장을 치는 것이라고 보고 있을지 모르지만, 제주도민의 은근한 지지와 격려 없이 그 작은 촌락에서 이렇게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길게 버티고 있다고 ,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닌가? 제주도 분위기가 다르고, UNESCO 자연경관 지정과 제주 올레 이후로 현지인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지금까지 국책사업이라고 밀어붙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외지인과 토호들이 결탁해서 금방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전북도 그렇고, 대구도 그렇고, 강원도 그렇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년간, 예외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제주는 좀 다르다. 현지인들의 지지 없이 외부인사들이 무슨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은근한 지지 없이는, 희망버스 같은 행사는 아예 불가능하다.
자, 이 글은 지금 내가 누구 보라고 쓰고 있는 것일까? 국방부도 아니고, 해군도 아니다. 그들은 직업 군인인데다가 직업 공무원인 셈이라서, 이미 결정된 방침을 세우거나 다시 생각해보는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건 나도 이해한다. 그렇다면 청와대? 내가 지켜본 바로는, 현 정부의 청와대도 그렇게 유연하지는 않다. 나름대로는 정치공학에 고수들이라고 스스로 평할 지는 모르지만, 현장에서 그리고 주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사정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렇게 밝은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딱 찍어서 말한다면,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다음의 시대 정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몇몇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현 상태로 힘과 힘이 맞붙으면, 이 사건은 '제2의 4.3항쟁'으로 불릴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정책적인 결정이 문제나 결정의 합리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방의 지형학적 조건은 예로부터 원래 어려운 문제였다.
지금처럼 힘과 힘이 맞붙어서는, 이건 행정 특히 군대 행정에 정치 절차가 농락당하는 일이 된다. 이미 주민들과 전국적 시민들은 하나의 진형을 형성하고 있고, 군대의 힘으로 평화를 지키자는 강성 군사주의자들이 또 하나의 진형을 형성하고 있다. 어느 편이 이기든, 현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기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상처 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와중에 진짜 패배자는 정치 과정이 된다. 여든 야든, 정치가 사람들 앞에 서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지, 민간인들이 경찰 앞에 노출되고 정치인들은 뒤로 빠지는 상황, 그건 바로 정치의 실패가 된다. 앞에서는 엄청 싸우는 듯하지만, 당신들끼리는 여의도에서 밥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언제든지 만나지 않는가? 사람들은 국회에서 몸싸움 좀 그만하라고 하지만, 그게 아직 우리의 수준이라면 차라리 정치인들끼리 몸싸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직접 몸싸움하거나 경찰 혹은 군인들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군인들도 이 문제 못 풀고, 행정 관료들의 모임은 정부도 못 푼다. 군대가 하는 일에, 그거 아니라고 제동을 걸 만한 다른 부처가 지금은 정부 내에 없지 않은가?
전례는 새만금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사회적 격론이 벌어질 때, 총리실로 문제를 넘겼다. 물론 결국은 토건업자들과 토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새만금은 특별볍까지 만들면서 결국 개발의 방향으로 갔다. 지금처럼 힘과 힘이 격돌할 때, 잠시 쉬어가면서 별도의 논의 절차를 만들고, 그래도 상황을 조금씩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도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서는,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민도 하나의 의견은 아니다. 다만 전과 달리, 두 힘의 지금은 팽팽하다는 정도이다. 이 상황에서 잠시 쉬면서 조금 더 머리들을 모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 것, 그게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나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 반대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냐 찬성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생겨날 충돌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줄여나가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같이 논의할 수 있느냐, 그게 더 중요할 것 같다. 진짜로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호소한다. 일단은 세워놓고,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열어봅시다라고….
현 상태로 두 힘이 그냥 충돌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의 정치 발전이다. 이런 사회적 논의를 정치 과정으로 집어넣는 것, 그게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모습 아닌가? 지금 한국의 정치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그걸 안 하니까, 정치의 영역이 종교의 영역으로 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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