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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꼴통'은 이제 그만! 지혜로운 어르신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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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꼴통'은 이제 그만! 지혜로운 어르신 정치로

[의제27 '시선'] 한국 보수의 비극과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의 지배

언제부터인가 남북대립이나 한미관계 등 안보문제가 돌출할 때마다 시위의 최선봉에 나서는 노인 단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자유수호국민연합을 필두로 다양한 참전보훈단체들이 그들이다. 60세 이상의 노인들로서 때로는 군복을 입고, 때로는 단체 모자와 플랜카드를 들고, 안보와 이념의 이슈가 있는 곳에 가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과거 80년대 학생운동에 견줄 정도로 용감무쌍하게 불법시위를 감행하기도 하고, 자식같은 전경들을 윽박지르기도 한다.
많은 국민들은 불과 반세기 전에 참혹한 전쟁을 직접 치룬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분들의 애국심과 반공의식을 이해하기에 그다지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이다. 최근 필자가 만난 박정희 시대의 원로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연평도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울분과 격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치학 사전에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제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노인 정치 또는 노인의 지배란 의미로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브레즈네프 집권 후반기부터 고르바초프 집권 이전까지 70세 이상의 원로들이 국가최고위원회를 독점하였던 소련이 대표적인 노인정치의 사례로 꼽힌다.
로마 시대의 원로원은 나름 경험과 지혜를 갖춘 집단으로서 평회나 귀족원과의 나름 균형 역할을 수행하였다면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에는 폐쇄적이고 경직화된 사고와 행동의 마비 등 소통 장애를 강조하는 경멸적 개념이다.
▲ 지난달 30일 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갖고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인정치의 선진국: 어르신 정치(senior politics)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보수화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보수의 표준적 정의는 전통, 종교, 법, 규범 등 현존하는 질서가 이성적이며 지혜로운 것이라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대신 혁명, 개혁, 변화 등은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과도하게 숭상하면서 불확실성이 가져올 재앙을 깨닫지 못하는 파괴적 신념이다. 그래서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경멸하는 것은 이교도가 아니라 무종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보수적인 노인 정치의 모든 형태가 시대착오적 제론토크라시로 전락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보다 일반적인 형태는 이념 전사로서 거리의 시위에 동원되기보다는 노인들의 집단 권익, 예를 들면 노인수당이나 연금, 일자리, 여가에 대한 주장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노인 정치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1958년 비영리(nonprofit), 비정파(nonpartisan) 기구로 설립된 AARP는 노인연금 및 조세문제, 건강보험보장 등을 이슈화하면서 급속히 확대되었고, 회원가입에 따라 주어지는 다양한 유무형의 특혜 때문에 1년에 16달러의 회비를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10년 현재 회원이 4000만 명에 이른다. 노인이면 다 보수정당을 지지한다거나 전쟁을 포함한 호전적 외교정책을 옹호할 것이라는 인식은 우리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AARP는 전문로비스트를 고용해 정책을 관철시키며 노인 권익을 옹호하는 정당과 후보자를 고르도록 '유권자 교육'을 하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각 정당과 정치인들의 노인 정책을 올려 의사결정을 돕고 있다.

1988년 창립된 영국의 런던노인포럼(GLF)은 런던 지방정부나 기타 유관단체와 협상을 통해 노인 정책을 수립하는 데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 전국노인클럽연합회는 클럽 수만 13만 개에 전국적으로 885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일본 최대 노인단체이다. 이 단체 간부의 상당수가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인 정치와 어르신 정치의 차이

골방의 노인 정치와 어르신 정치를 구분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잣대는 노인들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풍부한 여가의 활용 방식에 있다. 선진국 노인들은 남는 시간을 거의 절대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취미를 발전시킬 평생학습에 사용한다. 지난 주 발표된 교과부의 자료(『2010 평생교육통계조사』)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들의 성인들이 평생학습 참여율은 55%이며, 미국은 51%에 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비율은 17.2%에 그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중요한 좌표 중 하나가 노인의 자원봉사 참여율이다.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의 40% 정도가, 호주의 경우 20% 정도가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반면 한국노인은 미국의 8분의 1수준인 5.3%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09). 문제는 이렇듯 자원봉사참여율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지난 10년 간 참여율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데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경향을 떠나 노인 정치와 어르신 정치는 격이 다르다. 어르신 정치는 자신들의 집단 권익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며, 자신들의 능력 및 취미 개발에 열중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가장 값진 사회적 노동인 자원봉사활동에 열심이다. 반면 골방의 노인 정치는 자신들과 다른 상대에게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기 일쑤이며, 합리적 토론보다는 위력적 시위를, 자발적 참여보다는 조직적 동원에 휩쓸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어르신 정치가 사회적 존경과 대접을 받는다면 노인 정치는 단절과 불통의 상징이 된다.

노인 정치에서 어르신 정치로의 변화가 정치발전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전쟁과 분단 등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후진적인 노인 정책과 노인복지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이분들이 참여하는 시위를 본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겠지만 그분들의 행색은 대체로 남루하다. 평생학습도 자원봉사도 참여자의 대부분은 아직은 중산층 이상의 노인들이다. 험난한 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거쳤지만 그분들을 맞은 것은 윤택한 노년도, 사회적 존경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노인복지의 사각지대 속에서 가족은 물론 어떤 정당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전락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386도, 민주정권도 노인세대를 회유불가능한 적지의 이교도로 포기하였을 때 이들의 상실감을 가장 잘 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바로 <조선일보>와 조갑제 씨로 상징되는 극우적 보수 세력이었다. 그들은 상실의 시대를 체험하고 있던 노인세대에게 정치적 목소리와 안보 지킴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였다.

한국에서 노인 정치는 이제 제론토크러시를 넘어 어르신 정치로 진화해야 한다. 그 이유는 60세 이상의 노인이 유권자의 19.4%를 차지하지만 투표자의 24.7%나 차지한다는 표 계산 때문이 아니다. 전쟁불사론을 시도때도 없이 외치는 과도한 이념적 주장과 구호에 집착하는 일방통행의 제론토크러시는 노인들 자신의 처우도 사회적 존경도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집권 한나라당이 이들에게 포획당해 끝내 합리적 보수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독일의 메르켈이나 영국의 캐머론 당수와 같은 출현은 물론 정치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 우리의 노인 정책은 경로당 난방비와 식료품 지원과 같은 시혜적 차원을 못 벗어나고 있다. 북유럽 국가에서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였던 전간기(between war) 세대들은 1960년대 복지국가의 전성기를 개척하였고, 1980년대 이후 반전반핵 운동을 이끌었던 멋진 노인들이 되었다. 한국의 노인들이 촛불을 들고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 반대(Anti-War)'를 외치는 광경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분들에게 적절한 일자리와 학습, 여가를 즐길 기회를 제공하라. '보편적 복지'나 친환경무상급식이 정말 필요한 대상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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