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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식 얼렁뚱땅 공정사회론, 노무현에겐 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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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대호식 얼렁뚱땅 공정사회론, 노무현에겐 독이었다

[홍헌호 칼럼] 노무현 정부 실패에서 뭘 배웠나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의 글을 몇 개 읽어 보았다. 그는 '공정사회론'을 기치로 내걸고 기득권자들, 노조들, 그리고 좌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연세대 김호기 교수나 서울대 조국 교수같은 사람들도 그의 도마 위에 올랐다.

MB정부 공정사회론, 군사정부 조폭 소탕작전과 유사

그 동안 필자가 한국판 공정사회론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는 '형식적 민주주의'(정치적, 법제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가 동시적인 과제이기는 하지만, 후자가 지금 막 걸음마를 하는 단계에 일부 진보인사들이 우루루 전자로 몰려가는 게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집권 초 4대 개혁입법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이건 정부건 주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에너지를 배분해서 써야 한다. 불행히도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에는 4대 개혁입법에, 중반기에는 '부동산 보유세 만능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후반기에 다소간 복지에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대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으므로 빛이 바랬다.

최근 MB정부도 노무현 정부 후반기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급속히 늘어나자,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판 공정사회론에 편승하여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군사 정부가 쿠데타 이후 민심수습 차원에서 조직폭력배를 소탕했듯이 말이다.

SSM 규제에 대한 딴지걸기, 이해할 수 없어

물론 진보진영의 공정사회론은 MB정부 공정사회론과 그 목표나 성격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김 소장 글을 읽어보면 무차별적인 비판은 가득한데, 유감스럽게도 '알맹이'가 거의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에게 어느 정도 콘텐츠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 포털 뉴스에서 '김대호, SSM'이라는 문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웬걸, 검색 결과 관련 기사가 단 1개 뿐이었다. <폴리뉴스>에 실린 '손학규 노선을 연찬한다'는 제목의 칼럼이 그것이다.

그 내용도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SSM규제가 장기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의 한계가 이 한 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필자가 SSM(기업형 수퍼마켓)에 주목한 이유는 서민들의 가장 큰 고통이 SSM문제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세자영업체는 1년에 80~100만 개 도산한다. 이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따라서 SSM규제는 영세자영업자들에게는 코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런데 공정사회론자를 자처하는 김 소장이 이게 장기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딴지를 놓고 있다.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소속 회원 30여명과 고양출신 이재준, 민경선, 김달수, 김유임 등 도의원 9명이 지난 2월 14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1동 사무소 인근 SSM 입정 예정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SM 규제 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1차 분배구조 왜곡 주범은 신자유주의

또 그는 이 칼럼에서 좌파들이 신자유주의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좌파들의 논리는 "1차 분배구조 개혁은 얼렁뚱땅하고, 대부분의 정치적 에너지를 2차 분배 구조개선에 집중하겠다"는 논리라고 몰아 부친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맹위를 떨쳤다는 신자유주의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좌파의 논리는) 보편적 복지 정책 위주의 대안을 내올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과잉 시장에 대한 "대충 대충 땜빵" 논리이다. 극히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1차 분배구조 개혁은 얼렁뚱땅하고, 대부분의 정치적 에너지를 2차 분배 구조개선에 집중하겠다는 논리이다. 오염제거 작업에 비유하면 상류의 오염원은 놔두고, 중하류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논리인 것이다. 현실성도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얘기다."(<폴리뉴스>, 2010년 11월 12일자)

김 소장은 '신자유주의'와 '1차 분배구조'의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차 분배'가 무엇인가. 경제활동에 참여한 경제주체들 각각에 시장소득을 나눠주는 게 1차 분배다. 그렇다면 1차 분배구조를 왜곡하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실체'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의 대부이자 대모인 레이건과 대처가 무슨 짓을 했는지 추적해 보면 된다. 김영삼 정부의 행보를 쫓아가 보아도 된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제화, 세계화'란 미명하에 '규제완화'와 '신자유주의'를 종교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바 있다. 부유층·대기업을 위한 규제완화 만능론, 대기업들을 위한 노동유연성 만능론, 부유층·대기업을 위한 조세부담 감축론.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실체다.

