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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학교·기업·국회, 대처법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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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학교·기업·국회, 대처법은 하나?

[기자의 눈] 가해자는 "다시 돌아올 친구들"?

"네가 모를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느냐? 우리는 망했다." (고려대 성추행 가해자)
"밤길 조심해라."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작업 관리자)

성폭력 사건이 밖으로 알려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처음 한 말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고려대 의대 남학생 3명은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하고 나체 동영상을 찍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작업 관리자는 여성 노동자에게 작업 도중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팔과 어깨를 주무르는 성추행을 가하고 동침을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다. (☞관련 기사 : "성희롱도 억울한데, 돌아온 건 해고")

돌아온 것은 2차 가해

돌아온 것은 도리어 2차 가해였다. 가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문제가 있었다. 우리 아들은 잘못 없다"면서 "이런 게 알려지면 가해자도 끝난 거지만 피해자도 이제 끝난 것"이라고 피해자를 협박했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는 평소 이기적이다, 아니다', '피해자는 평소 사생활이 문란했다, 아니다', '피해자는 싸이코패스다, 아니다' 등의 문항이 적힌 설문조사를 학교에서 돌렸다. 가해자 측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사귀는 관계였다든가 잠자리를 한다"는 소문을 퍼트렸다고 알려졌다.

현대차에서도 2차 가해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한 현대차 관리자는 "우리는 힘들어서 농담하고 지낸 건데 저게 무슨 성희롱이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리자는 복직을 요구하며 1인 시위하는 피해자에게 "아줌마는 성희롱 당하고 쪽팔리지도 않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이러느냐, 정문 앞 인도도 현대 땅이니 나가라"고 했다. 끌어내려는 경비원들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고려대와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대처했나

이선미 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활동가는 '고려대 사건'을 두고 "학교 당국의 대처법이나 징계 처리 과정이 퇴보했다"며 "대처가 미온적일수록 가해자들은 압박을 받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고려대학교 측이 사건에 즉각 대처했다면 '추가 가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실제로 고려대 측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해자는 부모들이 의사, 변호사 등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성적도 상위권"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졸업을 앞둔 의학도라 처벌 수위를 정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입장을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도록 고려대는 아직도 '징계 수위'를 정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징계 과정은 비공개다.

문제가 된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서는 피해자를 징계하는 인사위원회 자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징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결국 해당 회사는 피해자를 '풍기 문란죄'로 해고하고 폐업신고를 냈다. 피해자를 제외하고 가해자를 비롯한 나머지 노동자 전원은 새로운 업체로 고용됐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바지사장은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허락 없이는 사람 하나도 다른 자리로 못 옮긴다"며 "현대차의 비호 없이는 폐업 신고 조치가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고려대 측이 100일이 되는 동안 사건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동안 피해자는 가해 학생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피해자의 언니는 "가해자들이 뒤에서 낄낄거리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동생이 학교를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라디오에 직접 출연해 악성 루머를 해명하는 데 나서야 했다. 현대차 해고 여성 노동자는 현대차에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여성가족부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으로) 학교나 직장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대부분 당국은 피해자와 소통을 한다"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 주위에 가해자의 접근을 금지하는 등의 신속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규정은 직장과 학교에 있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하는지는 당국의 '의지 문제'라는 것이다.

가해자는 '다시 돌아올 친구들?'

고려대와 현대차가 대처에 미온적인 데는 "우리는 힘들어서 농담하고 지낸 건데 저게 무슨 성희롱이냐(현대차)"고 생각하거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성적도 상위권(고려대)"인 전도유망한 학생들이 한 번의 실수로 '가혹한 처벌'을 받기에는 아깝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고려대 피해자는 "가해학생 부모들이 교수들을 찾아가서 설문지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해서 교수들도 그쪽 주장을 믿고 있다"며 "교수가 강의실에서 '가해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징계위원회가 이런 교수들로 이뤄졌다면 결말은 뻔하다. 가해자가 직접 징계위원회 위원장으로 나섰던 현대차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다시 돌아올 친구'는 국회에도 있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고 발언한 강용석 의원의 제명안이 부결됐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말을 보면,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학교, 직장, 국회의 대처법은 하나다.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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