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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공생발전', 망가진 江의 주검 위에서…"

[우석훈 칼럼] "생태계를 지워버린 생태계 은유, 무섭다"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라는 개념이 나왔고, 이례적으로 그 옆에 'ecosystemic development'라는 말도 병기표기 되었다. 직역하면 생태계적 발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어로 집을 의미하는 eco는 경제학과 생태학의 공동의 어근이다. 거시경제의 장기적 방향으로 70년대 초반 UN에서 주로 사용하던 생태적 발전(eco-development)라는 개념이 있고, 1987년 부른트란트 보고서에서 공식 제기된 후, 이후에 표준적으로 사용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생태와 관련된 은유를 포함한 거시경제에 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경제계가 지역 생태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구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는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한없이 복잡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최소한 지역 생태계와 자연 생태계를 박살내면서까지 우리가 경제계를 키운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위협받거나 혹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용을 열어보면 '토건 + 원자력', 이 두 가지가 핵심이 되어버린 3년 전, 역시 8.15 축사에서 제시된 적이 있다. 보통은 이명박 정부식의 생태 은유를 '그린 워시', 녹색 이미지를 통한 본질 흐르기 정도로 본다. 새만금 방조제 위에 현대건설이 붙여놓았던 '환경친화적 제방'이라는 표지판 같은 게 대표적인 그린 워시이다.

경제와 생태의 관계가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은유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넓게 올라가면 물리학과 생물학, 어느 쪽을 기본 모델로 할 것인가라는 알프레드 마샬 시대의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종다양성에서 끌어온 문화다양성 같은 게 대표적인 생태학적 은유이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일반균형'만으로 경제를 보지 않고, 시스템의 변화나 진화 혹은 복잡계 같은 시스템 이론들을 경제학에 차용하면서 생태계 모델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도 점점 유행이 되어가는 게 요즘의 흐름이기는 하다.

▲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뉴시스
아마도 대통령의 8.15 축사에서 나온 '공생발전'은 기본적으로 이런 생태학적 은유에 기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학자들은 '적자생존'이라는 틀에서 경쟁을 이해했고, 이 때 '적자'를 최적자(the fittest)' 아니라 최강자(the strongest) 혹은 '최대자(the biggest)'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술의 특징에 따라서 작은 기업 혹은 가족기업이 더 유리할 수도 있고, 전문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기술혁신에 더 유리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특정 지역에 유사한 업체들이 같이 모여있는 것이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며서 개별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존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

21세기에 경제학자들이 더 많은 생태계에 대한 은유를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 그것 자체가 일종의 정의이거나 선이라서가 아니라 지난 경제 근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폐해에 대해서 반대의 제도를 만드는 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독할 정도의 신방임주의가 결국 기업 그 중에서도 다국적기업에게만 유리한 경제 제도들을 만들어놓았는데, 결국 어떻게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낼 것인 것, 그런 고민 속에서 생태계에 대한 은유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만든 사람들의 이념과 경제적 여건이 진짜로 그렇게 국민경제를 일종의 생태계로 보고, 지역경제를 그걸 구성하는 작은 지역생태계로 이해하는 그런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기지는 않는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면서 지역의 영세기업들에게 불공정한 하청 관행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 제도적 정비 등 각종 변화가 필요하다. 당장 같은 8.15 축사에서 나왔던 한미 FTA 체결 촉구 같은 것이 내부 모순을 일으킨다. 다른 통상체계나 다른 FTA와 달리, 한미 FTA는 정부의 이런 능동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다국적 기업은 이익을 보고, 지역기업이나 농업 그리고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손해를 보는 게 바로 미국식 FTA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 두 개는 이념적으로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자, 이런 공식적인 얘기 말고, 생태계에 대한 해석을 경제학에 도입하는 걸로 학위도 받고 밥도 먹고 살았던 내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뭔가 그런 방향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다른 건 뭘라도 생태에 관해서는 현 정권이 "콩으로 매주를 쑨다"고 해도 정말 믿겨지지 않는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가장 전향적으로 생각하면 공정 사회의 경우에 비유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식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강부자' 내각으로 통칭되는 그 구성에서나, 검사와 경찰로 상징되는 제도 집행에서나, 정의로운 정부는 아니었고, 공정한 정부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라는 가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후에 공부원 임용절차나 청문회 기준 강화 등, 아무 일도 안 벌어졌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 사건 정도가 생겨난 거의 전부가 아닌가?

공생발전의 경우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경제의 생태적 전환', 이런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자영업자를 위한 유통 질서의 변화 같은 것도 안 벌어질 것이다. 기껏해야 위원회 몇 개 생기고, 정부 직제의 소폭 개편 정도 있을 것이지만, 현실에서 뭔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하나 실질적인 변화를 희망한다면, 이번에는 유명환 장관 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예를 들면 이마트 피자 사건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공정위가 나름대로의 기준을 제시해서, 해법을 제시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좋은 생태계'로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들의 삶에서는 '공공성'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가시적인 조치가 조금이라도 따라붙지 않는다면, 정의라고 말하고는 집회에 대한 경찰력을 강화시키면서 '정의 사회 구현'이라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기왕에 새로운 개념을 내었는데, 한나라당 사람들처럼 기쁘게 박수쳐 주지 못하는 내 심정이 편치는 않다. 그러나 대통령 입에서 환경이나 생태와 같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진짜로 머리털이 쭈볏하고 오금이 떨리는 현상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걸 어쩌랴? 아마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과는 공생하고 싶지 않고,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더 강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공생도 좋은 말이고, 생태계, 전부 좋은 말이다. 따져보면 결국은 외국과의 전쟁을 만들어내었던 미국 극우파들이 앞에 내세우는 '영광과 번영(glory and prosper)!', 그 자체로는 별 문제 없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는 국가의 영광, 시장을 통한 번영, 그렇게 군산복합체를 앞세운 전쟁광들의 구호가 되어버렸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지켜보지 못한 지금, 내 머리 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이 든다. 4대강 사업 등, 토건주의자들이 자연과 불화하면서 어찌 인간과의 공생을 얘기하는가? 공생이라는 가치가 생태계와 유리되어 인간들 사이의 인간중심주의가 된다면, 4대강 주변을 개발하는 친수법 같은 게 된다. 망가져버린 하천 생태계의 주검 위에 중앙 건설사들과 지방 건설사들이, 이제는 같이 좀 나눠먹자, 그게 친수법이고, 대통령이 얘기하는 공존발전의 전형적 사례 아닌가? 자연 생태계를 지워버린 생태계에 대한 은유, 내가 느끼는 공포감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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