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프레시안>이 "취업 선호도 1위 삼성전자, 막상 입사해 일 해보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기사 읽기)를 놓고, 많은 독자들이 댓글을 남겼다. 이들 댓글을 읽다 앞서 트위터에서 본 글이 다시 생각났다.
독자들이 제기한 '어떤 회사도 시간외 근무수당을 다 주면서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는 말, '그래도 평균보다는 연봉이 훨씬 높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불만을 품어서야 되겠냐'는 말. 동감하지 않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인지로 봐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삼성전자는 해마다 만 명 이상의 신규채용을 하지만 전체 직원 수는 그에 비례해 불어나지 않는다. 뽑는 만큼 나가는 직원도 많기 때문이다. 삼성엔 노동조합이 없는 탓에, 직원이 느끼는 불만을 회사 안에서 제기할 길이 없다. 여기엔 강도 높은 노동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생산직뿐아니라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무직·연구직도 포함된다. 길게 보면, 삼성 입장에서도 손해다. 인재를 키워 회사의 주춧돌로 삼지 못하고, 이직자들에게 좋은 '스펙'인 삼성 재직 경력만 양산하는 꼴이 될 뿐이다. '인재제일'을 기업이념으로 삼는 삼성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많은 이들이 '왜 하필이면 삼성이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삼성이기에' 문제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시간외 수당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경제 규모의 4분의 1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초거대 기업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보다 경영상황이 열악한 기업에 이를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현실에 맞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자고 나설 수도 있다. 마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논란을 두고, 회사 측이 현재의 파견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법 개정을 주장하는 것처럼.
굳이 삼성의 초과근무수당 변칙 지급을 문제 삼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누누이 지적돼 왔던 삼성의 '치외법권적' 특권이 총수 일가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삼성의 성공은 현장 노동자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법치의 예외'로 통하는 삼성의 현실은 노동법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올해 초 삼성전자 탕정기숙사에서 뛰어내려 숨진 엔지니어 김주현 씨의 유족들도 故 김 씨의 자살 배경엔 하루 최대 15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이 있었다며 취업규칙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거부당했다. 수년 간 삼성 노동자들의 근무실태와 탄압에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어 왔지만 삼성도, 정부 당국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외부의 도움도 없으면 노동자들은 굴복하거나 퇴사하는 선택만 남는다. 아니면 故 김 씨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삼성맨'들은 각박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의 달인'이라 불릴 만도 하다. 그러나 달인의 화려한 손놀림 뒤에 근골격계 질환이 잠재된 것처럼, 삼성맨들에게도 억울한 사연이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조가 없는 탓에, 문제 제기를 하려면 개인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어겼다는 정황까지 있다면, 대중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삼성이 직원들에게 시간외 수당을 적법하게 지급하라는 호소, 법에 규정된 근로시간을 지키라는 요구에 공감할 수 없다면, 아마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할 게다.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기 눈 앞의 밥그릇만 쳐다보는, 또는 쳐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말이다. 법과 원칙, 그리고 인권이 그저 '배 부른 소리'쯤으로 취급되는 현실에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최고의 이익을 거둔 기업이 직원들에게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현실은, 삼성을 넘어 나라 전체의 현실이 될 수 있다.
덧붙임: 독자 댓글 중 상당수가 '프레시안은 시간외 수당을 적법하게 지급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담았다. 프레시안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접수된 시간외 근무에 통상임금의 1.5배를 적용해 매월 수당을 지급한다. 많은 독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는 없다.
▲ 故 김주현 씨의 아버지 김명복 씨가 삼성 본관 앞에서 벌인 시위 장면. 故 김 씨의 자살은 이익을 많이는 내는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프레시안(김봉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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