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한의 독재체제와 시장의 상관관계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한의 독재체제와 시장의 상관관계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시장 활성화 핵심은 '지대 실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14호(2011년 7·8월호)를 전재합니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14호는 '북한 경제,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5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7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14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1990년대 중후반에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붕괴상태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이후 북한의 체제전환과 관련해서 북한의 시장 활성화 문제는 적지 않은 관심을 끌어왔고, 주된 연구대상이 되었다.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장 활성화의 체제이행론적 함의는 2000년 이후 북한정권이 취한 몇 가지 시장 관련 경제정책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2002년에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경제적 요소를 제한적으로 경제관리에 도입한 북한정권은 2005년 후반에 '식량공급 정상화'를 시도했다. 2009년 11월 말에는 '화폐교환'이라는 매우 급진적인 반시장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2005년의 국가 식량공급제가 채 두 달도 지속되지 못한 것처럼, 시장 폐쇄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외화의 국가 환수에 의해 국가 식량공급제와 상업유통망의 복원을 꾀했던 화폐개혁도 주민생활의 마비와 급속한 민심 이반에 자극받아 세 달이 지나지 않아 그 효과가 소멸되었다.

이런 일련의 반시장적 경제정책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서, 북한정권은 여전히 시장을 억제하려고 하지만, 인민경제부문의 공동화와 맞물리면서 성장해 온 시장세력을 국가가 제어하기 힘든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등 서방세계의 경제·금융제재로 인해 외화 수입이 크게 감소한 북한이 황금평과 라선 경제특구의 북·중 공동개발에 착수함에 따라 좀더 적극적인 경제개방정책을 추진할 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의 시장 지배적인 '비공식경제'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북한 체제변화의 내적 추동력으로서 시장세력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면서 사회 내에 경제적 계층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경제적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구 수입에 따라 상·중·하층으로 도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개별가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예컨대 하층 가구의 경우 하루벌이를 위해 시장에 참가한다면, 중간층 가구는 생계유지와 더불어 세간살이 구입자금을 벌기 위해 시장에 참가한다. 또 상층가구는 개인재산 증식을 위해 수천, 수만 달러를 외화벌이에 투자하는 식으로 시장에 참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시장을 필요로 하고, 또 이들에 의해 시장이 확대된다는 점만을 가지고 이들을 시장세력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장의 확대나 국가의 시장 통제력의 약화 그 자체보다 시장의 확대과정에서 북한의 자본주의 이행에 필요한 재산권의 다변화나 계급관계의 형성 가능성을 이들의 시장 활동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 북한의 시장세력의 형성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서 북한의 시장 활성화를 특징짓는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시장화를 추동하는 주된 힘은 중앙당 38, 39호실과 주요 부서들, 제2경제, 그리고 중앙당의 특수부서들, 호위사령부, 무력부의 국 단위 조직들, 보위부, 보안부 등 '특수단위'들에 의한 수출입 외화벌이사업의 전방위적 전개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독재자의 '혁명자금' 상납 재원과 자체 조직운영비 조달을 위해 '특수단위'들을 비롯한 일부 특권적 국가기관들은 외화벌이 수출원천 장악과정에서 적지 않게 시장적 관계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이 기관들은 외화벌이 대치물자로 수입하는 중국산 식량이나 생필물자의 일부를 시장에 불법적으로 유통시킨다.

이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 관련부서들이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밑에는 본인이 사업자금을 투자해서 이 부서들의 외화벌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부서들의 보호막 아래 불법적으로 자기 개인 외화벌이사업을 병행하여 개인재산을 증식하는 큰 돈주(외화[동원능력] 보유자)들이 있다.

이 돈주들은 몇 단계를 거쳐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 놓여 있는 시장의 공업품이나 식량 소매장사, 또는 기업소의 부업선 선장 같은 외화벌이 원천 생산자까지 연결되어 있다. 국가 외화벌이를 정점으로 한 이런 시장의 물자 및 화폐 유통체계 내에서 기업소 8.3제품의 시장 판매나 가내 개인사업자(자영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종사자)의 시장 참가는 주변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 가지는 이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는 독재자에 의한 지대 할당과 재분배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시장은 수출입을 통한 이런 지대 실현을 매개해 주는 경제적 공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칭 '와크'라고 하는, 이 국가기관들에게 독재자가 각기 특정적으로 '비준'해 준 일종의 수출입 취급물자 면허제도를 이용해서 이들이 일부 취급물자에 대해 일종의 수출입 대행 수수료 장사를 하는 데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예컨대 아연괴 수출 와크가 없는 기업소에서 생산된 아연 정광이 아연괴로 만들어져서 와크를 가지고 있는 제2경제의 국 단위 부서를 통해 수출되거나, 중고 컴퓨터 수입 와크를 독점하고 있는 보위부가 중고 컴퓨터의 국내 수입총판 역할을 하면서 외화 수입을 얻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국가기관들에게 지대 수취의 형태로 특혜적 외화벌이사업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이 기관들의 외화벌이관련 간부들이나 상급 간부층의 부패가 시장 활성화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외화 뇌물은 이 기관들의 외화벌이 지대 실현에 기생하는 시장 상품 유통 피라미드 안에 산재해 있는 여러 단계의 시장 참가자들의 이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북한의 시장 활성화와 관련된 이 두 가지 특징에 비춰볼 때 좀더 유의미한 시장 활성화의 주체는 생계유지를 위해 시장에 참가하는 대다수 중·하층 가구들보다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에 연루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화 과정에서 극빈층과 하층 일부 가구들을 제외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특히 내구성 소비재의 보유를 놓고 볼 때 화폐개혁 이전까지는 전반적으로 나아진 면이 있고, 따라서 시장이 제공해 주는 기회를 중·하층 가구들도 차등적으로 공유했다. 이 점에서 이 가구들도 시장 활성화의 주체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비사검열그루빠 활동이나 시장 단속을 통한 시장 참가자들에 대한 억압적 통제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국가가 외화벌이 액상과제나 장세 부과 이외에도 각종 세외 부담이나 보호세 명목으로 시장 참가자들을 지속적으로 수탈해 가는 구조 속에서 중·하층 가구의 물적 기반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다.