김 소장은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큰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양보하지 않는 정규직이나 노조에 있다고 한다. 황당한 코미디다.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에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다 보니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거다.

지하경제 축소 대안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은 또 지하경제가 문제라고 한다. 지하경제를 줄이면 엄청나게 세수가 생긴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중고생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하경제를 줄이는 방법이다. 지하경제를 줄이려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첫째 세무조사를 대폭 확대·강화하고 세무공무원도 크게 늘려야 한다. 둘째, 기업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의 공정사회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다.

언젠가 대학로에서 산업재해를 소재로 한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법규대로 안전시설을 구축할 경우 50억 원의 비용이 들고, 사고가 나서 근로자 1~2명이 죽을 경우 보상금과 벌금 등으로 5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할 때 기업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그 연극이었다. 물론 모든 기업인들이 후자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으면 후자와 같은 일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

지하경제 줄이려면 근로소득자 증세 불가피

또 고소득 자영업자 탈세는 반드시 막아야 하지만, 탈세 대부분이 이들에게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큰 착각이다. 또 우리나라 소득세 제도가 자영업자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8년(감세 이전) 연간 9956만 원의 급여를 받는 근로소득자는 이 중 3742만 원을 소득공제 받아, 과세표준 6214만 원에 대해 1139만 원의 세금을 냈다. 실효세율(총소득 대비 조세부담액 비율)은 11.4%다.

반면 같은 해 연간 1억3681만 원을 번 개인사업자는 이 중 1465만 원을 소득공제 받아, 과세표준 1억2216만 원에 대해 3025만 원의 세금을 냈다. 실효세율은 22.1%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자영업자들이 탈세를 한다는 이유로 정부와 정치권이 근로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를 무한정 늘려 주다 보니,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균형을 잃은 과세 기준은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의 자영업자를 탈세범으로 만든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여러 가지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근로소득자와 개인사업자의 실효세율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근로소득자의 소득공제를 줄여야 하고, 개인사업자의 소득공제를 늘려야 한다.

또 근로소득자의 불만도 해소해야 하므로 개인사업자 세무조사를 대폭 확대·강화하고 탈세범에 대한 처벌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당 세무조사 비율은 미국의 절반도 안 된다. 미국보다 지하경제 비중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보다 4~5배 정도 세무조사를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이 이런 일에 동조할지 의문이다. 더구나 중소기업 세무조사 확대에 이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이들이 부자들만 세금을 더 내면 된다고 주장할 때도 참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했듯이 근로소득자와 개인사업자의 실효세율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지하경제 축소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격차를 줄이자면 근로소득자 증세는 불가피하다. 근로소득자의 소득공제를 축소하는 것은 곧 증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자 소득공제 비율을 비교하며, 그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은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주장들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실수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노무현 정부 때도 이런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부동산 보유세만 인상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우리나라의 PIR(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선진국보다 높다면, 분양가 상한제 등 가격규제도 선진국보다 더 강하게 하고, 금융규제도 선진국보다 더 강하게 하고, 조세규제도 선진국보다 더 강하게 하는 등, 융단폭격식으로 부동산 투기를 제압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판 공정사회론자들은 부동산 보유세 하나에만 매달리려 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친화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금융규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경제관료들이 선진국보다 다소 강하다고 하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재기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2005년 8.31대책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만 한다면 개인적 손해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또 이들은 진보정당들의 대안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들의 알맹이 없는 공허한 주장에 비하면 진보정당들의 대안은 훨씬 더 충실한 내용을 담았다.

또 이들은 부자들 세금만 제대로 거두어도 복지재원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부자들은 돈이 많지만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만 의존해서는 결코 의미있는 수준의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없다. 알맹이 없는 공허한 주장만 하지 말고 연구를 해 보면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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