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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유로화, 과연 지킬 필요가 있을까?"

[해외시각] "유럽 통합과 통화동맹을 혼동하지 말아야"

유로존이 흔들리고 있다. 이탈리아 등 유로존의 취약 국가들이 경제 위기로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급기야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12일 포르투갈에 이어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낮췄다. 유로존 주변국들의 국채 가격 하락에 따라 유로화도 급락했다.

최근 그리스가 긴축재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낙관적인 전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투기세력이 유로존의 붕괴를 전제로 시세 차익을 얻으려고 개입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로국 주변국들의 심각한 실업과 재정감축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복지와 평등의 가치를 다른 지역보다 먼저 추구하던 유럽이기 때문에 우려가 더 깊다.

한때 정치경제적 '통합'을 위해 노력해왔던 유럽 국가들이 금융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양극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마크 와이스브로(Mark Weisbrot)는 11일 칼럼에서 경제적 충격의 강도보다는 유로존 안에 잉태되어 있던 우파적 목적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는 유로존이 회원국에게 경기 침체에 맞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보다는 재정 감축과 복지 삭감 등의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강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중이 우파의 경제정책의 작동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유럽은 미국보다 더 비정한 얼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통합을 위한 기본 바탕으로서의 유로존이 아닌, 우파적 가치를 관철하기 위한 유로존을 보면서 그는 "유로화를 지킬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 포르투갈 국민들이 9일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스위스 프랑화 대비 유로화의 가치가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수익률은 기록적으로 급등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국가들의 모임]의 이같은 위기는, 이탈리아로 문제가 전염되고 있다는 두려움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2조 달러의 경제 규모에 2조4500억 달러의 국가부채를 지고 있는 이탈리아는 망하기엔 덩치가 너무 크고, 유럽 금융 당국들은 근심을 하고 있다.

현재까진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이 지불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높아지리란 우려는 적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고, 두려움과 자기충족적 예언에 따른 [우울한] 전망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탈리아보다 경제 규모가 6분의 1에 불과한 그리스의 부채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더 큰 위기에 과연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로존에서 취약한 경제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은 이미 극심한 실업(각각 16%, 12%, 14%, 21%의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고 이같은 고통은 몇 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모든 비극의 초점은 유로화를 지켜내는 것이기에, 과연 유로화가 지켜줄 가치가 있는지 질문을 던질 만하다. 또한 일을 하고 사는 대다수 유럽인들의 관점 즉, 진보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질문을 던져볼 가치가 있다.

17개 국가가 가입한 화폐동맹[유로존]은 유럽의 프로젝트를 위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럽의 프로젝트란 유럽의 연대, 인권과 사회통합을 위한 공통의 기준 확립, 우익 민족주의의 저지 등의 가치 있는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경제적·정치적 통합도 그 과정의 저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유럽 프로젝트를 위해 화폐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화폐동맹과 유럽연합(EU) 그 자체를 혼동한 것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 스웨덴, 영국은 EU의 회원국이지만 유로존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유로화 없이 유럽 프로젝트가 진전하지 못한다거나 EU가 번영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유럽 프로젝트와 EU의 번영을 원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유로존은 EU와는 달리 명백히 우파적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유로존이 출범한 초기엔 그런 문제점이 불분명했다면 지금은 명백해졌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와 G7에 운명을 맡겼던 중저위 소득 국가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형벌'을 통해 명백해지는 사실이다. 유로존의 취약한 국가들은 [경제위기가 덮친] 2009년 대부분의 국가들이 재정적·통화정책적 부양책을 통해 침체 탈출을 시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저소득층의 고통과 시위 등으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방향이다.

상처는 후벼 파지고 있다. 은행들이 납세자의 세금으로 긴급 구제를 받는 사이 그리스가 민영화를, 스페인이 '노동시장 개혁'[노동 유연화]을 추진하면서 소득과 부의 분배는 후퇴하고, 복지국가는 축소되고 있다. 이는 모두 우파의 아젠다다. 또한 우파들은 위기를 이용해 우파적 정치 변화를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유럽 통화동맹의 우파 본색은 처음부터 제도화되어왔다. 공공 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60%로 제한하고 연간 재정 적자를 GDP의 3%로 맞추는 규칙들은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경기침체와 고실업을 겪고 있는 시기에 불필요한 규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고용과 관한 모든 사항을 절대 손대지 못하게 하고 오직 물가만을 관리하도록 한 규칙 또한 엉터리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는 보수적이지만 법의 의해 적어도 물가에 신경 쓰는 것 만큼 고용 상황에도 신경을 쓰도록 되어 있다.

Fed는 미국 경제를 강타한 8조 달러의 주택 거품을 알아채는데는 실패했지만 2조 달러 이상의 통화 확대 정책을 펴면서 경기침체와 더딘 경기 회복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ECB를 운영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취약국들의 공황 수준의 고실업율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이후 금리를 올려오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유로존이 예산 정책에서의 많은 조율이 수반된 재정연합(fiscal union)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파적 재정정책은 우리가 지금 보다시피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 필자를 포함한 다른 경제학자들은 유로존 회원국들의 생산성이 천처만별인 상황이 통화동맹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설사 이런 격차를 극복한다 해도, 그것이 우파적인 계획에 따른 노력이라면 헛수고가 될 것이다.

유로존 등장에 앞서 있었던 유럽의 경제 통합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북미지역의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이 수십만 멕시코 농민이 쫒겨나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임금 하락, 제조업 고용 축소로 이어지는 등 마치 추락으로 가는 경쟁을 하는 것과 달리, EU는 낮은 수준의 경제를 끌어올리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려고 어느 정도 노력했다. 그러나 통화동맹으로 가면서는 유럽 당국들이 냉혹했다는 것이 입증되어 왔다.

유럽의 연대를 위해 유로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독일이나 네덜란드, 핀란드 같은 국가의 납세자들이 그리스 구제에 저항하는 이유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치부하는 데에서도 한몫을 한다. 그들의 저항이 일부 매체가 부채질한 민족주의적 편견에서 나온다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부실 대출을 안고 있는 유럽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부담을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EU 당국은 결코 그리스를 "돕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을 "돕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못하다. 파괴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후진적이다' '고립주의자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유사하다.

많은 유럽 좌파들은 유로존의 제도와 당국, 특히 거시경제 정책의 우파적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몰이해는 전 세계의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라는 더 보편적인 문제의 일부며, 이는 우파적인 중앙은행이 때로는 좌파 정부 밑에서도 파괴적인 정책을 시행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적 견제가 부족한 가운데 나타나는 이러한 몰이해는 유럽에 미국보다 더 강한 노동조합이 있고 보다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가능케하는 제도적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미국보다 더 우파적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설명해 준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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