따라서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 일꾼들과 이들의 비공식적 후견인에 해당하는 상급 간부층을 좀더 유의미한 시장세력으로 일단 간주할 수 있다. 개별가구들이 보유한 개인재산을 강제적인 방식으로 국가로 이전하려고 한 화폐개혁이 내화 경제권에 속해 있는 중·하층 가구의 급속한 하강이동과 경제적 몰락을 가져온 데 반해, 외화 경제권에 속해 있는 상층 가구나 상급 간부층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던 데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장 활성화를 주도하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에 연루된 이들이 화폐개혁에 의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국가의 외화 강제환수조치가 상층 가구를 압박하는 데 유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개혁의 애초 목적은 후계자의 권력 기반 구축을 위한 외화자금 조성을 위해 후계 주도세력이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기존의 외화벌이 지대 분배관계를 재조정하려고 한 것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 북한의 지배체제와 연관된 화폐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시장을 주도하며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특정 세력에게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는 의미와 같다. ⓒ연합뉴스

만일 그럴 경우, 이 기관들의 외화벌이 일꾼들과 이들의 외화벌이 운영자금은 이들을 후견하는 간부들에 의해 보호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관들의 후견 간부들과 외화벌이 일꾼의 이런 관계에서 시장세력 형성의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간부의 입장에서는 자기 기관의 외화벌이 사업을 원활하게 보장하고, 자기 개인재산 증식에 긴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대리인을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정 투자액 이상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는 외화벌이 일꾼도 그렇지만 특히 후견 간부는 자기에게 들어오는 외화를 대체로 축장할 뿐이지 투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유효했던 2000년대 중반에 지배인의 기업관리의 자율적 권한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조건에서 국가로부터 전기와 자재를 공급받는 소규모 경공업 공장에, 이 공장을 지도감독하는 행정간부가 유령 중국회사 명의로 소규모 설비투자를 한 사례는 시중에 축장되어 있는 외화의 생산적 투자에로의 전환이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에 관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이런 점과 연계시켜 보더라도 북한에서 시장 활성화를 주도하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가 단순히 시장 확대가 아닌 자본주의 이행을 추동할 수 있는 체제 내적 시장세력 형성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광물과 석탄 같은 채굴자원과 약재나 수산물 같은 채취자원의 수출과, 식량이나 경공업 제품 등의 대치물자 수입이라는 단선적인 수출입 경로에 다단계로 의존하면서 진행되는 시장의 활성화는 국내의 다른 산업부문들과의 전후방 연계효과가 거의 없다.

이는 외화벌이에 의해 주도되는 시장의 활성화의 핵심이 정권안보와 결합된 체제안보를 위해 복무하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지대 실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반시장적인 정책적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는 국가와 이 국가를 쥐고 있는 독재자말고는, 대다수 가구가 일상생활의 재생산을 위해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과 그에 따른 시장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장경제부문'의 공식적 도입이나 자본주의 이행으로 연결시키는 데 실질적으로 힘이 되줄 만한 사회집단이나 엘리트 분파의 형성이 지연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아마도 시중 외화 집중밀도가 가장 높은 평양의 가입자 수가 단연 가장 많겠지만, 외화로 공기계를 구입하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손전화 가입자 수가 올해 초에 55만 명을 상회했다는 보도는 외화벌이 지대추구와 간부 부패의 연계문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북한판 시장 활성화의 실체를 희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시작된 황금평과 라선 경제특구의 북·중 공동개발도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기존 외화벌이사업의 지대 할당 및 재배분 관계의 조정을 통한 새로운 판짜기로 진행될 여지가 적지 않다. 특히 화폐개혁을 통해 이루지 못한 후계체제 안정화 명분을 내세운 외화자금 조성을 위해 후계 주도세력들이 개별 분파적 이해관계 실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두 지역은 북한 다른 지역과는 지리적으로 차단된 비지(飛地)경제로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국내 시장 활성화에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연계가 이루어지더라도 현 독재자의 지배체제가 유지되는 한 시장세력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줄 수 있는 함의는 제한적일 것이다.

* 원제: 북한의 시장 활성화와 시장세력 형성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