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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은 왜 삼성만 비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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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은 왜 삼성만 비판합니까?"

['3S'로 풀어본 2010 한국경제] 두 번째 키워드 '소셜(Social)'

- '3S'로 풀어본 2010 한국경제

첫 번째 키워드 : '스마트(Smart)'
'룸살롱 비즈니스'의 나라, '아이폰 혁명'은 사치일 뿐
삼성 그룹 홍보담당자와 <프레시안> 경제팀 기자들이 만난 자리. 삼성 관계자가 말했다.
"<프레시안>은 왜 삼성만 비판합니까?"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옆에 있던 후배 기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삼성 관계자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가 하려던 말은 "<프레시안>이 다른 재벌에 비해 유독 삼성에 더 비판적이다"라는 내용이었을 게다. 그런데 LG나 SK 등이 아니라 민주노총 이야기를 꺼내니 당황스러웠을 밖에. 어쩌면 그는 '삼성이 민주노총과 같은 '급'이냐. 삼성은 노는 물이 다르다'라는 불만을 품었을 수도 있다.

삼성, '재계' 넘어 '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하지만 이런 불만이라면, 이제 온당치 않다. 삼성과 민주노총, 혹은 한국노총 사이에서 '서열'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다른 범주에 있다는 말은 슬슬 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문인이나 예술가, 과학자들마저도 이젠 삼성 문제를 자주 입에 올린다. 삼성이 어느 순간, '재계'라는 틀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계기는 단순하다. 삼성이 '법(法)'을 어겼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는 한에서라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누구나 알고 있듯 '법'은 사회적 약속이다. 배고파서 빵을 훔친 사람이 안타깝지만, 처벌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지켜야하는 약속이니까.

하지만 삼성은 약속을 깨고서도 벌을 받지 않았다. 재계 사정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이 분노한 이유다. 여기에 겹쳐 삼성이 정·관·법조·언론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쌓고, 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한국 사회를 움직여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삼성 문제는 산업의 영역을 떠나 사회적 의제가 됐다.

그리고 '사회' 안에는 정치인과 고위 관료, 법조인처럼 힘 센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노동조합도 있고, 시민단체도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평범한 시민이 있다. 예전에는 기업이 굳이 이런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를 들을 일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누구나 자신의 글과 사진을 무차별 대중에게 퍼뜨릴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다. 여기에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면서 이런 흐름에 힘이 실렸다. 트위터 유행이 대표적이다.

확대되는 '법치의 예외'…"그들은 왜 약속을 깨도 벌을 안 받나"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시스
올해 초 나온 <삼성을 생각한다>가 15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였다. 출판사가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트위터 이용자들은 출간 소식을 빠르게 알렸다. '삼성'이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키워드가 된 것은 상당 부분 이들의 힘이었다.

'산업'이라는 틀로 삼성을 바라보면, 반도체 사업의 높은 수익률, 직원을 유난히 치밀하게 관리하는 기업 문화 등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사회'라는 틀로 보면 다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책 출간 등을 계기로 삼성 문제에 눈을 뜬 이들은 삼성이 반도체나 휴대폰을 얼마나 많이 파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삼성이 아무리 많은 광고비를 써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관심은, '그들은 왜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가'에 쏠려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삼성 광고를 아무리 훑어도 이런 관심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광고 없이도 잘 팔릴 수 있었던 한 이유다.

'사회'라는 틀로 봤을 때 도드라졌던 모습, 즉 '법치의 예외'라는 이미지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올해 말 사장단 및 임원 인사,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앞선 그룹 사령탑 복원이 대표적이다. 주류 언론은 외면한 사실이지만, 이런 작업은 법적 근거가 없다.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된 그룹 사령탑은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 파견 근무하는 비공식 조직일 뿐이다. 삼성 계열사 경영에 개입할 근거와 자격이 전무하다. 또 이재용 씨와 이부진 씨의 사장 임명으로 대표되는 이번 인사를 주도한 이건희 회장 역시 법적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이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일 뿐 삼성그룹 회장은 아니다. 삼성의 다른 계열사 인사에 개입할 근거가 없다. 삼성전자 회장이라는 자리 역시 상법상 직책이 아니다. 회사 정관에 있는 직책일 뿐이다. 또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것도 아니다. 이사회의 통제를 받지도 않는다.

