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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7000만원짜리에게 '밤일'을 허하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번지수 헛짚은 최중경 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의 파업을 두고 "1인당 연봉이 7000만원이 넘는 회사의 불법파업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유성기업의 노조에서 주장하는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는 완성차 업계에서도 하지 못하고 있고, 부품업계도 한 회사만 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최 장관의 이런 말들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진실은 이렇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의 파업은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 합법파업이다. 사측이 동원한 사람이 노조원들에게 차량을 돌진시키는 테러를 가해 피해자가 10명 넘게 생겼으나, 경찰은 사건을 유야무야 덮으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처사로 사태는 날로 악화되어왔다.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는 완성차 업계에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며, 부품업계 한 회사에서 도입해도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에 아무런 해가 없다. 그리고 유성기업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업계에서도 조속히 도입해야 하며, 자동차산업 전반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최중경 장관 연봉은 7000만원보다 적나?

무엇보다 1인당 연봉 7000만원과 파업은 아무 상관이 없다. 연봉 7000만원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불명확한 것이려니와 7000만원이 아니라 8000만원이라 해도 사용자가 자기주장만 고집하면서 합리적인 해결을 거부한다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파업권은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최 장관은 국민세금에서 연봉을 7000만원 넘게 받고, 국민세금으로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국민세금으로 월급보다 많은 업무추진비를 쓰고, 국민세금으로 밤 10시에서 아침 6시 사이의 상당 시간은 일하지 않고 편하게 잠잘 수 있다.

그런 그가 자기 노동으로 일해 월급을 받고, 자기가 번 돈으로 차 몰고 다니고, 업무추진비는커녕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급여가 계산되고, 격주로 밤 10시에서 아침 6시 사이에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비아냥거리는 모습이 국민의 충복(忠僕)이어야 할 장관으로서의 처신에 어울리는 일인지 자문(自問)해야 할 것이다.

7000만원 운운하는 최 장관의 잘못짚은 번지수와 달리 이번 파업의 핵심은 밤일, 즉 야간노동이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르면, 야간노동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근로"를 말한다. 유성기업 직원들은 주야 맞교대로 한주씩 돌아가며 주간조(오전 8시 30분~오후 7시 30분)와 야간조(오후 10시~오전 8시)로 일해 왔다.

야간노동은 반사회적 노동

서구에서 반사회적 노동(unsocial work)으로 일컬어지는 야간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 작업의 집중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려 산업재해를 일으키고, 불량률을 높이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서로 다른 생활주기로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해당 노동자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야간노동을 규제하고 단축하며, 가능할 경우 철폐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국내외 의학지에 따르면, 야간에 이뤄지는 교대근무는 두통을 초래하고, 단기적으로 피로, 스트레스, 집중력 상실, 결근율 증가, 성생활의 퇴조를 가져온다. 심장병 증가, 소화불량, 생리불순, 유산도 자주 보고된다. 자연적인 생체리듬 교란과 출산율 저하는 기본이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2007년 12월 자료에서 야간 교대근무가 암과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역학조사 결과는 장기간 밤에 일한 여성노동자의 유방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노동자보다 높음을 보여주었다. 이 조사는 주로 간호사와 항공기 승무원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러한 결과는 밤에 빛에 노출되어서 일어난 생체리듬 교란 때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수면활동 패턴을 바꾸고,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며, 종양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를 교란시킨다. 다양한 교대근무 형태 가운데 야간노동이 생체리듬 체계를 가장 많이 파괴시킨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가 간호사와 비행기 승무원의 유방암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이제는 다른 직업군에서의 잠재적 위험과 기타 암과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연구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

캘리포니아의과대학(UCSF) 신경과 전문의 루이스 프타슥(Louis Ptacek)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24시간마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진화해왔다. 우리 내부의 (생체)시계는 우리가 잠자고 깨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세포분열과 관련되어 있고, 우리의 면역체계를 규율한다. 우리가 내부의 (생체)시계에 대항한다면, 합병증이 생기게 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정당한 요구, '야간노동을 없애라'

야간노동의 치명적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유성기업 노조원들의 소속 조직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수년 전부터 주간 연속 2교대제, 쉽게 말해 야간노동 없애기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2009년 유성기업 노사는 단체교섭에서 2011년 1월 1일부터 주간 연속 2교대(오전 8시~오후4시, 오후4시~12시 근무)와 월급제 도입에 관해 의견 접근을 보았다. 밤 12시에서 아침 8시까지의 야간노동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기아차, GM 등 완성차 노사도 이루지 못한 쾌거로 노사정 모두에서 칭찬받고 장려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주의 주머니에 들어갈 이윤에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자본과 정권의 협공으로 야간노동을 없애기로 한 유성기업의 합의는 경찰력으로 깔아뭉개졌다.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 절차에서 합법적이었고, 그 요구에서 정당하다. 그리고 유성기업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간노동 철폐가 가져올 여러 가지 이익(생산성 향상, 불량률 감소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귀 기울지 않고, 연봉 7000만원 운운하는 최중경 장관의 대응은 그 발상에서 졸렬하기 그지없거니와 산업구조나 노사관계에 대한 정책적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하여 파업을 경찰력으로 깔아뭉개고 노동자들에게 야간노동을 강요하면서 입으로는 저출산 대책, 복지사회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물론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밤일도 있다. 그래 좋다. 노동자들에게 밤일을 허하라. 공장이나 사무실에서가 아닌 집에서의 밤일을.

* 이 글을 쓰는 동안 유성기업 파업 현장에 경찰력이 투입되었다. 단체교섭에서 노사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국가권력이 자본의 편을 일방적으로 드는 일이 반복된다면, 노동자들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국가와 자본에 굴종해 노예처럼 사느냐, 아니면 국가와 자본에 대항해 전쟁을 치르느냐. 계급 전쟁은 국제 노사관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고, 국제노동기구(ILO)가 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 19일 새벽 유성기업이 고용한 용역 직원이 몰던 대포차량에 치인 유성기업 노동조합 조합원이 쓰러져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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