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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죽고난 뒤에야 치료비 지원한다고?"

[기고] 환자단체가 한국의료지원재단에 거는 기대

한국에서도 의료전문모금기관인 '한국의료지원재단'이 4월 12일 출범했다. 희귀난치성질환, 암, 백혈병 등 치료비 부담으로 고통을 겪는 저소득층 환자를 위해 성금을 모금하거나 기금을 조성해 지원함으로써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국민건강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게 설립취지다.

치료약이나 치료기술은 있는데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중증질환자와 희귀난치성질환자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특히, 기존 몇 개의 메이저급 개별 의료전문 모금 재단, 협회 등은 치료성적이 좋은 유형의 환자만 지원한다거나 병원을 통해서만 신청을 받는 등 환자 중심이 아닌 재단, 협회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 같은 관행 때문에 환자들의 불만도 있었기에 '한국의료지원재단'에 거는 기대는 더 크다.

▲ 희귀병에 걸린 어린이가 생일 선물을 받고 있는 모습(사진은 본문과 무관). ⓒ연합

살 길은 있는데 돈이 없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의료사각지대 저소득층 환자의 치료비 문제를 민간에 떠넘긴다며 의료전문모금기관의 설립을 강력히 반대했었다. 하지만 환자단체들은 실제로 치료비 때문에 생명 연장이나 완치의 기회를 놓치는 저소득층 환자들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총론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동의하나 각론적으로는 의료전문모금기관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신장암으로 투병 중인 이명철(40) 환우는 최근 제약사와 건강보험공단 간의 약가 협상이 결렬되면서 그동안 매달 약 400만 원씩 부담하며 복용했던 표적항암제를 끊었다. 이 표적항암제를 복용하면 3개월~9개월까지 생명이 연장될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삶까지 살 수 있다. 최대한 빨리 건강보험 적용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그는 최근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었다. 현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생명을 연장할 방법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벼랑 끝 인생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OECD 가입국 대한민국에서도 이명철 환우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은 병원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환자단체가 치료비 지원하기 어려운 이유

우리나라에는 1000여 개 이상의 환자단체, 환우카페, 환우모임 등이 있지만 기업체의 법인세를 면제받는 법인 형태는 거의 없다. 개인 소득공제만 가능한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도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개인 소득공제도 되지 않는 임의단체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공헌기업체 등은 법인세 면제를 받는 법인 형태의 협회, 재단에 대부분 기부를 하고 비영리민간단체나 임의단체 형태의 환자단체 등에게 기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환자단체 등은 사단법인, 재단법인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재정 면이나 조직 면에서 열악한 환자단체 등이 엄격한 법인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결국 우리나라 환자단체 등은 회원인 환자들의 최대 요구 중 하나인 치료비 지원은 포기하고 상담, 교육, 커뮤니티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환자단체 등의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의료지원재단'의 출범은 환자단체로 하여금 환자 치료비 지원 문제와 법인 설립에 대한 부담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환자가 죽고 나서야 치료비 지원 결정?"

다만 '한국의료지원재단'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차별화된 의료비 지원의 시청각적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첫째, 치료비 지원신청 자격을 병원이나 일부 재단, 협회에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단체나 환자도 신청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의료사각지대 저소득층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병원 사회사업팀이나 재단, 협회 등에서 지원 대상자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00여 개의 환자단체, 환우카페, 환우모임 등이 '한국의료지원재단'에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의료사각지대 환자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지원대상자 선정위원회도 의료사각지대 해소라는 '한국의료지원재단' 설립취지에 맞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만일 지원대상자 선정위원회가 기존 메이저급 의료전문 모금 재단, 협회의 관계자로 구성된다면 이는 '한국의료지원재단'의 설립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 재단, 협회에 상담했던 환자들이 '한국의료지원재단'에 치료비 지원신청을 할 때 우선 선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기존의 재단, 협회 관계자들은 선정 과정에서 자문 등에 그쳐야 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 대부분의 치료비 지원 관련 재단, 협회는 환자나 환자가족으로 구성된 환자단체 등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환자의 투병을 돕기 위해 의사, 약사 등의 의료종사자, 기업인, 정치인, 연예인 등이 뜻을 모아 만든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치료비 지원 신청, 대상자 선정, 치료비 지원 절차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의 조급한 마음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신속하게 치료비가 지원되어야 치료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치료비 지원절차가 한 달 이상 걸려 결국 환자가 사망하고 난 뒤 치료비 지원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았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신청, 선정, 지원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원대상자 선정위원회는 매달 2회 이상 개최해야 하고 성실한 참석이 불가능한 위원은 처음부터 위촉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환자에게 지원되는 치료비 규모도 치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액이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예상 치료비보다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지원받으면 치료 자체를 시작할 수 없고 또 다른 개별 의료전문 모금 재단, 협회를 뛰어다녀야 하는 이중의 불편을 겪기 때문이다.

"무리한 모금 관련 방송 출연에 불이익 받기도"

다섯째, 언론, 방송 출연을 원하지 않는 환자에게 치료비 지원을 빌미로 무리한 언론, 방송 출연을 요구하는 일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지금도 상당수의 환자가 모금 관련 언론, 방송에 출연했다가 취업, 결혼, 진학 등에서의 불이익을 겪고 난 뒤 출연을 후회하고 있다. 사전에 언론, 방송 출연의 이유와 출연 이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환자의 자발적 동의를 받은 후에 진행해야 한다.

여섯째, '한국의료지원재단'이 기존 개별 의료전문 모금 재단, 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면 환자 중심의 의료전문모금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환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해야 한다. '한국의료지원재단'에 환자단체 등과 적극적인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료지원재단'에 주문할 게 있다. 기존 개별 의료모금 전문 재단, 협회도 법인이기 때문에 자체 모금활동을 통한 치료비 지원 사업을 계속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료지원재단'은 자체 모금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1000여 개의 환자단체, 환우카페, 환우모임이 치료비 지원 요청을 하는 적극적인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한국의료지원재단' 설립 반대에도 환자단체 등이 '한국의료지원재단' 설립을 반대하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기대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료지원재단'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료비 지원하면 '한국의료지원재단'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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