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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은폐가 정보 공개보다 국가 안보 위태롭게 해"

'펜타곤 페이퍼' 유출 대니얼 엘스버그 "위키리크스 정보 제공자는 애국자"

정보 공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미군의 기밀문서를 공개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국내의 비판자들과 함께 국제적인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 등 이라크전에 군대를 파견한 미국의 동맹국들도 외교적 화법을 빌어 미국에 답변을 요구했다.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는 "유출된 문건 내용의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며 읽기에 고통스럽다"며 "미 행정부가 답변을 하고 싶어할 것으로 보인다"고 24일 <BBC> 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호주와 덴마크 정부도 문건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호주와 덴마크는 각각 550명, 480명 규모의 병력을 이라크에 보냈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25일자 사설을 통해 "미국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군의 반인권적 행동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인권에 대한 미국의 이중잣대를 온 세계에 확인시켜줬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인권을 빌미로 중국을 압박해 온 것에 대해 '너나 잘 하세요'라고 응수한 격이다.

이런 가운데 39년 전 베트남전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해 오늘날의 위키리크스를 있게 한 장본인인 대니얼 엘스버그가 25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칼럼을 기고했다. 엘스버그는 "(기밀 문서 폭로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정보 공개가 우리 군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군인들을 사지로 보낸 정치가와 정부 관료들의 명성을 위협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엘스버그는 또한 "이라크전 기밀문서 공개는 용기와 애국심을 보여줬다"며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1971년 6월 '펜타곤 페이퍼(미 국방부 보고서)'로 알려진 7000쪽 분량의 자료를 통째로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넘겨 미국이 전쟁 준비 후 베트남을 선제공격한 사실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원문 보기).

나의 '펜타곤 페이퍼'처럼, 이라크전 관련 기록은 묻힐 수 없다

고문과 살해를 폭로하는 것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개를 억누르려는 시도가 더 큰 손해를 낳았다.

약 40년 전 나는 펜타곤 페이퍼를 유출시켰다.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전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자행한 거짓말과 은폐를 밝힌 것이다. 지난주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이라크전 자료는 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 년 동안 미 정부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거대한 은폐의 증거를 다시 목격했다. 이 문서는 지금도 계속되는 이라크전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를 밝히고 있다. 서구 사람들에게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숨겨져 왔던 것인데, 셀 수 없이 많은 고문 사례와 길거리 검문소에서 학살된 수백 명의 민간인 피해 사례가 담겨 있다.

국방부는 이라크 침공 초기 몇 해 동안 사상자를 집계하지 않았다거나 그에 대한 증거 자료가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꼼꼼히 기록해오고 있었다. 6만 6000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있었고 그 중 1만 5000건은 '이라크 바디 카운트(Iraq Body Count)'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 바디 카운트는 이라크전의 희생자 수를 기록하는 유일한 단체다.

▲ 지난 2005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의 오인 사격으로 민간인 3명이 사망, 어린이들이 장례식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이라크 바디 카운트도 몰랐다는 것은 1만 5000명의 죽음은 아예 기사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1만 5000명의 피해는 9.11 테러 희생자의 5배에 달한다. 만약 이 희생자들이 미국인이거나 영국인이었다면 당연히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 1만 5000명의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으로 괴로워했을 것이고, 미군과 그 동맹군에 대해 복수할 방법을 찾는 동기가 되었을 수 있다. 미 국방부가 이 대량 학살 사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려 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것이다.

희생자들이 '오직' 이라크인들뿐이라는 사실은 점령군 사령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사령관들은 (미군-나토군) 연합군의 그러한 살인행위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모두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의 씨앗이 되어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했을 때 정부는 그 내용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나와 <뉴욕타임스>에 발행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미 수정헌법 1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다. 정부는 문서 공개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손상이 된다고 주장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손상도 없었다.

사실 당시 언론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점은 우리가 공개하는 내용 그 자체보다는 펜타곤 페이퍼의 공개를 막으려는 정부의 전례 없는 노력이었다. 다른 신문들도 (뉴욕타임스를) 뒤따라 보도한 결과 총 19개 신문들이 법무부의 지침을 거부했다. 이 다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시민 불복종의 흐름에 불을 붙였다. 2주간의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 줬다.

미 행정부는 펜타곤 페이퍼 당시의 대응을 따랐다. 지난 7월 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서가 폭로되었을 때도 정부는 정보 공개가 국가 안보와 아프간 주둔 미군의 생명에 위험이 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7월 이후 아프간에서는 위키리크스 때문에 발생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

동시에 국방부는 공개된 정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새로운 게 없고, 이미 논란이 됐던 것들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라크인들에게는 '새로울 게 없을' 수 있다. 7년 동안 피해자들과 함께 살았으니까. 국방부에도 물론 '새로울 게 없을' 것이다. 몇 년간 내부적으로는 보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몇 년 동안 미국의 언론들이 무차별 학살에 관한 주장을 보도할 때면 미군이 혐의를 부인했다거나 "조사중"이라는 것을 언제나 함께 보도했다.

크레이그 머레이 전 이라크 주재 영국 대사가 언젠가 말했듯, 이 정보 공개는 우리 군인들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군인들을 사지로 보낸 정치가와 정부 관료들의 명성에 위협이 될 뿐이다.

미국은 지금 중간선거 열풍이 한창이고, 공화당이나 민주당 둘 다 이라크와 아프니스탄 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전쟁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수 년 동안 거대한 은폐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 폭로다. 주류 언론은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대니얼 엘스버그 ⓒ로이터=뉴시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 수반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40년 전 나는 정보 공개를 위해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제록스(복사기)'를 활용해 7000페이지의 자료를 복사했다. 21세기의 내부고발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광대한 양의 자료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은 부러울 따름이다. 정보들은 이제 온라인 웹상에 있고, 앞으로 수백만 명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보수당과 연정을 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의 당수)에게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는 국가 비밀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것을 불평하기보다는 이라크전 자료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만이라도 어떤 조사가 이뤄진다면 이 이슈는 국제적으로 커다란 아젠다로 유지될 것이다.

보다 비밀 수준이 높은 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번에 공개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긴 감옥살이를 해야 할 위험에 처하게 된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와 애국심을 본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최고 수준의 정책결정자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증거를 밝힐 백악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들을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범죄행위를 미국민들의 양심의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은 정보의 출처가 누구든 그의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40년 전에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한 일이 나의 자유가 위협받는 것을 감내할 만큼 가치 있는 일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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