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방송 공공성'이다" ☞<1>임화수, 허문도, 그리고 최시중의 시대 ☞<2>"MB 이후, 높은 분들의 'KBS 전화질' 막으려면…" ☞<3>"김여진에 빗장 건 MBC, 무슨 망신 당하려고…" |
방송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케이블 판매분과 수출을 제외하면 수신료와 광고수입, 두 가지로 구성된다. 광고 규모는 2008년 이후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 전망되며 또한 TV 광고에 많은 영향을 받는 중산층들의 가처분 소득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의 광고 지출 자체가 정체하거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지금, 4개씩이나 방송사가 추가로 영업을 할만한 시장 잠재력 자체가 지금은 부족하다.
경천동지할 정도의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신규 진출하는 종편 사업자들이 3~4년 이후에 자본잠식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앙일보의 경우야 어차피 삼성에서 홍보비로 사용하고 있던 돈을 돌려서 종편으로 쓸 거니까, 그 돈이 그 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언론사들의 경우는 내 짧은 지식으로는 수익모델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물론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회사의 사활을 건 경쟁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언론사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수치가 높은 보수 언론들이 이 앞에 있으니까, 일반 기업처럼 그냥 망하면 된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다. 지금 KBS의 시청료 인상에 대해서 일반 시청자들이 쉽게 납득을 못하는 것은, 어차피 총 크기가 결정된 광고 시장에서 KBS가 빠지고 자연스럽게 그만큼을 종편에서 가지고 가게 해주겠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미 조선일보 종편인 CSTV의 개국 드라마에 특급스타 황정민이 계약을 했고, 한국 최고의 인기작가인 김수현도 계약을 했다. 이렇게 초기에 문제작인 <모래시계>를 띄우면서 새로운 방송 시장에 안착했던 SBS의 사례가 있다. 과연 4개의 종편이 SBS 모델을 따라 독자적으로 생존 모델을 찾아낼 것인가?
▲ 김수현 작가. ⓒ뉴시스 |
안티조선 운동을 했거나 조중동 불매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는 아쉬운 대목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연기자들과 연출자 혹은 기획자들이 종편 방송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방송이 삶이고, 유일한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적 이념에 맞지 않는 신문의 구독을 거부하듯이, 그렇게 경제적 삶을 대할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한나라당의 날치기에 대해서 명확한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겠지만, 절차상 이미 지나버린 일이라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내년 4월에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건 사업에 관한 일이라서, 일반 정치 절차처럼 '없던 일'로 그렇게 간단하게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비가역성'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미 이 건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 배우 황정민 씨. ⓒ뉴시스 |
언론과 방송은 같을 것 같지만, 돈이 움직이는 방식만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 자체가 다르다. 언론으로서 가지고 있던 공공성에 대한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그냥 방송을 만들게 되면 사회와 부딪히고 충돌하는 게 훨씬 심해진다. 그냥 기업 홍보용 방송 정도로 생각해서 적당히 한다고 생각했다가는 엄청난 사회적 역풍을 맞게 된다. 방송이라는 게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마 어떤 국민은 조중동 방송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보수 신문만 보던 사람 중에서는 하루 종일 조중동 방송만 틀어놓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티조선이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시청거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그 어느 편이든, 초기 3년 동안 한국의 방송 환경은 거대한 풍랑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고, 막대한 자본금을 쏟아붓게 될 언론 환경 역시 격동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특정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나 기고를 거부한다거나 혹은 구독을 거부하는것은 매우 불행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종편 방송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종편에 대한 논의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가지 영역에만 치우친 감이 있다. '좌파적출'이라는 용어로 시작된 보수파들의 '방송 장악', 이게 종편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 아닌가? 반면에 신문은 어려우니까 방송으로 수익을 내보겠다 혹은 시청을 거부해서 방송이 얼마나 수익내기 어려운 사업인지 보여주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또 한 쪽의 흐름은 경제에 관한 논의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방송과 사회가 갖는 관계 즉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새로 개국을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공영방송 등 기존이 방송국이 만들어놓은 노하우를 사람을 빼가면서 챙기는 것에만 지금 종편이 신경 쓸 것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새로운 여건 속에서 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 시민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공성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그 비전과 다짐 같은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그런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공성이라는 방송의 또 다른 차원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우리 앞에 내어놓을 필요가 있다.
기왕에 하는 거,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한 얘기가 너무 없다. 당장 내년 4월이면 벌써 국회 여건이 바뀔 확률이 많다. 한나라당과 밀실에서 합의하고 법안 강행하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운 순간이 오게 될 수가 있다. 방송의 공공성에 대해서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국민들과 폭넓게 논의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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