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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산층은 날씬한 몸매, 흑인 가난뱅이는 뚱뚱,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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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산층은 날씬한 몸매, 흑인 가난뱅이는 뚱뚱, 우리는?"

[우석훈 칼럼] "대학에 '과일방'을 만들자"

노무현 시절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2만불 경제'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요약하면, 2만불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으니, 그 때까지만 참고 버티자는 것이다. 그 얘기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되었다. "엎드려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 그렇게 군대 간 것처럼 참고 버티라는 게, 노무현 시대를 지나 현 정부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2만불까지만 참고 버티자는 정부 운영 방침이 되었다.

자, 2만불이 되었는데, 지켜진 약속은 없다. 그 대신 우리에게 신빈곤 현상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제 발전 초기에 존재하던 보편적 빈곤 대신에, 일정한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경제 구조적인 문제로 문제를 요즘은 '신빈곤 현상'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서점가에서 사회과학 서가 크기 만한 신빈곤 서가가 별도로 등장한 것은 벌써 몇 년째 되었다. 우리나라 교보문고에도 최근 빈곤이 별도로 분류가 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현상을 '양극화'라고 주로 부른다. 원래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등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라서 소득 빈곤화 현상을 지칭하기에는 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이 용어가 지금의 신빈곤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문제점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격차 사회'라고 부른다. 두 나라 사이의 차이점은, 한국에서 양극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었지만, 일본은 격차 사회라는 용어가 퍼지면서 자민당 장기 집권이 깨지고 일본 민주당 정권이 생겨났다. 묘한 차이점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임은 물론, 이게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박복한 대통령을 만나서 국민들이 고생하는 것, 이게 안타까울 뿐이다. 선진국 경제 내에서 벌어지는 신빈곤 현상은, 지금까지는 신자유주의를 강화시켜왔던 영미계열, 유럽 경제의 약한 고리였던 라틴계열,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뚜렷한 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진짜로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번영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손을 빌린 경제 선진화 모델이라는, 노무현 중후반 이후에 추진했던 그 방향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지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의 박복한 대통령이 결국 5년간의 통치를 통해서 남겨줄 것은, 엄청나게 극심해진 정부 채무와 지자체 채무, 그리고 부실해진 금융경제와 복원해야 할 수많은 시멘트 덩어리들,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다음 정권이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현 정부가 남겨주고 간 빚 덩어리 속에서 "도저히 해볼 대책이 없다"고 국채 상환하고, 긴축 재정하느라고 허리가 휠게 분명하다.

조심스러운 예상이지만, 지금이라도 경제 방어정책을 쓰지 않고 대통령과 형님 마음대로 하는 경제 운영이라면, 결국 대통령이 탈당하고 대선을 관리하는 거국 내각을 꾸리게 되었던 지난 날의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 전국을 거대한 청계천으로 만들겠다는 토건 사업이, 국민 내부에서 신빈곤 현상이 일반화되는 이 시점에 과연 옳은 것인지,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생태 파괴와 같은 고상하고 장기적인 목표와는 별도로, 토건에 의한 재정정책이 과연 지금과 같이 중장비가 투입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승수효과가 발생할 것인가, 이런 건 좀 꼼꼼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점점 더 식물 정권으로 바뀌어 갈 것이고, 대통령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 외에는 새로운 것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아마 그들도 뭔가 하는 척만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1위를 달리는 박근혜 대표처럼, 당분간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은 대통령의 실정을 노리지, 진짜로 뭔가 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내년 총선 때까지, 정부 측이든, 야당 측이든, 적극적으로 반빈곤 프로그램을 제시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정치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풀 방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는 비겁하다. 박복한 대통령은 용감하고, 박근혜는 비겁하고, 손학규도 비겁하다. 내가 뭘 잘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 보다는 대통령이 뭘 못해서, 자신이 어부지리를 보겠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

자, 상황은 그런데, 지금의 신빈곤 현상을 그냥 방치해두어도 좋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신빈곤 현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게 시급할지, 논리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신빈곤 현상은 경제의 약한 고리를 먼저 타격한다. 미국의 경우는 흑인 등 유색인종이었다. 우리의 경우는 20대, 여성 그리고 지방거주민들이 그 약한 고리를 형성할 것이라는 게 내 가설이다. 여기에 보조 축으로 학력과 같은 것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10여년쯤 전에 미국에서 유색인종과 정크푸드 문제가 한참 논의된 적이 있었다. 이 문제가 미국처럼 그냥 방치되면, 빈곤형 비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WASP라고 부르는 백인 중산층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비만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도 벌써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형할인마트에서 대표적인 정크 푸드이며 고비만 식품인 피자와 치킨을 대폭 할인해서 팔기 시작했다. 할인마트의 포화와 신빈곤 현상이 결합되어서 이런 기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 <슈퍼 사이즈 미> 포스터
모건 스퍼록 감독이 직접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어떻게 육체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다큐 <슈퍼 사이즈 미>를 한 번 참고해서 보시면 좋겠다. 누군들 유기농 식단이 좋은 줄 모르고, 친환경 음식을 자기 자식에게 먹이고 싶지 않은 부모가 누가 있겠나?