기업가 대통령은 시장의 '수요'를 안다…정의 열풍

문제는 이처럼 확대되는 '법치의 예외'를 사회가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는 점이다. '법치의 예외'가 확대된 것도 올해의 일이지만, 여기에 맞서는 움직임이 번진 것도 올해의 일이다. 과거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 질서 세우기)'를 외쳤던 대권주자가 이제는 복지를 말한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복지를 말하는 순간, 세금 인상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세금을 제대로 물리려면, 결국 재벌의 비자금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했던 재벌에게선 세금을 못 거두면서, 서민의 호주머니만 턴다면 국민이 가만있을 리 없다. 실제로 국세청은 재벌의 해외 비자금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당선 직후 전경련을 찾을 만큼 재계와 가까웠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주문하고, '공정사회'를 강조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이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이다. 시장 원리에 충실하다. 요컨대 수요가 없는 곳에 공급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공정'을 입에 올렸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공평한 정의'에 대한 수요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재벌 총수에게 적용되는 법과 서민에게 적용되는 법이 따로 있는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맞물린 수요다.

이런 수요가 수치로 확인된 곳은 출판시장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 강의록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인기 높은 강의를 글로 옮겼다지만, 아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도 희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신, 재테크 서적은 죽을 쒔다. 공정한 규칙이 없는 사회에서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 이런 구조에서 서민이 공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젠 누구나 안다. 시장 경쟁을 강조한 주류 경제학이 사실상 거대한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경쟁보다 규칙에 관심 두는 시민…'소셜'이 뜬다

▲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가 지난 27일 해고무효소송을 알리는 기자 회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박 씨의 사연은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알려졌다..ⓒ프레시안(김윤나영)
이런 흐름은, 따지고 보면 시민들이 경쟁보다 경쟁이 작동하는 규칙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또 규칙이 탄생하고 토론되는 자리, 바로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어로 '사회적'이라는 뜻인 '소셜(Social)'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어감으로 통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게다. '소셜(Social)'이라는 말은, 과거에는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인 어감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소셜미디어, 소셜네트워크, 소셜커머스, 소셜엔터테인먼트, 소셜게임 등 '소셜'로 시작하는 신조어가 숱하게 생겨난다. 이런 이름을 만드는 이들 역시 시장 논리를 잘 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재벌의 폭주를 지켜본 대중은 지금 '소셜'을 원한다. '소셜'로 시작하는 신조어들은 이런 수요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이런 흐름 속에선, 누구나 '규칙의 예외'에 대해 엄격해지기 마련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 예외주의'가 계속 통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삼성 예외주의가 오히려 단단해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글을 썼다가 해고된 박종태 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리 뛰어난 노동자라도 경영자 앞에서는 약자라는 것, 강자 앞에서 약자가 사람대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약자의 단결이라는 것, 그리고 기업에서 이런 단결을 보장받는 장치는 노동조합이라는 것, 노조 활동을 통해 약자가 어깨를 펼 수 있을 때 진정한 소통도 가능하다는 것 등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종태 사건과 삼성 백혈병…삼성 예외주의, 언제까지 갈까

하지만 삼성은 이런 상식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런 상식을 담은 글을 삭제하고, 글을 쓴 직원을 거리로 내쫓았다. 그리고 상식의 예외를 고집하는 '무노조 경영'을 직원들이 신념화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이런 삼성을 바라보는 시민, 특히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박종태 씨의 사연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박 씨가 삼성전자에서 징계를 당했을 당시 빈 책상을 혼자 지키는 사진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삼성에 대한 분노를 공유했다.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진행되는 논쟁과는 별도로 이미 우리 사회에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죽어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연민이 가득 쌓여있다. 또 하이닉스 등 다른 반도체 업체에 비해서 유독 삼성에서 산재 의혹이 자주 불거지는 한 이유가 '무노조 경영'이라는 점도 이젠 상식이 됐다. 노조가 없으니, 공장 관리자가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해도 실무자가 항의할 길이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삼성은 상식의 반대편에 서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상식의 힘' 앞에서 삼성이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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