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는 5일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기륭전자 구(舊)사옥에서 투쟁 보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복직하기로 합의된 기륭전자 조합원 10명을 비롯해 기륭 사태에 함께했던 시민 100여 명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농성장에는 기타 반주에 노래가 한창이었고, 다른 한쪽에는 목판화가 이윤엽 씨가 새긴 판화를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농성장 뒤편으로는 철거를 위해 투입된 포클레인이 땅을 파다 멈춘 상태로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기륭 투쟁은 "반쪽짜리 승리"
▲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프레시안(김윤나영) |
김 분회장은 "지난 6년 동안 살면서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만약 투쟁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났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투쟁하면서 나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남을 생각하고 함께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만큼 복직하지 못하는 다른 노동자들도 눈에 밟힌다고 했다.
"조인식 하던 날 많이 울었습니다. 여기 있는 조합원 중에 몇 분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복직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나눴던 조합원들이 앞에 앉아계십니다. 이분들께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이 마음을 갚으려면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엄마, 그럼 정규직은 언제까지 고용되는 거야?"
뒤풀이 자리에서는 막걸리가 오고 갔다. "연대해준 학생들에게 가장 고맙고 미안하다"는 박행란 조합원이 대학생들과 술자리에 함께했다.
"학생들을 생각하면 짠하죠. 비슷한 나이 또래 자식이 있어서 그런지 더 그러네요. 엄마 아빠들이 힘을 모아서 싸워놨다면 학생들이 피 터지게 얻어맞고 경찰서 갈 일도 없었을 텐데…. 자식세대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짐을 나눠줘서 속상해요."
박 조합원은 "이제는 집에 있는 딸에게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줬다"면서도 "투쟁 안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넉살 좋은 학생들이 "투쟁이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술잔을 부딪쳤다.
"딸들이 투쟁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고등학교 2학년짜리 딸이 엄마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집안일도 알아서 척척 다 해주고…. '사장이 진짜 나쁘다'며 엄마를 위로해줬어요. 제 딸은 지금도 이런 말을 해요. 엄마보고 제발 TV에 좀 그만 나오고 경찰서에만 가지 말래.
조인식이 끝나고 딸에게 합의 내용을 얘기해줬어요. 말은 안 해도 딸이 흐뭇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딸이 이러더라고요. 엄마 그럼 정규직 된 거야? 그런데 정규직은 언제까지 하는(고용되는) 거야?"
▲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한 조합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다시 돌아가서 싸우라고 하면 "글쎄요…."
조합원들에게 투쟁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했다. 유흥희 조합원은 "6년이나 걸렸던 문제가 10분 만에 타결됐다"며 허탈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유 조합원은 "성과는 조금밖에 안 났지만 그 조금을 위해 이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하나 싶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고통을 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조합원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서 이렇게 이 앞에서 말할 자격이 있나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언니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면서도 6년이나 전개된 지난한 투쟁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2008년 교섭이 결렬되고 94일 단식에 접어들면서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포기했어요. 2년 뒤 합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끝까지 하면 되는구나. 시간이 걸릴 뿐이지 되는구나' 싶었죠. 6년 동안 언니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어요. 그런데 다시 2008년으로 돌아가 투쟁하라고 하면 글쎄요. 그게 얼마나 힘들고 춥고 배고프고 덥고 뜨거운지 알기 때문에…. 분회장님이 기륭 문제가 영영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3년은 같이 가자는 약속을 받아내려는 것을 보고 식겁했죠."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투쟁을 시작했다"던 박 조합원은 "회사 부사장과 용역이 너무 못되게 굴었다"며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용역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질질 끌고 가기도 했어요. 입에 담지 못할 욕도 했고요. 그래도 나는 풀자, 나는 당했지만 내가 마음을 풀면 그들이 반성할 것 아닌가. 나는 두 발 뻗고 잘 수 있지만 그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사측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었더니 미안한지 가만히 있더라고요. 자식 가진 부모로서 자기들도 부끄럽겠지. 나중에 교섭할 때 만나서 '회장님 잘 해봐요'라고 말하니 그냥 웃더라고요."
"기륭전자 사태 6년까지 끌게 한 파견법 철폐해야"
단식투쟁을 하느라 20일간 곡기를 끊었던 오석순 조합원은 "아직은 작은 승리에 불과하다"며 "너무 많은 노동자가 파견 문제를 해결 못 해서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법적인 문제"라며 "큰 힘을 모아서 다 함께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 없는, 일하면서 보람을 만드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도 참석했다. 이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절망의 상징이었던 기륭 투쟁이 희망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6년을 지나 지금 와서 보니 법 하나 잘 만들었으면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사용자가 사용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교섭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며 파견법 철폐와 노동법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기륭 노동자와 함께한 사람들 기륭전자가 6년 동안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 묵묵히 함께해준 사람들이 있다. 기륭 투쟁을 빛낸 사람들을 소개한다. 황철우 기륭전자 공동대책위원회 의장은 "지역시민으로서 6년 동안 말없이 함께해준" 이기문 씨를 추천했다. "조합원들이 부탁할 때마다 음식 준비, 운전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조합원들이 아플 때 위로하고 도와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씨는 구로동의 평범한 식당 주인이다. 박용진 추모사업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기륭전자 투쟁을 알게 됐다. 바른언론지키기시민모임의 희망 씨는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이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시청 광장에서 우연히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깃발을 발견했다. 그와 기륭전자 사이의 첫 인연이다. 그는 투쟁현장이면 전국 어디든 다 간다. 작년에는 쌍용자동차에 갔다. 기자가 "왜 비정규직 문제에 꽂혔는지" 물으니 "자신이 비정규직 스턴트맨으로 일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송경동 시인도 기륭을 빛낸 사람들의 반열에 올랐다. 송 시인은 사측의 농성장 철거 시도에 맞서 포클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얼마 전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는 "구급차를 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며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전투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떤 눈물과 아픔이 있어도 (연대하려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기륭 투쟁을 계기로 민주노총 명예조합원이 됐다. |
▲ 기륭전자 투쟁에 연대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촛불. ⓒ프레시안(김윤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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