정부가 자기 국민들을 버리면, 미국처럼 중산층 혹은 부유층은 극단적인 웰빙으로 가고, 유색인종 등 신빈곤 계층은 정크푸드로 연명하게 되는 지독할 정도의 식품의 하이엔드 현상이 벌어진다. 다 나라 망할 때 생겨나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가고 있다.

이런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상징적인 식품이 바로 과일이다. 정부가 신빈곤 현상을 그냥 방치하면, 과일을 먹을 수 없는 국민들이 생겨난다. 유색인종과 과일, 이건 오래된 논의 중의 하나이다. 그 현상이 한국에도 이미 벌어졌다.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복잡한 영양학 논의는 뒤로 미루자. 어쨌든 우리는 누구나 과일을 먹는 게 건강에 좋고, 특히 발달기의 어린이나 청소년일수록 더 많은 과일을 먹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 학교 급식이라는 게 도입되면서, 일단은 유소년기에 과일을 먹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는 갖추어져 있다. 과일을 복지의 척도로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과일 복지로부터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단 과일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집에 나와 있는 20대, 즉 대학생과 알바 등, 이런 사람들은 과일을 먹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 용돈이나 시간당 시급 생각해보면, 사과와 같은 과일을 선뜻 집어 들기가 어렵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요즘 대학생이나 20대 강연을 하면서 최근에 과일을 언제 먹었는지 물어본다. 실제 지난 한 달 내에 과일을 먹은 적이 없다고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강연 끝나고 나오는 길에, 사실은 자신이 한 달 동안 한 번도 과일을 못 먹었다고 얘기하는 대학생들은 종종 된다. 눈물이 찔끔 나는 장면이다.

많은 유럽 국가의 경우는, 50만 원 미만의 연간 등록금을 내면서도 대학 식단에 50% 정도의 국가 보조금이 붙는다. 우리는 일부 대학에서 학생생협의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지만, 그것도 대학재단이 수익성을 높일려고 자꾸 외부 케이터링 업체에 위탁하는 형편이다. 대학의 학교 식당에서 과일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다. 교수 식당에는 과일이 나오는 곳이 많은데, 학생 식당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그렇다고 지금 대학교에 학생들 과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보조금 주자는 얘기했다가는, 오세훈 시장 같은 인사들이 나서서 나라 망칠 포퓰리즘이라고 난리를 칠 거다. 20대 초반이면 아직 발육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 어떻게 과일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공동체나 국가가 살펴야 하는데, 우리의 공동체는 이미 깨진지 오래이고, 국가는 지금 삽질 하느라고 아주 바쁘시다.

이 문제는 여당이나 야당 혹은 정부대책 따질 것 없이, 대학에서 조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1000만 원 이상씩 등록금을 받고 있는 대학에서, 과일방 하나 운영해주면 될 것 같다. 테이블 몇 개 놓고 과일 쌓아놓고, 친구들끼리 와서 깎아먹고 갈 수 있게 해주는데, 무슨 엄청난 돈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하루에 사과 한 알이라도 먹을 수 있게, 과일방 하나 운영하는 건, 대학 당국에 그렇게 큰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 대학생은 그렇다치고, 시급 받는 편의점 알바 등 대학에서 과일을 먹을 수 없는 청년들의 경우는 어떻게 할까? 현재로서는 동네라고 부르든 마을이라고 부르든, 편의점 등 알바들이 있는 지역이 공동체로서의 최소한의 감성을 회복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편의점에 가면서 과일 하나, 귤 하나, 알바들에게 건네줄 최소한의 따뜻함을 아직 우리 사회가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이 넉넉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우리가 겪어나가야 할 이 미증유의 사태, 신빈곤 앞에서 국가든 공동체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럽기는 할 것이다. 아마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단기간에 큰 변화가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개인들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기도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더 가난해진다고 하더라도, 아직 발육이 채 끝나지 않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과일도 먹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우리가 가난한 것은 아니고, 또 사람 사는 사회가 그렇게 박해져도 안될 것 같다. 과일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회, 그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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